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댄의 최이현 대표. 서울시가 업사이클링 메카로 조성한 <서울 새활용플라자>(성동구 용답동)의 대표업체로 입점한 상태다.(사진=C영상미디어)

[뉴스데일리]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폐차는 가방을 남긴다.”

난센스 퀴즈 같은 말이지만, 이것은 실화다. 모어댄의 손길이 닿으면 폐차에서도 최고의 명품백이 만들어진다. 모어댄은 폐차에서 천연가죽을 수거한 뒤 세척과 코팅 등의 작업을 거친 업사이클링(Up-cycling) 원단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단은 40년 이상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장인의 손에 의해 가방과 지갑으로 재탄생한다. 소재의 장점을 살리는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어필하고 있다. 실제로 봤을 때 재활용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질감과 광택은 물론 냄새까지도 새것의 느낌이다.

“자동차 시트용 가죽은 수명이 45년입니다. 고온과 습기를 견딜 수 있게 가공되었고, 손때에도 강한 특징이 있죠.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단가가 높고 질 좋은 가죽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환경호르몬 때문에 태울 수 없어서 폐차 과정에서 전부 매립해야 하죠. 이렇게 좋은 가죽인데, 너무 아깝지 않나요?”

모어댄 최이현(38) 대표는 자동차 산업에서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우리나라에서 폐차되는 자동차는 한 해만 79만(2016년 기준) 대에 이를 정도로 많다. 폐차의 재활용률은 80~90%인데, 활용 영역이 늘어날수록 환경부담과 처리비용을 줄일 수 있어 자동차 산업과 자원 순환 생태계에서 필수 산업으로 인식된다. 폐차는 중고부품이나 단순 고철 외에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 의자의 내부 스펀지는 소파나 가구의 내장재로 활용되고, 분쇄된 인조가죽은 천연고무와 섞어 재생가죽으로 새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천연가죽과 에어백, 안전벨트는 재활용이 불가능해 폐차업체에서도 돈을 내고 버려야 한다. 최이현 대표는 이것에 주목했다.

아끼던 차를 폐차하며 얻은 사업 아이템

“한국은 거대한 자동차 시장이 형성돼 있습니다. 자체 생산으로 수많은 하부 산업이 있고, 현대·기아·쌍용 등 자동차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장의 크기에 비해 사회적 사업은 미비했습니다. 시골 마을에 차를 기부한다든지, 취약계층을 돕는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있었죠.”

영국 유학 시절, 최이현 대표의 석사논문 주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었다. 머릿속에만 있던 논문 주제는 우연히 겪은 뺑소니 사고로 구체화됐다. 주차해둔 ‘애마’가 다음 날 반파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낡은 차였지만 함께 쌓은 추억으로 더없이 아끼던 것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수리비로 결국 폐차를 결정했는데, 이때 유일하게 건진 것이 자동차 시트였다.

자동차 시트는 한동안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이를 본 친구들이 “가죽으로 에코백을 만들어 간직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생각해보니 폐차에서 나온 가죽은 가방의 몸통으로, 안전벨트는 끈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2013년 봄, 한국에 돌아온 그는 동대문시장으로 달려가 가방 샘플부터 만들었다. 예상보다 좋은 품질의 가방이 만들어지자 곧바로 300여 곳의 폐차장을 돌면서 가죽을 모으기 시작했다. 자동차 폐기물을 이용해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사업은 그렇게 작은 곳에서 시작됐다.

물론 쉽지 않았다. 폐기에 돈이 드는 폐차 가죽인데도 필요하다고 하니 비싼 값을 불렀다. 그러다 시트 스펀지를 재활용하는 업체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스펀지 재활용 업체에서는 그에게 무상으로 가죽을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가죽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업체 입장에서는 처리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았고, 최 대표로서는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모가 심한 엉덩이 부분은 제외하고 등과 헤드 등의 가죽을 뜯어냅니다. 사고 차량의 가죽을 사용할까 봐 염려하시는 분도 있는데, 사고 차량의 가죽은 오히려 뜯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폐차 가죽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역시 세척이다. 가죽에 배어 있는 담배나 방향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물 세척은 기본, 건조 후에도 가죽이 뻣뻣해지지 않도록 자체 개발한 세제와 코팅제를 사용한다. 세제 개발에만 1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모어댄’이 탄생했다. 모어댄의 창립기념일은 6월 5일인 ‘환경의 날’이다. 업사이클링 기업다운 선택이었다.

국내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리더 랩몬스터는 지난 10월 말 유럽 여행을 떠난 모습을 SNS에 공개했다. 국내 최정상의 아이돌 그룹의 리더로 수많은 협찬 요청을 받는 그가 선택한 가방은 모어댄에서 만든 엘카 백팩이었다. 이 제품은 ‘랩몬백팩’으로 불리며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주역이 됐다. 최이현 대표는 패션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연예인 효과를 직접 체험한 셈이다.

“저희도 기사를 보고 알았어요. 협찬이었다면 가장 최신 모델을 줬을 텐데…. 그 제품은 2년 전에 단종된 모델이라 순수 고객이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죠. 구매를 요청하는 고객분들이 많아서 결국 재생산하게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문의 메일이 오기 때문에 아이돌의 파워를 실감하고 있죠.”

방탄소년단 이외에도 강호동, 김생민 등이 예능프로그램에 착용하고 나오면서 빠르게 입소문이 나고 있다. 연예인 효과는 즉각적이기도 하지만, 유명인이 선택한 제품이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져 제품의 인지도와 공신력이 함께 향상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탄탄한 제품 덕이다. 최이현 대표는 사회적기업이라 해도 사회적인 메시지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회적기업도 기업이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이 첫째가 돼야 합니다. 명분이나 의미만으로 구매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사회적 메시지는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그것만으로 승부를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모어댄은 자체 공장 대신 명품 가방을 만드는 장인들을 통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택했다. 통원단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음새 부분이 필연적으로 들어가는데, 그것을 디자인으로 보이게 재단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기술과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비용이 두 배 이상 든다. 하지만 원단비용이 무료이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기성 제품은 한 제품에 샘플을 두 번 정도 만들기 때문에 두세 달이면 완성품이 나오거든요. 그에 반해서 저희는 샘플만 열다섯 번씩 고쳤고, 작업 기간도 7개월 정도 걸렸죠. 개발비만 1000만 원 넘게 들었어요. 하지만 ‘쓰레기 가져다가 쓰레기 가방 만든다’는 소리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어요.”

모어댄의 브랜드 ‘컨티뉴’가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은 60여 종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에어백으로 만든 가방도 선보였다. 에어백은 폭발가스의 충격을 견뎌낼 정도로 질기고 방수도 되는 특수소재인 데다 하늘, 분홍, 회색 등 색감도 다양하다. 캔버스와 비슷한 느낌의 에어백은 가볍고 시원한 질감으로 여름 백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2017년 10월 방탄소년단 랩몬스터가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엘카 백팩을 메고 있는 모습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bts_twt

2017년 10월 방탄소년단 랩몬스터가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엘카 백팩을 메고 있는 모습.(사진=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bts_twt)

역발상으로 맞선 기업 경영

완판의 신화는 처음부터 예견됐다. 2016년 2월, 카카오 메이커스를 통해 처음으로 제품을 선보였는데 100개의 가방은 사흘 만에, 500개의 지갑은 두 시간 만에 매진됐다. ‘자원의 선순환’이라는 콘셉트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최이현 대표는 이때 시장성을 확신했다. 일반 상식으로는 이 시기에 제품 생산에 총력을 기울인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출을 해서라도 무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 대표는 그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오히려 7개월 동안 제품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시장성을 확인했다고 생산 규모만 늘리면 금방 소모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자금력이나 생산력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독이 될 거라는 판단이었죠. 경영과 디자인에 집중하고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어요.” 

최 대표는 이 시기에 홍보와 오리지널리티 확보를 위해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사업성에 대한 평가는 각종 수상으로 입증됐다. 전국소셜벤처대회 장려상부터 시작해 아시아소셜벤처대회 대상, 중소기업청장상에 이어 전국 6600개 벤처기업이 출전한 창업경진대회 ‘도전! K-스타트업’에서는 최종 Top 10까지 들었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초기 자금을 지원받고, SK이노베이션의 후원 프로그램에도 선발돼 경영 멘토링과 운영자금 1억 원을 지원받았다.

“덕분에 자금난을 덜 수 있었습니다.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지원받은 법률과 회계, 특허, 마케팅 등 창업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과 SK이노베이션의 경영과 홍보에 대한 지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건 전국의 완성차 업체 벤더들의 연락이었어요. ‘도전! K-스타트업’을 본 관계자들이 사용하지 않은 재고 가죽을 그냥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덕분에 모어댄의 제품군을 빈티지(폐가죽), 자투리(재조합가죽), 오리지널(새 가죽)로 다각화할 수 있었다. 지원금은 물론 원재료의 공급망을 더 넓힐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

컨티뉴의 제품 가격은 2만~3만 원대의 카드지갑부터 10만~30만 원대의 백팩이나 토트백까지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 그런데 업사이클링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버리는 가죽인데 이렇게 비싸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최이현 대표는 이 또한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시장에 나선 이상 ‘고객이 맞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컨티뉴 제품 중 베스트셀러는 인기가 높아질수록 제조 공정을 개선해 가격을 낮추는 가격 역주행이 일어나기도 한다.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장과 온라인에서 꾸준히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13개의 백화점 매장과 3곳의 팝업 매장 운영뿐만 아니라 2017년 9월에는 고양 스타필드에도 입점하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큰 호평을 얻고 있다.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15개국의 사람들이 구매했고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그리스, 스페인, 영국 등에서도 바이어들을 통한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 폭스바겐 저팬과 함께 미국과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자동차 업체들이 판촉용으로 대량 주문을 하기도 했다.

1 에브리데이 백팩 컨티뉴의 모든 기술을 접목시킨 업사이클링 가죽의 대표작. 실용적인 내부 공간과 꼼꼼한 마감으로 완성도가 높다. 2 컨티뉴 콘월 여성 반지갑 심플한 쉐입에 중앙 지퍼 칸의 골드메탈 장식이 포인트 3 컨티뉴 여권 케이스 여권과 카드 수납이 동시에 가능해 실용성과 디자인 모두 챙겼다. 4 컨티뉴 포켓 카드 지갑 직장인 선호도 1위 제품. 카드, 신분증, 명함 등을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1) 에브리데이 백팩. 컨티뉴의 모든 기술을 접목시킨 업사이클링 가죽의 대표작. 실용적인 내부 공간과 꼼꼼한 마감으로 완성도가 높다. 2) 컨티뉴 콘월 여성 반지갑. 심플한 쉐입에 중앙 지퍼 칸의 골드메탈 장식이 포인트. 3) 컨티뉴 여권 케이스. 여권과 카드 수납이 동시에 가능해 실용성과 디자인 모두 챙겼다. 4) 컨티뉴 포켓 카드 지갑. 직장인 선호도 1위 제품. 카드, 신분증, 명함 등을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잉여 인력의 선순환을 실현하다 

모어댄은 유연한 인재 채용으로 사회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늘리고 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고용에 이보다 더 적극적인 기업도 없다. 본사 여섯 명의 직원과 매장 열 명의 인력 중 절반가량이 경력단절여성이다. 최 대표는 다른 곳에서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먼저 일자리를 주려고 한다.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상품 기획이나 디자인 담당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했다. 매장 직원 역시 일하고 싶은 시간을 선택하게 했다.

“기혼 여성분들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때 일을 가장 많이 그만둔다고 해요. 취학 전에는 오히려 일할 수 있는데, 하교가 이른 저학년 때는 일을 하기에 애매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희는 근무시간을 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고 있어요. 초등 아이를 둔 엄마는 오전 9시 30분부터 1시까지 근무하고, 사람과의 대면 연습이 필요한 북한이탈주민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의 짧은 근무를 하고 있죠.”

최이현 대표는 스타트업 기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재이지만, 대기업과 달리 많은 연봉과 복지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 사정에 맞추는 사람 중심의 전략을 쓰고 있다. 실제로 모어댄의 제품 라인업을 짜는 사람은 국내 대형 명품업체에서 상품기획본부장으로 일했던 여성이다. 육아를 위해 퇴사한 그녀에게 최 대표는 “한 달에 3일만 출근해달라”고 요청해 영입에 성공했다.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시간도 제각각이다. 평일과 주말 근무자도 다르다. 저마다 사정에 맞춰 근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 대표는 그들의 경륜과 열정 덕분에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정부에 아쉬운 점도 이야기했다.

“사회적기업이 경력단절여성의 고용 지원을 받으려면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내기 힘들고 취업이 급한 분들에게 프로그램 이수까지 요구하는 일은 오히려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들어요. 고용 확대를 위해서라도 문턱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이현 대표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달변을 넘어 오랜 여문 생각과 철학이 발현된다는 느낌이었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역할은 상상 이상이다. 이것은 모어댄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가치와 철학이 쉬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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