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프랑스·일본 “우린 자전거 선진국”

“삶이 지나치게 빠르다고 생각하면 페달을 밟자. 우리 아이들에게 숨 쉴 공기를 주고 싶다면 페달을 밟자.”

네덜란드 남부 도시 델프트시가 자전거 타기 활성화 캠페인 문구로 내세웠던 구호다. 사실 이런 캠페인 없이도 네덜란드는 이미 ‘자전거 선진국’이다.

네덜란드 국민들이 다양한 공간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타는 나라 중 하나다.

네덜란드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거리 곳곳을 누비는 수많은 자전거와 잘 정비된 자전거도로를 보고 놀란다. 지난해 네덜란드는 국내 자전거 운행거리가 처음 자동차 운행 거리를 앞지르기도 했다.

수도 암스테르담의 경우, 전체 교통수단 중 자전거 비중이 37%(자가용 41%, 대중교통 22%), 자전거도로 비율은 90%에 달한다. 시민들의 자전거 보유율은 75%이고 이들 중 자전거를 매일 이용하는 시민은 50%나 된다. ‘자전거 천국’이란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자전거 선진국, 국가 차원서 자전거 정책 적극 추진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정부·지방 할 것 없이 국가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는 ‘자전거 정책’이다. 네덜란드 중앙정부 교통과에는 자전거 전담부서가 있는데 매년 중앙에서 지방으로 지원하는 예산만 약 6000만 길더(약 300억원). 암스테르담시의 경우 매년 300만 길더를 자전거 관련 시설 유지·관리에, 약 1200만 길더를 매년 약 2~3km씩 연장되는 자전거도로 확충에 투자한다.

이 같은 인프라와 자전거 관련법·제도 정비, 어릴 때부터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문화 등이 어우러져 네덜란드 국민들은 통학·통근 수단으로서의 자전거 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대부분의 자전거 선진국들은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자전거 정책에 접근한다.

영국은 교통부 주도로 1996년부터 국가 자전거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노르웨이나 슬로바키아도 국가 단위 종합교통계획, 환경보전·보건복지계획 등에 자전거를 포함시킨다. 독일은 지난 1979년부터 추진한 자전거 친화형 도시조성사업에 현재 130여 개 도시가 참여중이다. 한국과 교통환경이 비슷하다는 일본 국토교통성은 2025년 자전거분담률 25%, 궁극적으로 30%를 목표로 친자전거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용자전거 대여시스템 활성화…‘자전거 열풍’에 일조

특히 프랑스는 2007년 7월 파리에서 시작한 공용자전거 무인대여 시스템 ‘벨리브(Velib)’로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자전거 열풍’을 일으켰다.

‘벨리브(자전거Velo와 자유Liberte의 합성어)’는 파리 시내 750곳의 자전거 대여소에서 1만여 대의 자전거를 빌려주는 것으로 시작돼 자전거 수와 대여소를 늘려가며 활발히 운영 중이다.

3단 기어, 22kg 무게의 벨리브 자전거는 처음 30분까지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이후 30분 단위로 요금이 1유로씩 누진 부과된다. 회원 가입시 보증금으로 150유로를 내며, 하루 1유로, 1주일 5유로, 1년 29유로의 이용요금은 지하철·버스에 사용하는 교통카드(Pass NAVIGO)로 지불할 수 있다. 자전거에는 도난방지 장치가 달려 있고 사용기간을 넘기면 비상벨이 울린다.

(위부터) 독일, 프랑스, 스페인의 공공자전거 대여 시스템.
벨리브의 유비쿼터스 기술을 동원한 관리체계, 이용자 편의를 먼저 고려하는 추진시스템, 민간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한 예산절감과 수익창출 등은 공용자전거 사업의 ‘모범’으로 회자되며 세계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10월22일 창원시가 벨리브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누비자’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의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우리와 비슷한 2~3% 수준. 프랑스인들에게 자전거는 ‘대도시에선 탈 수 없는 위험한 것’이었고 ‘자동차 통행에 방해가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벨리브 제도 도입과 함께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여기에 파리가 ‘벨리브’로 성공을 거두자 각 지자체장들은 너도나도 벨리브보다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을 대표적인 자전거 선진국으로 꼽는다.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도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률이 매우 높은데 그 이유는 전철이나 지하철역간 ‘연결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하철과의 환승체계를 위해 전 지하철역 부근에 자전거전용 주차장을 설치, 지하철 이용률을 78%까지 끌어올렸다.

이 외에도 일본은 1980년 지방행정부가 철도기관과 사기업에게 자전거 주차공간을 확보하도록 규제할 수 있는 자전거법을 통과시켰다. 1933년엔 자전거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지자체별로 철도사업자에게 자전거 보관대 건설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고유가 시대·환경문제 대안으로서의 ‘자전거활성화 정책’

이처럼 자전거는 전 세계적으로 고유가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일본에서 자전거 정책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더 이상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은 안 된다’는 점. 교통혼잡, 사고, 주차난, 대기오염 등 자동차 중심 교통행정의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기가 생활화되면 국민건강도 지키고 교통혼잡을 완화할 수 있다. 나아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환경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3%에 못 미친다. 자전거 통근·통학 인구는 1%가 채 안 된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앞으로 본격 추진될 자전거 정책과 함께 이제 한국도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장도 볼 수 있는 자전거 생활권 국가로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


◆2012년까지 2111km 전국 국토일주 자전거도로 조성

정부는 전국 곳곳을 자전거길로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2년이면 총 2111km의 전국 국토일주 자전거 도로가 조성될 예정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자전거 도로는 도로·하천과 연계해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도시 등 택지개발 때 단절 없이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용 도로망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구축된다.

현재 대구시 중앙로와 대전시 등에서 추진 중인 도시 상업지구에서 차로 수를 줄이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 공간을 확보하는 ‘도로 다이어트’도 2010년 이후 전국적으로 본격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철도·지하철역과 터미널 등에 자전거 보관소를 늘리고 자전거 전용열차를 운행하는 등의 이용활성화 방안도 정부와 지자체가 협의해 추진할 방침이다. 이번 주말부터는 약 9일간 전국에서 ‘제1회 대한민국 자전거 축전’이 열린다.

▲자전거도로란?=자전거 통행에 사용하도록 된 도로(도로교통법 제2조 제5호). 안전표시나 위험방지용 울타리 등으로 경계를 표시하는 자전거 전용도로, 차마와 공용할 수 있는 자동차·자전거 겸용도로, 보행자와 공용할 수 있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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