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위클리 공감' (2009.4.1)

비보잉은 나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

몸을 꺾고, 비틀고, 거꾸로 서고, 돌고….

비보이 장경호(26) 씨의 춤을 보면 ‘몸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입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을 뜻하는 비보이의 현란한 움직임은 현대무용, 체조, 발레, 쿵푸, 요가, 농구 등의 동작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요. 장경호 씨는 비보잉(브레이크 댄스)을 한마디로 '자

유'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춤이 비보잉입니다. 땅을 딛고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관객과 교류할 때 완전한 몰입과 희열에 빠져들죠."

비보잉은 장경호 씨에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고,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 합니다.

그는 춤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 하는데요.

영국 시인 예이츠의 시 ‘초등학교 아이들 틈에서’에 나오는 ‘춤추는 사람과 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으리?’ 라는 구절은 그가 가슴으로 공감하는 표현입니다.

비보이 장경호(26) 씨의 춤을 보면 ‘몸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입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을 뜻하는 비보이의 현란한 움직임은 현대무용, 체조, 발레, 쿵푸, 요가, 농구 등의 동작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요. 장경호 씨는 비보잉(브레이크 댄스)을 한마디로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춤이 비보잉입니다. 땅을 딛고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관객과 교류할 때 완전한 몰입과 희열에 빠져들죠." 비보잉은 장경호 씨에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고,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 합니다. 그는 춤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 하는데요. 영국 시인 예이츠의 시 ‘초등학교 아이들 틈에서’에 나오는 ‘춤추는 사람과 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으리?’ 라는 구절은 그가 가슴으로 공감하는 표현입니다.

매일 5시간 이상 연습, 세계 대회 우승을 휩쓸다

장 씨는 어릴 때부터 춤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브레이크 댄스를 잘 추고 싶었고, 세계대회에 나가 우승하고 싶었는데요. 열 살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힙합 춤을 따라하다 비보잉에 빠져든 그는 공부보다 춤이 좋았고, 학교에서, 체육관에서, 부산의 지하철역에서 거리낌 없이 춤을 췄습니다.

비보이가 ‘불량 청소년’이나 ‘춤추는 날라리’ 정도로 인식되던 때였으니 그의 즉석 공연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제가 둔감한 건지 모르겠지만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느낌이 가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했습니다. 춤추고 있을 때만큼은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기에 더 연습에 몰두했죠. 그렇게 쌓은 실력이 전 세계에 알려지니까 불안감이 어느새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더라고요."

장경호 씨는 매일 5시간 이상 춤 연습을 했고, 한번은 사흘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춤을 춘 적도 있다고 합니다. 춤을 추다 쇄골이 부러져 꿈을 포기할 뻔한 시련도 맛보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그의 춤에 대한 열정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급기야 그는 2002년 비보이팀 ‘갬블러’를 결성한 후 2004년 ‘비보이 월드컵’으로 불리는 독일의 배틀오브더이어 우승을 시작으로 같은 해 프랑스 배틀디멧시 우승, 2005년 일본 오키나와배틀페스티벌 우승, 2006년 미국 비보이호다운 우승, 2007년 미국 프리스타일세션 준우승 등 세계대회를 휩쓸었다.

우리의 비보잉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면서 가슴 뿌듯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생각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비보잉을 통해 우리나라를 외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할리우드 무대로의 새로운 도전

지난해 장경호 씨가 이끄는 비보이팀 갬블러(멤버 8명)가

파라마운트사의 영화 ‘하이프 네이션(Hype Nation)’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화제가 되었는데요.

‘하이프 네이션’은 가요 ‘미쳤어’로 뜬 가수 손담비와 ‘시스터 액트’의 스타 우피 골드버그, 미국의 유명 힙합그룹 B2K가 출연하는 비보이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안무 감독도 맡은 장 씨는 최근 워싱턴, LA 등을 돌며 영화 프로모션 공연을 하는 한편, B2K와 함께 영화에 활용할 안무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갬블러의 영화 출연이 한국의 비보이가 새롭게 진화하는 계기이자 대중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데요.

세계적인 비보이가 된 지금도 장 씨는 많은 꿈을 품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간절한 꿈은 국립 비보이단을 만드는 것이라 합니다.

비보이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습니다. 정부나 기업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비보이들의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왔죠. 이제 우리의 비보잉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국립 비보이단이나 시립 비보이단이 만들어지면 각종 문화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비보이들이 각종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후 비보이는 공연뿐 아니라 방송, 광고 등을 통해 문화상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비보이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미래를 불안해하는 비보이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유명 팀 소속이라도 수입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립이나 사립 비보이단이 만들어지면 대학에 비보이 관련 학과도 생기고, 비보이들의 진로도 한층 넓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국립 비보이단, 춤추는 40대 비보이를 꿈꾸며

장 씨는 지난해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예술대 실용무용과 겸임교수와 경희대 수원캠퍼스 강사로 학생들에게 비보이 문화와 실기를 가르치는데, 강의를 정리해 책이나 교재를 만들어 일반인들이 비보잉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비보이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춤이 좋아 춤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비보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물론 일반인들과 좀 더 많은 교감을 나눠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비보이 공연이 국악, 뮤지컬, 굿, 가요 등 다른 장르와 교류하면서 하나씩 경계를 허물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비보잉과 태권도가 결합된 퍼포먼스를 기획 중입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비보이 뮤직컬과는 질적으로 다른 쇼를 만들 생각입니다.”

비보잉은 강한 힘과 유연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20대 후반만 돼도 하기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 해외에는 40대 비보이들도 있다고 하는데요. 장경호 씨 역시 건강이 허락한다면 40대뿐 아니라 그 이상 오래 춤추고 싶다고 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가끔은 희망이나 확신이 흔들리지만 불확실한 미래로 몸을 던져야 할 때도 있죠.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제가 지금까지 지켜온 삶의 방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할리우드 무대로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장경호 씨. 안무 감독, 대학 교수, 강사 등 다양한 위치에 있지만, 무엇보다 '40대에도, 50대에도 자유롭게 즐기며 춤추는 비보이'라는 그의 꿈에 을 보냅니다!

장 씨는 어릴 때부터 춤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브레이크 댄스를 잘 추고 싶었고, 세계대회에 나가 우승하고 싶었는데요. 열 살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힙합 춤을 따라하다 비보잉에 빠져든 그는 공부보다 춤이 좋았고, 학교에서, 체육관에서, 부산의 지하철역에서 거리낌 없이 춤을 췄습니다.

장 씨는 어릴 때부터 춤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브레이크 댄스를 잘 추고 싶었고, 세계대회에 나가 우승하고 싶었는데요. 열 살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힙합 춤을 따라하다 비보잉에 빠져든 그는 공부보다 춤이 좋았고, 학교에서, 체육관에서, 부산의 지하철역에서 거리낌 없이 춤을 췄습니다.

비보이가 ‘불량 청소년’이나 ‘춤추는 날라리’ 정도로 인식되던 때였으니 그의 즉석 공연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제가 둔감한 건지 모르겠지만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느낌이 가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했습니다.

춤추고 있을 때만큼은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기에 더 연습에 몰두했죠. 그렇게 쌓은 실력이 전 세계에 알려지니까 불안감이 어느새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더라고요." 장경호 씨는 매일 5시간 이상 춤 연습을 했고, 한번은 사흘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춤을 춘 적도 있다고 합니다.

춤을 추다 쇄골이 부러져 꿈을 포기할 뻔한 시련도 맛보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그의 춤에 대한 열정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급기야 그는 2002년 비보이팀 ‘갬블러’를 결성한 후 2004년 ‘비보이 월드컵’으로 불리는 독일의 배틀오브더이어 우승을 시작으로 같은 해 프랑스 배틀디멧시 우승, 2005년 일본 오키나와배틀페스티벌 우승, 2006년 미국 비보이호다운 우승, 2007년 미국 프리스타일세션 준우승 등 세계대회를 휩쓸었다.

우리의 비보잉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면서 가슴 뿌듯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생각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비보잉을 통해 우리나라를 외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장경호 씨가 이끄는 비보이팀 갬블러(멤버 8명)가 파라마운트사의 영화 ‘하이프 네이션(Hype Nation)’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화제가 되었는데요. ‘하이프 네이션’은 가요 ‘미쳤어’로 뜬 가수 손담비와 ‘시스터 액트’의 스타 우피 골드버그, 미국의 유명 힙합그룹 B2K가 출연하는 비보이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안무 감독도 맡은 장 씨는 최근 워싱턴, LA 등을 돌며 영화 프로모션 공연을 하는 한편, B2K와 함께 영화에 활용할 안무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갬블러의 영화 출연이 한국의 비보이가 새롭게 진화하는 계기이자 대중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데요.

세계적인 비보이가 된 지금도 장 씨는 많은 꿈을 품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간절한 꿈은 국립 비보이단을 만드는 것이라 합니다. 비보이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습니다.

정부나 기업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비보이들의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왔죠. 이제 우리의 비보잉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국립 비보이단이나 시립 비보이단이 만들어지면 각종 문화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비보이들이 각종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후 비보이는 공연뿐 아니라 방송, 광고 등을 통해 문화상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비보이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미래를 불안해하는 비보이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유명 팀 소속이라도 수입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립이나 사립 비보이단이 만들어지면 대학에 비보이 관련 학과도 생기고, 비보이들의 진로도 한층 넓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장 씨는 지난해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예술대 실용무용과 겸임교수와 경희대 수원캠퍼스 강사로 학생들에게 비보이 문화와 실기를 가르치는데, 강의를 정리해 책이나 교재를 만들어 일반인들이 비보잉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비보이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춤이 좋아 춤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비보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물론 일반인들과 좀 더 많은 교감을 나눠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비보이 공연이 국악, 뮤지컬, 굿, 가요 등 다른 장르와 교류하면서 하나씩 경계를 허물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비보잉과 태권도가 결합된 퍼포먼스를 기획 중입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비보이 뮤직컬과는 질적으로 다른 쇼를 만들 생각입니다.” 비보잉은 강한 힘과 유연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20대 후반만 돼도 하기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 해외에는 40대 비보이들도 있다고 하는데요. 장경호 씨 역시 건강이 허락한다면 40대뿐 아니라 그 이상 오래 춤추고 싶다고 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가끔은 희망이나 확신이 흔들리지만 불확실한 미래로 몸을 던져야 할 때도 있죠.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제가 지금까지 지켜온 삶의 방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할리우드 무대로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장경호 씨. 안무 감독, 대학 교수, 강사 등 다양한 위치에 있지만, 무엇보다 '40대에도, 50대에도 자유롭게 즐기며 춤추는 비보이'라는 그의 꿈에 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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