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혁·황준현에 ‘안방의 기적’ 기대…단체전 입상도 노려볼만

한국 육상은 변방에 속한다. 가까운 이웃 일본도 육상은 선진국 수준인데 한국이 여전히 육상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은 역시 신체의 기본적 활동에 대한 서구적인 교육 시스템이 한국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유독 마라톤에서만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과시해 왔다.
대구세계육상 폐막일인 9월 4일 벌어지는 남자 마라톤에서 한국은 ‘안방의 이점’을 살려 메달권에 도전한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경보와 더불어 마라톤에서 내심 입상을 노리고 있다. 대회 장소가 안방이며, 훈련과 컨디션 조절 등에서 외국 선수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마라톤 지도자들은 대구 지형이 갖고 있는 특성을 최대한 잘 대비하고 활용하는 안방의 이점을 극대화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

개최국 자존심 내걸 만한 대표종목으로 판단

대회 개최국의 자존심을 내걸 만한 종목은 역시 마라톤이다. 그러나 기록과 경험 면에서 국내 간판스타인 지영준이 허벅지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아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며 차질이 빚어졌다. 정만화 대표팀 코치(코오롱 감독)는 “지영준의 탈락은 사실상 대표팀의 레이스에 앞에서 이끌어 줄 선두 주자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마음 아파했다. 물론 대표팀에는 완주 경험이 풍부한 이명승(32·삼성전자)이 있지만 기록이 2시간13분대 이후로 좋지 않아 후배들의 레이스를 이끌어 줄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럼 과연 누가 한국팀의 새로운 마라톤 주역이 될 것인가. 마라톤 입문 2년 만에 2시간9분대에 진입한 정진혁(21·건국대)과 2시간10분대의 기록을 보유한 황준현(24·코오롱)이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정진혁은 마라톤 데뷔전인 2010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5분01초를 기록하고 7개월 뒤인 11월 중앙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0분59초로 4분여를 단축하더니, 지난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9분28초로 대회 2위를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성격이 밝고 잔부상이 많지 않으며, 스피드가 좋다.

마라톤 입문 3년째를 맞는 황준현은 데뷔전 기록만 보면 더 가능성이 높다. 2009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데뷔전에서 2시간11분39초를 뛰며 국가대표에도 뽑혀 베를린세계선수권에 출전했지만 부상 악재로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두번째로 뛴 중앙서울국제마라톤에서의 2시간10분43초가 최고기록이다.

1미터79의 큰 키에 65킬로그램의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가 황준현의 강점이어서 주자를 추월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큰 체격은 늘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반면 정진혁은 1미터71, 58킬로그램으로 마라토너로서는 이상적인 체형이다.

“경험 부족에 따른 심리적 부담감을 떨쳐라”

정만화 코치는 “둘 다 이번 대회에 가장 큰 기대를 걸어야 할 선수”라며 “지영준처럼 믿고 따라갈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경험이 부족한 단점을 보완할 완벽한 레이스 작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큰 과제”라고 했다. 특히 두 선수가 아프리카 선수들과 함께 레이스를 펼칠 때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아야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정 코치는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마라톤 역시 심리적인 면에서 자신감과 평상심을 잘 지켜내야 그것이 몸을 통해 경기력으로 드러난다”며 “막판 강도 높은 페이스 훈련을 소화해낼 수 있는지 여부가 바로 이런 심리적 긴장감과 몸 상태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마라톤 레이스가 열리는 9월 4일의 1주일 전부터 단백질 식이요법 3일, 탄수화물 식이요법 3일 등 마지막 영양섭취 작전까지 수행했다.

한국 마라톤은 정진혁과 황준현을 앞세워 개인전 입상에 도전하는 한편, 단체전으로 열리는 월드컵마라톤(5명 출전, 3명의 합산성적으로 순위 매김)에서도 3위 이내 입상을 노리고 있다. 사실 마라톤 단체전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은 시상대에 단골 손님이었다.

일본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3개 대회 연속 번갈아 남녀 단체전 우승을 달성했다. 2009년 베를린대회에서는 중국이 여자 우승을, 일본이 준우승을 차지했고, 일본 남자는 동메달을 차지했다.

박주영(15위)과 김영춘(24위), 이명승(26위)은 2007년 오사카대회에서 10~20위권의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냈지만 합산 성적에서는 7시간12분08초로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전례가 있다.

단체전은 금메달 노리는 일본과 경쟁

황규훈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아프리카 선수들은 상금도 크지 않은 단체전에는 기대를 아예 않는다”며 “일단 개인전 입상에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레이스에 주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틈새를 잘 노려서 한국 선수들은 끝까지 제 기록으로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번에 네번째 출전인 맏형 이명승 외에 유망주 김민(22·건국대)과 황준석(28·서울시청)이 단체전 레이스에 힘을 보탠다.

이번 대구세계육상에 출전하는 해외 마라토너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우선 지난 2009베를린대회 챔피언이며 최고기록이 2시간6분54초인 아벨 키루이(케냐)를 비롯해 2시간5분대가 6명, 2시간6분대가 5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케냐와 에티오피아, 모로코 등 아프리카 출신이다. 남자 마라톤에 출전하는 선수는 모두 70명인데, 이 가운데 2시간10분 이내 기록 보유자가 25명이나 된다. 5명이 출전하는 일본은 한국과 똑같이 개인전 외에도 단체전 금메달을 노리는데, 2시간8분대 1명, 9분대 4명, 10분대 1명으로 제법 경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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