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기부 ‘재능 나눔’ 현장] ②바이올리니스트 이우림

작년 말 대청도에서 줄곧 학교를 다녔던 백모군이 서울대를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교육 한번 받지 않았던 백군의 뒤에는 해병대 장병들이 꾸린 ‘주말학교’라는 든든한 빽이 있었다. 최근 나눔의 의미가 물질적 기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사회취약계층과 함께 나누는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감코리아(korea.kr)는 2011년 신년기획으로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고 있는 재능 나눔과 봉사 현장을 소개한다.

서울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 4층 사회적응훈련실. 문틈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새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앳된 티가 물씬 풍기는 여자 선생님이 두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집중을 하다가도 순간 딴청을 부린다. 선생님은 매번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은 자폐증을 앓고 있었다. 이희망(11.가명)군은 작년 9월, 신미래(12.가명)양은 지난 1월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장애인들도 배우기 힘든 바이올린을 이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익힐 수 있을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군은 ‘봄바람’이라는 곡의 계이름을 외운다. 신양은 아직 서툴지만 ‘미뉴에트 3번’을 켠다.

이우림 선생이 신미래(가명) 양의 바이올린 연습을 돕고 있다.

 이우림 선생(19)이 이 아이들과 연을 맺게 된 것은 모 일간지의 ‘재능나눔’ 캠페인을 통해서다. “봉사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 캠페인을 보고 ‘아, 내 실력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도 봉사가 되는 구나. 바로 이거다’하고 참여 신청을 했죠.”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은 작년 6월부터 장애 청소년과 부모들이 함께 연주하는 ‘나눔소리 오케스트라’ 창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바이올린, 클라리넷, 플룻으로 구성키로 하고 봉사자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우림 선생이 천군만마처럼 나타나 8월부터 강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쿠, 잘했다”
이우림 선생은 수업 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본인도 놀랄 실력을 보여줄 때는 박수도 쳐준다. 강습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비장애인을 가르치는 것보다 배는 힘들어 보였다.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게 제일 힘들다는 그는 그래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실력을 더 키워야겠다고 다짐한다.

바이올린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에 가깝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장애에 대한 지식은 ‘무(無)’에 가까우니 초보 수준이나 마찬가지라고 자신을 낮췄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인터넷 등을 통해 자폐증에 대해 미리 정보를 습득했어요. 하지만 막상 직접 접해보니 장애마다, 개개인마다 특성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고 상대방을 먼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우림 선생이 이응금씨와 아들 김강훈군의 합주를 지도하고 있다.

강습 때 엄마들도 함께 참여시킨다는 게 이우림 선생의 방침이다.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번 배워서는 실력이 늘지 않으니 엄마들이 집에서 같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집에서 함께 연습하면서 즐기고 있어요. 숙제도 꼬박꼬박 해 가고….”(희망군 엄마 윤모씨)
“여기서 배우기 전 일반학원을 다녔었는데 제대로 수업이 안됐었죠. 우림 선생님한테 개인지도 형식으로 배우니 실력도 늘고, 아이가 음악을 계속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미래양 엄마 남모씨)

이우림 선생으로부터 강습을 받고 있는 김강훈(17.백혈병 치료중)과 시훈(16.발달장애)군, 그리고 엄마 이응금씨는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가족 바이올린 연주단을 꾸려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한 연주회를 열 계획이다.

이응금씨는 “시훈이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나서부터 자신감이 생겼다”며 “예전에는 바깥 활동을 전혀 안했었는데, 요즘에는 음악회, 뮤지컬 공연도 보러 다니고 가정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우림 선생은 이번 여름쯤 되면 이들이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생길 것 같다며 기대를 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과 가족들이 ‘오케스트라’가 돼서 무대에 서는 모습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절로 힘이 난다”고 말한 그는 ‘연주하는 선교사’가 돼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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