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뉴스데일리]레게의 서브 장르인 ‘러버스 락(Lovers Rock)’은 이름에서 예측 가능하듯 ‘락스테디(Rocksteady,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에서 유행했던 음악-편집자 주)’에서 뿌리내려졌다.

주로 로맨스를 테마로 한 노래들이 특징인 러버스 락은 레게의 베이스라인과 리듬에 모타운, 필라델피아 소울 등에서 비롯한 부드러운 사운드와 감각을 더해 완성해낸 것이었다.

러버스 락은 1970년대 중반 런던에서 탄생했는데, 그 당시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가들은 ‘라스타파리 운동’을 비롯 메시지가 강한 사회적인 주제들을 주로 다뤄냈다.

그러나 영국의 레게 씬에서는 여성들이 보다 적극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러버스 락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프로덕션의 대안이 됐다.

러버스 락의 경우 연주자와 청중 대부분이 여성이었으며 사운드와 가사에 낭만적인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종종 정치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사랑은 정치적이지 않으며 주로 여성들이 요구한다는 인식은 가부장제 문화 내에서의 잘못된 편견이었는데, 이후에는 러버스 락을 하는 남성 뮤지션들의 수도 늘어갔다.

사랑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며 이를 적극 표현함으로써 러버스 락은 일종의 흑인 커뮤니티 내부의 진실한 감정들을 보여주는 증거가 됐다. 라스타파리 운동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본질적으로는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러버스 락은 영국의 흑인 이민자들이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장르였다. 오히려 이는 당시 영국의 흑인사회에서 자메이카 출신보다 카리브계 이민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독특한 발전을 이뤄냈다.

이 노래들은 격동의 시대에 영국의 흑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결집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런던 남동쪽에서 데니스 해리스와 데니스 보벨이 설립한 레이블의 이름이 바로 ‘러버스 락’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장르의 이름이 됐다.

지난 2005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레게 기념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버니 웨일러의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지난 2005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레게 기념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버니 웨일러의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최초의 러버스 락 싱글로 인식되는 것은 1975년 루이자 마크가 14세 무렵 발표한 ‘I Caught You In A Lie’였는데 이는 미국 블루스 뮤지션 로버트 파커의 곡을 커버한 것이었다.

이처럼 러버스 락에는 다수의 커버 곡들이 존재하는데, 존 홀트가 커버한 비틀즈의 ‘I Will’의 경우 칸예 웨스트가 프로듀스한 제이지의 ‘Encore’에 샘플링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영국의 레게 레이블 트로얀에서는 아예 비틀즈의 레게 커버 곡들만 모아 놓은 컴필레이션 같은 것을 발매하기도 했다.

결국 본토인 자메이카에서도 러버스 락 뮤지션들이 생겨났다. 영국에서 히트한 러버스 락 아티스트들이 직접 자메이카로 녹음하러 갔던 사례들이 많았는데 이는 영국의 러버스 락 씬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자메이카 출신 중에서는 그레고리 아이작스, 슈가 미노트, 데니스 브라운 등이 이름을 알렸다. 데니스 브라운의 경우 영화 <중경삼림>의 수록곡 ‘Things in Life’를 통해 아시아, 특히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해졌다.

<헝거>, <셰임> 그리고 <노예 12년> 등의 영화를 만든 흑인 감독 스티브 맥퀸은 영국 BBC 스튜디오와 아마존이 합작한 TV용 미니시리즈 <스몰 엑스> 중 ‘러버스 락’ 편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1980년을 배경으로 영국의 흑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러버스 락의 선율과 함께 그려낸 작품이었다. 영화에는 마치 왕가위 스타일의 스텝 프린팅과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왕가위를 오마주한 흑인 커뮤니티를 다룬 영화, 그리고 홍콩이 배경인 영화에 레게를 삽입한 왕가위 사이 러버스 락이라는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러버스 락은 2세대 영국 출신 흑인 뮤지션들, 그리고 자메이카 본토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당연하게도 흑인이 아닌 이들 또한 사로잡았다.

영국 밴드들인 폴리스와 컬쳐 클럽, 무엇보다 아예 ‘Lovers Rock’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했던 샤데이 등이 러버스 락의 영향을 고스란히 자신들의 것으로 흡수해냈다. 영국 펑크 록 밴드 클래시 또한 걸작 <London Calling>에 ‘Lover's Rock’이라는 제목의 곡을 수록한다.

개인적으로 21세기 이후 공개된 러버스 락에 영향받은 곡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재즈민 설리반의 ‘Need U Bad’다.

이 노래는 레게의 바이브로 시작해 후렴에서는 R&B 풍으로 전환되는 식의 전개로 러버스 락의 근간에 대해 무척 심도 있게 탐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거기에 미시 엘리엇이 마치 레게 뮤지션이라도 된 듯 중간 중간에 토스팅 하는 것 또한 킬 포인트이다.

21세기에도 러버스 락은 그 자체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영국 O2 아레나에서는 매년 ‘자이언츠 오브 러버스 락’이라는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데 이는 영국에서 가장 롱런한 레게 콘서트 시리즈가 됐다.

성경 속 유명한 구절 중에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는 대목이 있다. 레게 역시 ‘평화’, ‘사랑’, ‘화합’ 중 ‘사랑’이 대중적으로는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지 않나 싶다.

[필자: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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