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뉴스데일리]7월 1일부터 먼저 300인 이상 기업들에서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제한됐다. 주당 법정노동시간 40시간에 노동자 동의가 있을 경우 가능한 연장노동 12시간을 포함한 시간이다.

토일 휴무일에 16시간 더 일을 시킬 수 있었던 기존 68시간 노동제도에 비하면 상당한 의미를 갖는 개혁조치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장시간 노동으로 비난받았던 그간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2004년 노무현정부에서 이미 주 40시간이 법제화되었다. 14년 전부터 합법적 연장노동시간 12시간을 포함해 주 52시간 노동제가 안착했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후 정부들에서 노동부가 토요일 일요일을 1주일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조치를 강제했고 오늘날의 장시간 노동이 강요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법 개정은 이를 바로잡는 너무나 상식적인 ‘적폐청산’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의와 함께 금번 노동시간 단축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에서 지적하듯이 5인 이하 사업장 종사자가 모두 빠졌고 운송업 등 5개 특례업종 노동자들도 제외되었다. 그 결과 적용제외 노동자규모가 전체 노동자 2000만 명 중 700만을 넘는다. 또 휴일노동 가산임금이 8시간 이내의 경우 이전 100%에서 50%로 축소되는 등 상당한 임금손실이 예상된다.

특히 최근 여당과 정부에서 위반업체의 처벌을 면제하는 계도기간 6개월 설정, 탄력적 노동시간제 확대 등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의 의의를 크게 퇴색시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노정관계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지만 모든 논란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첫 걸음은 꼭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히 노동자의 ‘일하는 시간’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의 역사와 논리, 두 가지 모두가 노동시간 단축과 연관된다.

먼저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시간단축은 19세기 초 최초로 도입된 영국공장법의 핵심내용이었다. 하루 16시간을 넘는 노동에 대한 백 년 전 영국노동자들의 투쟁이 우리사회의 노동권을 만든 셈이라 할 수 있다.

또 그것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한 1889년 5월 1일 첫 노동절(메이데이)기념행사 이후 전 세계 노동자들을 단결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또 1919년 1차 세계대전 직후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의 제1호 협약도 ‘1주 48시간 노동제’였다.

한국노동운동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을 부른 것은 하루 16시간 이상의 장시간노동에 시달렸던 청계천 봉제공장 여공들의 고통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의 역사가 지났으나 한국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세계최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두 번째로 긴 2100시간에 달하는 우리 노동시간은 1700시간대의 OECD 평균에 비해 400시간 가까이 길고 가장 짧은 1300시간대의 독일에 비하면 무려 700시간 이상 길다.

다른 한편에서 논리적으로도 그렇다. 인간답게 생활하기 위한 기본전제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여가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노벨상수상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써서 일중독자가 넘치는 자본주의사회를 통렬히 비판한 바 있었다.

최근 한국을 찾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만 교수는 우리나라의 주 52시간 도입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일하느냐? 더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장의 노동시간 사회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을 수 없다. 2015년 OECD조사에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전체 34개국 중 27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실상은 더 나쁠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자살률 1위이자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 긴 노동시간은 매년 2000명에 이르는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산재공화국을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아르바이트노동에 시달리는 우리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헬조선’이라 비하하는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시간 단축은 ‘이게 나라냐?’라고 2016년 온 국민이 참여했던 촛불혁명과 직접 맞닿아있는 과제이다. 작년 주요 대선후보들은 모두 노동시간 단축에 찬성하였고 다시금 국민적 합의를 만들었다. 많은 국민이 공감한 ‘저녁이 있는 삶’은 촛불시민의 요구인 ‘사람이 살만한 나라’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주 52시간 노동은 이미 2010년 이후 노사정이 여러 차례 합의했고 모든 정당들이 동의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여기서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매우 다양함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효과 중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추계에 의하면 그것은 최대 13만에서 17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일자리정책이기도 하다. 줄어든 노동시간은 새로운 인력 충원을 기업에 강제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서구국가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줄어드는 일자리를 나누고 새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사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덧붙여 노동시간 단축이 강제할 기업의 생산성 제고효과도 중요하다. 기업들은 일시적으로 생산비용 증가로 어려움에 처하지만 곧 생산성을 높여 비용을 줄이는 경영혁신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늘어난 여가시간이 만드는 소비 지출의 확대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소비의 증대는 경기의 확대를 불러오고 다시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 산업재해의 감소 효과도 기업과 전체 경제에 매우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본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의 경제적 순기능은 결코 작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 70년 우리사회는 ‘장시간 저임금노동’이 지배한 사회였다. 그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성장과 부의 증가, 그리고 위대한 민주주의혁명을 성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헬조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으나 그들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못했던 것이다.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사회양극화가 확대되는 속에서 지난 촛불혁명은 ‘사람이 살만한 새로운 한국사회 건설’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던졌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시작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은 지난 과거의 적폐와 단절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새 역사를 쓰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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