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뉴스데일리]돌이켜보면, 대북정책 변화를 통해 북한의 도발과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지 않았던 정부는 없었던 것 같다. 이전 정부와의 정책적 차별성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키워드’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차 북핵 위기 이후 북한의 전술적 도발과 전략적 도발의 추이를 분석해 보면, 북한은 국지도발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과 같은 전략적 도발을 단행하는데 한국정부의 성격이나 대북정책의 강·온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대북 압박 공조가 가장 강했을 때 북한의 행동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10월 북한의 HEU문제로 김대중 정부 말기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그 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북한은 제네바 합의 무효화를 시작으로 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동결된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등 제2차 북핵위기를 고조시켰다. 2차 북핵위기와 함께 시작한 참여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의 틀 속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6자회담에 이르는 과정도 이러한 틀 속에서 진행돼 갔고, 미국과 중국의 대북압박 공조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북한은 결국 2003년 3자회담과 6자회담의 장에 나오게 됐다. 미국은 전략자산 전개를 통한 군사적 압박을, 중국은 대북중유 일시 중단이라는 경제적 압박을 동시에 진행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신 정부가 들어선 지금의 상황은 2003년 상황과 꽤 닮아 보인다. 2016년 2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및 미사일 다종화에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북한은 지난 4월 미·중의 고강도 대북 압박과 제재가 가속화되자, 전략적 도발 대신 새로운 종류의 전략무기를 선보이는 군사퍼레이드와 대규모 화력시범의 과시로 그쳤다.

그리고 한국 신정부가 들어선 지 4일째 되는 날, 북한은 화성-12라는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하며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며 선전했다. 더 나아가 고도로 정밀화, 다종화된 핵무기들과 핵타격수단을 더 많이 만들어나갈 것을 김정은이 지시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핵무기와 투발수단 능력의 고도화이고, 국제사회를 비롯해 우리가 주장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북한의 비핵화와 더불어 군사적 비군사적 도발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에 한국 신 행정부는 한미동맹과 자주 국방력을 조기에 구축하는 ‘강한 안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주요 중심축으로 하고, 이를 위한 주변 4국과의 협력외교와 동북아플러스 다자외교를 강조하며 해법을 찾고자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이 고려됐으면 한다.

첫째,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미동맹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역설적이게도 동북아 지역에서의 우리의 자율 공간을 넓힐 여지가 커진다. 반면, 미일동맹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상대적으로 한국의 공간은 좁아질 수 있다. 따라서 자주국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가치도 증대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 핵, 중장거리 미사일, 인권, 테러, 제재, 남북관계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디자인 하는 큰 틀의 대북정책 방향 수립을 통해 미국의 ‘최대 압박과 관여정책’이나 중국의 ‘쌍궤론’과 ‘쌍중단’의 논리에 대한 ‘한국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조화를 맞춰 나가야 할 것인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남북관계를 대화와 제재라는 양분화된 시각의 틀 안에서 접근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화와 제재는 동전의 양면으로 상호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대화와 제재 모두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두 필요하되 제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 줄 필요가 있다. 

넷째, 북한은 2015년부터 ‘남북 대통로’를 주장하며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해 남한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며 전략적 도발과 남북관계를 별개로 접근하는 가운데, 올해에는 제2의 6·15 시대 등을 운운하며 남북관계 ‘새 판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대북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북한의 이러한 선전과 의도를 간파하며 현 국면하에서의 남북관계가 어떠한 모습을 갖고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정립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위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북한과 주변 국가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북한 핵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대화를 강조했다고 해서 남북간 교류가 바로 재개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개성공단 문제도 바로 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과도한 기대와 주변 국가들의 과도한 우려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필자: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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