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보도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 삼성, 일반직 채용”이라는 제목의 특이한 내용의 기사가 눈길을 끈다. “40-50명 규모 대리급으로 마케팅-기획-인사 분야 배치”라는 부제목을 읽으면 더욱 그러하다. LG전자도 다수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일반직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간 우리나라의 법률가 숫자가 너무 미약하여 국민을 위한 사법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1981년부터 사법시험에 3백 명을 뽑기 시작했고, 2천 년대에 이르러 1천 명까지 배출해 왔다. 로스쿨의 도입에 따라 매년 1천 5백명 이상의 변호사를 배출한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5십 년 동안에 배출한 변호사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지금대로라면 5년이면 1만 명의 변호사가 배출된다. 그러니 고급인력이 법조시장으로 빨려 들어간 이후에 고등실업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지나친 기우는 아니다.


법원 검찰을 중심으로 송무만 담당하는 법률가는 만원사례인 것은 틀림없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변호사 수만큼 사건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법적 수요는 여전히 늘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 사이 법률가의 충원확대 방안으로는 정부의 법무관이나 기업의 법무담당자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법률 전공자라는 한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해 기업의 전반적인 업무에는 소외될 수밖에 없고, 그 시야 또한 좁디좁다보니 기관의 업무 전반을 총괄할 만한 역량을 기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법률가는 하나의 자격인 시대가 온 것이다.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법적 업무에만 전념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이미 회계사들은 회계사 자격을 갖고 회계업무 아닌 여러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수학한 이후에 로스쿨에서 법학을 충실히 이수하여 리걸 마인드를 형성했다면 사회의 어느 분야에 진출해도 훌륭히 그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보아야 한다. 로스쿨에서 수학한 리걸 마인드에 터 잡은 논리적 세계에 익숙한 그들이 법무 업무를 벗어나서 기획·인사와 같은 전통적인 법대생들의 주요 영역뿐 아니라 상경학도들의 영역인 마케팅까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은 획기적인 전환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흔히들 변호사가 종래 대기업의 부사장에서 전무로, 전무에서 상무로, 상무에서 부장으로, 부장에서 과장으로 전락하였다고 한숨짓는 소리가 들여온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자기 수준과 연령에 부합하는 업무를 시작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LG 그룹에서 초임 변호사를 대리급으로 채용하는 것은 특혜도 아니고 폄하도 아닌 자연스러운 직위 부여로 보인다. 대학을 졸업하면 신입사원이지만 로스쿨 출신들은 3년의 전문석사과정을 이수하였으니 대리급은 당연하다. 삼성·LG 그룹의 이와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이미 여러 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채용해서 일반 부서에 배치한 결과 업무 성과가 향상되었다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한다. 이들을 통해서 업무의 시너지효과도 기대되고 더 나아가 법적인 문제가 생긴 뒤 법무팀이 사후에 대응하는 것과는 달리 사전에 분쟁거리를 없애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기업업무가 날로 글로벌화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예견되는 법적 분쟁을 법률가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최근 삼성과 애플 간, 코오롱과 듀폰과의 소송을 지켜보면서 사전적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실감할 수 있다. 삼일 회계법인 같은 곳에서는 일찍이 다수의 변호사를 채용해 왔던 터에 삼성·LG 그룹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대폭 채용이 젊은 변호사들의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와 법의 지배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차제에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변호사들을 법무직렬에 한정하지 말고 일반 행정직에 포진시켜 그들의 정밀하고 훈련된 법률가로서의 지식에 기반한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법률가들이 일상적인 업무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것은 결국 법률가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한 초석을 마련할 것이다.
필자: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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