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천왕사지(사적 제8호)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12월 10일(수) 11:00 경주시 배반동 사천왕사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신라문화권 조사연구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부터 발굴조사를 추진하고 있는 경주 사천왕사지(사적 제8호)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하고 그 동안의 조사 내용과 성과를 관계 전문가 및 일반 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사천왕사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19년(679년)에 창건된 사찰로서 2기의 목탑(木塔)이 배치된 쌍탑식(雙塔式)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가람모습을 처음으로 보이는 곳이다. 특히 이보다 몇 년 늦은 신문왕 2년(682년)에 창건된 감은사 동ㆍ서 삼층석탑과 함께 당시의 건축과 미술은 물론이고, 한국 사찰 구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유적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문무왕 10년(670년)에 당나라와 전쟁을 하던 신라가 명랑법사(明朗法師)의 건의로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도량을 세우고 문두루비법 (文豆婁秘法)을 행하여 당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쳤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호국사찰뿐만 아니라 밀교사찰의 역할도 했던 것으로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문무왕 19년(679년)에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四天王寺)’라 했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동탑지를 비롯하여 동ㆍ남 회랑(廻廊, 정당(正堂)의 양 옆으로 있는 기다란 집채)지, 중문지, 추정단석지(불교의례를 행하는 장소) 등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사천왕사지의 전체적인 가람배치가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조사결과 밝혀진 사천왕사 가람의 구조는 남회랑(南廻廊, 22칸)의 중앙에 중문(中門, 3칸×2칸)이 있고, 이 중문과 금당(金堂, 5칸×3칸), 강당(講堂, 현재 미발굴 상태이며, 철도로 인해 일부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이 남북 일직선상에 위치한다. 금당의 남쪽 동서 양측에 목탑(木塔)이 세워져 있고, 금당과 동서회랑(東西廻廊, 31칸)을 연결한 익랑(翼廊, 9칸)이 갖추어진 형태이다. 특히, 강당의 우측에서 감은사지와 같은 장방형 건물지가 확인되어 관계 연구자의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찰의 중심건물인 금당과 목탑의 기단(基壇) 축조 수법은 강돌(川石)과 토사(土砂)를 한 겹씩 교대로 다져 가면서 쌓은 특이한 구조로 토사만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기단을 조성하는 백제의 판축기법(版築技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어서 앞으로 관계 분야의 연구가 기대된다.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사천왕사지에서 수습된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이 표현된 3종류의 녹유전(綠釉塼)이 서목탑지(西木塔址, 2006년 조사)에 이어 동목탑지(東木塔址)에서도 확인되었다. 이 녹유전은 목탑의 기단부(基壇部)를 장식하였던 면석(面石)으로 사용되었으며, 배치순서도 기단의 계단을 중심으로 인물의 얼굴방향에 맞추어 각 면에 6개씩(3상×2조) 모두 24개(4면×6개)가 배치되어 목탑을 사주경계(四周警戒)하는 모습이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6년부터 진행된 사천왕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내용의 상세한 검토와 향후 조사방향 설정을 위해 2008년 12월 11일(목) <신라 호국의 염원, 사천왕사>라는 주제로 학술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사천왕사지 발굴조사 현장 설명회>
ㅇ 일 시 : 2008. 12. 10(수) 11:00
ㅇ 장 소 : 경주시 배반동 사천왕사지 발굴조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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