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환경연구소 성명서

무려 1,122개 의약품에 석면탈크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베이비파우더와 화장품에 이어 의약품에 까지 석면에 오염되었다니 가히 ‘석면쇼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식약청은 이들 제품에 대해 판매, 유통금지 및 회수명령을 내렸다. ‘미량의 석면이 포함된 탈크를 사용한 의약품 복용으로 인한 인체 위해가능성은 미약한 것으로 평가’하지만 이번 조치를 ‘국민안심과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석면에 의한 질환 중 석면폐(asbestosis)와 같은 질병은 석면노출량이 많고 기간이 길수록 많이 걸리는 직업병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월 환경부가 충남 보령과 홍성지역 석면광산의 주변마을 주민 33명에 대한 CT촬영 일반주민 7명이 석면폐에 걸린 것으로 조사돼 석면의 환경성노출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이 밝혀졌다. 발병 후 생존기간이 평균 9개월에 불과하여 가장 치명적인 석면암으로 여겨지는 악성중피종(mesothelioma)의 경우에는 환자의 폐에서 발견된 석면섬유가 일반 정상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례보고가 있다. 이는 식약청이 공개한 한국환경독성학회 등의 자문내용인 정상인의 폐에서도 많은 수의 석면섬유가 발견되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문제는 식약청이 무슨 근거로 ‘인체 위해성이 미약하다’고 판단하느냐는 대목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석면에 어느 정도나 노출되었는지에 대한 소위 석면노출평가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불안감 해소’차원에서 대책을 결정했다고 한다. 사실은 문제가 없는데 잘 모르는 국민들이 불안해 하니 달래려고 그런다는 뉘앙스인데, 과연 그런가? 식약청은 석면의 종류와 농도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았더라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어제 4월8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베이비파우더 사용피해자 모임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미 노출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석면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든 작든 있는 것이라면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당연한 질문이요 요구다. 참석자들은 “집단소송을 하려는 목적이 몇 푼 위자료를 받으려는 것 보다는, 소송과정을 통해 석면노출 사실을 확인하고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피해에 대해 건강검진 제도마련과 이를 위한 기금조성 등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 소송의 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와 해당기업은 석면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이 ‘사실은 피해가 거의 없는데 단순히 불안해 한다’고 왜곡하지 말고 10년~50년에 이른다는 긴 잠복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한 아기들이, 석면이 사용된 약품을 복용한 사람들이 평생을 불안에 떨어야 하겠는가? 석면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노동자들에게 석면건강수첩을 발급하는 제도가 있다. 우리는 석면제품을 사용한 노출자들에게도 석면건강수첩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한다. 해당 기업은 이러한 제도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할 책임이 있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제도도입과 기금마련이 이루어진다면 석면노출자들이 불안한 마음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와 더불어 석면노출피해에 대한 입증문제를 시민들에게 전가하지 말고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책임져야 한다. 정부와 가해기업은 석면제품 사용자에 대한 피해대책을 조속히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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