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동짓길
남도대교 주변의 길가에 만개한 벚꽃. |
그러니 토짓길의 전 구간을 섭렵하다 보면 <토지> 속의 배경과 인물을 찾아보는 문학기행, 섬진강 물길 따라가는 생태여행, 화개장터의 아스라한 옛 시절을 더듬어보는 추억여행, 화개동천의 야생차를 만나는 다도체험, 천년고찰 쌍계사를 찾는 답사여행 등의 다양한 체험과 색다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하동 토짓길은 2개 코스로 나뉜다. 그중 제1코스는 박경리 선생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자 영남 유일의 슬로시티(치타슬로·Cittaslow)인 하동군 악양면 일대를 두루 거쳐간다. 화개천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제2코스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늘어선 십리벚꽃길을 따라간다.
섬진강 은빛 모래밭…야영지로도 제격
하동 토짓길의 제1코스는 악양면 평사리 앞 섬진강변의 평사리공원에서 시작된다. 옛날부터 섬진강은 고운 모래가 하도 많아서 ‘다사강(多沙江)’이라 불리기도 했다. 특히 평사리의 섬진강변에는 바닷가 해수욕장처럼 넓은 모래밭이 형성돼 있다.
이 모래밭에 조성된 평사리공원(관리 악양청년회·055-883-5530)은 넓은 잔디밭과 주차장, 해학 넘치는 장승동산, 급수대와 화장실, 정자와 파고라, 시비와 노래비, 매점 등의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섬진강변의 은빛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재미도 이곳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 또한 하룻밤 묵으며 야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소설 <토지> 속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조부잣집. |
평사리공원 옆 19번 국도에서는 평사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평사리는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신선봉과 형제봉에 등을 기대고 5백 리의 섬진강 물길이 앞으로 흐르는 마을이다. 한눈에 봐도 대하소설의 무대로는 딱 제격이다.
마을 앞에는 드넓은 악양 들녘이 펼쳐져 있는데, 그곳 한복판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장승처럼 서 있다. ‘부부 소나무’ 또는 ‘쌍소나무’라 불리는 이 소나무는 <토지>의 주인공 서희와 길상처럼 늘 다정해 보인다. 게다가 봄에는 싱그러운 청보리밭과 연분홍 자운영밭, 가을에는 황금빛 들녘과 어우러져서 언제 봐도 아름답고 늠름하다
토짓길은 쌍소나무와 동정호를 지나 고소산성(사적 제151호)으로 이어진다.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인 동정호는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만들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고소산성은 뒤로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가 우뚝하고, 앞으로 섬진강 물길이 도도히 흐르는 곳에 위치한다. 올라가는 길이 다소 가파르지만, 크고 견고한 성벽에 일단 올라서면 악양면 일대와 섬진강 물길, 광양 백운산까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상쾌한 전망을 안겨준다.
고소산성 바로 아래에는 근래 들어 하동 제일의 명소로 떠오른 최참판댁(관광안내소·055-880-2950)이 있다. <토지>의 최참판댁을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이 집은 14동의 전통 한옥으로 구성돼 있다. 집터도 호방하고 시원스럽다. 악양 들녘과 섬진강 물길이 오롯하게 조망되는 평사리 상평마을의 언덕배기에 자리 잡았다. 주변에는 TV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으로 활용된 초가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정감 넘치는 옛 시골 풍경을 오롯이 보여준다.
최참판댁을 지나온 토짓길은 악양면 소재지를 경유해 조부잣집까지 이어진다. 중국 무역을 통해 큰돈을 번 조재희라는 사람이 17년에 걸쳐 지었다는 이 집은 소설 <토지> 속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조부잣집을 경유한 토짓길은 다시 취간림과 악양 들녘을 가로질러 악양루에 당도한다. 근래 복원된 악양루에서는 옛 멋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평사리공원과 악양 들녘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전망만큼은 일품이다.
악양루에서 제1코스의 종점인 화개장터까지 약 9.5킬로미터 구간은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는 19번 국도를 따라간다.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풍광은 시원스럽지만, 19번 국도를 따라가는 토짓길은 다소 지루하고 조심스럽다.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장터가 있지만, 조선의 7대 장터 중 하나였다는 하동 화개장터만큼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도 흔치 않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로도 알려진 화개장터는 지금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자리해 숱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화개’ 하면 생각나는 또 하나는 십리벚꽃길이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화개천 양쪽의 도로변에 늘어선 벚나무들은 매년 4월 초순쯤에 일제히 꽃부리를 펼치며 눈부시게 화사한 꽃터널을 형성한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벚꽃놀이에 나선 자동차와 사람이 뒤엉켜서 화개골 전체가 북새통을 이루곤 한다.
화개 십리벚꽃길 주변으로 파릇파릇 고개 치켜든 보리밭. |
화개장터·십리벚꽃길에 화개골이 북새통
꽃 피는 화개골에는 차 향기도 그윽하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 화개골은 사방천지가 온통 차밭이다. 지금도 쌍계사 초입의 길가에는 차를 처음 재배했다는 시배지가 남아 있다. 화개골에서 수확한 차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궁궐에 진상될 만큼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왕의 차’로도 불린다.
화개장터의 명소 중 하나인 대장간. |
화개장터, 십리벚꽃길, 차 시배지 등을 거쳐온 하동 토짓길의 제2코스는 쌍계사를 경유해 불일폭포까지 이어진다. 신라 성덕왕 23년(724년)에 창건됐다는 쌍계사에는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비롯해 국가 지정 유물이 여럿 있다.
하지만 안목 좋은 이들이 더 눈여겨보는 것은 명부전 앞의 바위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불이다. 마치 감실((龕室)처럼 움푹 파인 바위벽에 도드라지게 양각(陽刻)된 불상이다. 소매 안으로 단정하게 끌어모은 두 손과 지그시 감은 눈, 그리고 소박한 인상은 부처가 아니라 참선 중인 스님을 연상케 한다.
쌍계사에서 지리산 십경 중 하나로 꼽히는 불일폭포까지의 거리는 왕복 5킬로미터쯤 된다. 오가는 데에 2시간~2시간 30분쯤 소요되는 길이지만, 탐방로 곳곳에 지리산의 다양한 자연생태를 자세하게 설명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여행정보
코스 정보
▶ 제1구간(소설 <토지>의 무대 따라 걷기)│18킬로미터, 6시간 남짓 소요. 섬진강 평사리공원→평사리 들판→동정호→고소산성→최참판댁→조부잣집→취간림→악양루→섬진강변→화개장터
▶ 제2구간(산과 강, 인간이 만든 ‘눈 속에 꽃이 핀 고장’ 화개 길 걷기)│ 13킬로미터, 5시간 소요. 화개장터→십리벚꽃길→차 시배지→쌍계석문바위→쌍계사→불일폭포→국사암
전화│한국문인협회 하동지부(055-882-2675)
숙박
화개골의 시원한 물가에 자리 잡은 ‘쉬어 가는 누각’(055-884-0151)은 식사도 가능한 ‘굿스테이’(한국관광공사 선정) 업소다.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면에는 너른마당(055-884-3888), 평사리황토방(055-882-5554) 등의 민박집뿐이다.
그리고 악양과 하동 사이의 섬진강변에 위치한 미리내호텔(055-884-7292)은 객실 침대에 누워서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섬진강 조망이 탁월하다. 하동읍내에서는 고궁모텔(055-884-5300)이 시설 좋고 깔끔한 편이다.
맛집
가는 길
▶ 승용차│남해고속국도 하동나들목(19번 국도·하동 방면)→하동 우회도로→ 악양 평사리삼거리(최참판댁 초입)→화개장터(1023번 지방도·우회전)→쌍계사 입구
▶ 대중교통│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는 화개를 경유하는 하동행 시외버스가 매일 7회씩 출발한다.
글·사진: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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