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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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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8  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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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면 서울여대 교수.

[뉴스데일리]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란 번역하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번역 불가론’을 강조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비단 시 뿐만이 아니다. 어떤 장르의 글이든 원문의 미묘한 뉘앙스나 행간의 의미, 나아가 영혼의 숨결까지 그대로 다른 언어로 담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번역을 포기하는 것은 곧 풍요로운 문명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번역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최근 국내 한 출판사에서 해외 유명 작가의 소설 원문 일부를 제시하고 바른 번역을 구한다고 공지하자 4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출판사측은 “가장 직역에 가까우면서 작가의 문체를 살리려 애쓴 번역자들을 선정했다.”며 ‘올바른’ 번역문의 사례를 제시했다. “원문의 대명사, 쉼표, 마침표, 접속사, 행갈이 등 작가의 문체를 온전히 살린 번역은 찾기 어려워 아쉬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번역 생산의 한 축인 출판사가 번역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 같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가 번역용으로 예시한 문장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He took another full piece and chewed it.’이라는 것이다. 대어와 사투를 벌이기 직전 노인이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 물고기로 든든히 속을 채우며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는 대목이다.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등 메이저 출판사들의 번역본이 참고용으로 제시됐다. 번역본은 세부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를테면 ‘노인은 다른 토막 하나를 통째로 집어서 씹어 먹었다.’라거나 ‘노인은 새로 또 한 조각을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혹은 ‘그는 또 다른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라는 식이다. 출판사측은 이런 기존의 번역문과는 달리 ‘그는 또 다른 온전한 조각을 집어서 씹었다.’라고 옮긴 것을 올바른 번역의 범례로 정했다. 섣부른 의역보다는 원문에 충실한 직역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왜 직역인가.  

직역을 하면 상대적으로 문법적 오류가 덜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직역이 의역보다 쉽다고도 한다. 반드시 그러한가. 문법은 언어의 바탕이요 말을 담는 그릇이다. 문법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충실하게 옮기는 것, 즉 직역 자체가 불가하다.  원문 전체의 뜻을 살려 번역하는 의역으로 나아가는 것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문장의 육체도 옮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문장의 영혼을 번역할 수 있겠는가.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 분명한 것은 문법을 파악하는 것이 번역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번역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말하고 쓰는 것은 잘 못해도 번역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그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오역과 졸역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번역에 관한 그런 오래된 ‘미신’부터 깨야 한다. 번역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출판사측이 올바른 번역의 사례로 제시한 것이 과연 ‘한국어 문장’으로서 적합한 것인가. ‘온전한 조각’이라는 대목은 사뭇 낯설다. 텔레비전 사극에 나오는 ‘∼것이야’ 같은 말투만큼이나 생경하다. 일상에서 누가 그런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쓰는가.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군더더기 없는 비정한 문체를 구사하는 헤밍웨이의 문학정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인지 의문이다.

원문의 의미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면 형용사 ‘풀(full)’은 부사적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한결 우리말답다. 모름지기 문학은 문학으로 번역해야 한다.    출판사측은 작가의 문체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원문의 쉼표나 마침표 등 구두점까지 철저하게  살리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구두점은 문장의 기본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에번 코넬은 단편소설의 초고를 읽어 내려가면서 쉼표를 하나씩 지웠다가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쉼표를 원래 있던 자리에 되살려놓는 과정을 거치면 단편 하나가 완성된다고 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 과장하면 일점일획(一點一劃)이 글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직역을 완고하게 고수할 경우 의미가 제대로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별 언어의 특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쉼표나 마침표의 개수까지 맞춰 옮긴다면 그 번역문은 읽기 어려운 것을 넘어 원문의 의미를 왜곡하기 쉽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의미 자체를 전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좋은 번역은 직역과 의역의 조화의 산물이다. 영국 작가 앤서니 버지스가 지적했듯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게 아니라 전체 문화(whole cuiture)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른바 ‘문화번역’의 문제다. 한 출판사의 작지만 큰 행사가 번역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필자: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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