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조성 예상도를 보면 왼쪽으로 국립중앙박물관, 멀리 남산이 보인다. (제공=국토교통부)

[뉴스데일리]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이라는 새 옷을 입고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2012년 국제 설계공모의 당선작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West8 팀)’을 바탕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다.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에 합의한 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용산공원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있다.

1990년 6월,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한미 간의 기본합의서와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기지 활용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원보다는 임대주택 건설, 주거단지 개발, 복합상업시설 개발 등이 논의의 주를 차지했지만, 점차 주거지 개발론과 공원화론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이전 비용 부담 문제로 소강상태에 들어간 논의는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용산기지 이전에 합의함으로써 급물살을 타게 된다. 정부 내에 담당 조직과 위원회가 설립되고 다양한 연구와 구상 프로젝트가 줄을 잇는다. 이 과정을 거치며 종래의 주거지 개발론은 자취를 감추고 ‘민족·역사’와 ‘생태’를 키워드로 한 공원화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이즈음 공원화 논의를 정부 차원에서 다룬 최초의 계획인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2005)이 발표됐고, 참여정부는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2006)과 ‘용산공원특별법’ 제정(2007)을 통해 용산공원 프로젝트의 토대를 마련했다. 공원화 프로세스에 가속이 붙는다.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2009)와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2011)을 통해 공원의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2012)를 통해 기본계획안의 밑바탕을 마련했다. 2012년 설계공모는 20년 넘게 계속된 공원화 담론을 디자인 단계로 이행하는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정작 2012년 이후 용산공원은 얼어붙는다. 설계공모 당선작을 바탕으로 진행된 ‘웨스트8’의 기본설계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공전했다. 환경복지를 대표적 공약 중 하나로 내건 박근혜 정부였지만 용산공원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 국회의원이 주도해 설계비를 전액 삭감해도 수수방관했다. 정부 주도 공공사업의 전형을 되풀이하며 사업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고 형식적 절차만 챙겼다.

2005년 구상, 2011년 기본계획, 2012년 설계공모를 관통하는 철학이었던 과정 중심적 계획, 열린 계획, 단계별 계획, 시민 참여는 장식적 구호로 전락했다. 반대 여론이 일어나면 정치 공세라고 억울해 할 뿐 소통과 대화의 의지 없이 4년을 흘려보냈다. 작년에는 뜬금없이 용산공원 내 콘텐츠 선정안을 발표하면서 서울시로부터 ‘토건시대의 난개발’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러 언론과 시민사회도 정부의 일방통행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올해 대선 직전, 문재인 당시 후보는 이른바 ‘광화문 대통령’ 공약의 일환으로 광화문광장 재구성과 용산 생태자연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되면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생태자연공원이 조성될 것”이라며 “북악에서 경복궁, 광화문, 종묘, 용산, 한강까지 이어지는 역사, 문화,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 벨트가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용산공원을 통해 “서울은 세계 속의 명품 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이후 역대 정권은 용산공원 조성과 관련해 늘 센트럴파크, 생태공원, 문화 벨트, 명품 도시를 말해 왔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0년 간 용산공원 조성 사업에서 소홀히 여긴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보고 최초의 국가공원으로 만들어질 용산공원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정부, 전문가,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토론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과정’에 초점을 둔 공원 계획이 필요하다. 2017년 현재, 미군의 평택 이전이 본격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부지의 완전한 반환까지는 앞으로도 긴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공원 계획, 설계, 조성, 관리를 비롯한 공원화 사업 전체를 장기적 관점에서 탄력적으로 담아낼 과정 중심적 단계별 계획이 중요하다.

용산공원을 둘러싼 국내외 정치적 변수에 대비해 2018년에 완성될 기본설계(조성계획)안은 예정대로 마무리해서 공원의 기본 틀과 골격을 잡아야 한다. 물론 그러한 틀 속에 담을 내용은 보다 긴 호흡으로 구상해야 할 것이다. 기본설계안 완성 후 기지 반환 절차가 완료되기 전 사이의 공백기에는 다각적 조사와 연구, 토론을 통해 공원의 본격적 조성을 위한 밑바탕을 다져야 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

둘째, ‘도시와 대화하는 공원’을 계획해야 한다. 용산공원은 다른 대형 공원처럼 도시 속의 녹색 섬이 되지 않아야 한다. 도시를 향해 담을 쌓은 폐쇄적 공원이 아니라 도시의 구조 및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도시를 발전시키는 공원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원 내부의 계획뿐만 아니라 공원과 도시의 접면을 다루는 계획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용산공원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해소돼야 한다. 그래야 공원계획과 주변부 도시계획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소유권, 기지 이전과 공원 조성비용 부담, 조성 주도권 등은 대통령과 시장의 정치적 지향이 비슷하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협치의 지혜를 발휘해 용산공원과 관련된 서울시와의 오랜 대립을 풀어가야 한다.

셋째, 정부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의제는 공원 ‘영역과 경계’의 문제다. 용산기지 본체 부지는 이미 1990년대부터 반환되기 시작해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섰다. 이후 한미 협정에 따라 드래곤힐 호텔과 방호 부지가 사우스포스트의 요지를 계속 차지하게 됐다. 미 대사관이 메인포스트 북쪽에 들어설 계획이며 반환될 예정이던 한미연합사 부지도 전시작전권이 이양될 때까지 공원 영역에서 제외된다.

우리 정부의 국방부는 현재의 부지를 앞으로도 계속 사용한다. 이대로 조성된다면 정상적인 하나의 공원 형태를 갖추기 어렵다. 지금까지 영역과 경계의 문제는 한미 관계, 안보, 방위의 차원이라는 이유로 공원 계획과 별개로 취급됐고, 미국 측 요구가 그대로 수용됐다. 문재인 정부는 용산공원의 기형적 영역과 경계 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외교력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 이전 이슈도 적극 검토해 주기 바란다. 공원 계획과 나란히 진행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마지막으로, 용산공원 계획과 조성 과정에는 지속가능한 ‘참여와 소통’이 동반돼야 한다. 전문가 중심의 연구와 계획은 늘 있었다. 하지만 수사와 구호로만 소비되고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누가 어떻게 만들고 보살펴야 용산공원이 다음 세대를 위한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지 시민과 전문가의 지혜를 모으는 참여의 장이 계속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 5월 19일부터 공원 디자인, 경영, 예술, 역사, 도시, 생태 등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모여 공원의 미래를 토론하고 있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 1.0’에 주목할 만하다. 오는 10월 20일에는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와 함께하는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

이러한 소통의 장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용산공원 관련 브라운백 미팅, 투어 프로그램, 디자인 랩 등 다각적 방식의 참여 채널이 운영되어 정부, 전문가, 시민 사이의 협력 거버넌스가 구축되기를 바란다. 공원은 대화와 소통의 열린 공간이다.

필자: 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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