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형 특허청 상표심사정책과 과장.

[뉴스데일리]한 아버지가 20년 전 어느 골목에 작은 분식집을 차렸다. 가게 이름은 ‘아빠분식’. 흔한 이름을 가진 이 분식집은 아버지의 오랜 노력 덕에 나름 입소문이 나서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동네 맛집 정도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분식’에 한 통의 경고장이 날아들었다. ‘상표권에 대한 침해를 중지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작년에 등록받은 상표권자가 보낸 이 경고장은 ‘아빠분식’이 본인의 권리를 침해했으니 가게 이름을 바꾸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동네 맛집 ‘아빠분식’은 20년간 사용했던 간판을 바꿔야 할 것인가?

사례에서와 같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상표 등록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상표권이라는 권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출원 및 등록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며, 또는 상표등록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표의 출원이 최근 5년간(2012~2016) 연평균 약 16만 6000건에 달한다는 통계는 타인의 상표권 침해로 경고장을 받는 것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실제 정책현장에서 마주하는 상표 다출원 기업들은 상표권이라는 독점배타적 권리를 그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매서운 권리자다. 그들은 상표를 통해 소비자의 인지도와 신뢰를 확보하는 한편,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모방과 짝퉁에 대해서는 즉각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다. 더욱이, 타인에게 합의금이나 상표사용료를 요구 하기 위한 부정한 목적으로 다수의 상표를 선점하는 브로커들에 의해 많은 소상공인의 피해가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권리가 있다 해도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상표법은 정당한 상표권자와 비용·정보부족 등으로 상표등록을 하기 어려운 소규모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를 균형 있게 보호하기 위해 선의의 사용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법 제90조에 따르면 부정경쟁 목적 없이 상호를 상거래 관행에 따라 사용하는 상표에 대해서는 등록상표의 효력이 미치지 않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법 제99조에서는 ‘선사용에 따른 상표를 계속 사용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선사용의 요건으로는 우선 부정경쟁의 목적이 없이 타인의 상표출원 전부터 국내에서 계속하여 사용하고 있어야 하며, 다음으로 상호 등 인격의 동일성을 표시하는 수단을 상거래 관행에 따라 상표로 사용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상의 요건을 충족한다면 ‘아빠분식’은 선사용권을 인정받아 가게 이름을 바꾸지 않고도 영업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상표권자는 자기의 상품과 ‘아빠분식’ 간 출처의 오인이나 혼동을 방지하는데 필요한 표시를 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현행 우리나라 상표제도는 등록주의, 즉 먼저 등록한 자에게 권리를 준다는 원칙 하에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먼저 등록했는지만 강조하다 보면 사례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상표를 ‘실제로 사용하는 자’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사용주의 요소가 일부 도입됐다.

가령 상표를 등록받았더라도 3년간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불사용취소심판제도를 통해 그 상표등록의 취소를 요구할 수 있으며, 특허청 심사관은 출원인의 상표사용의사에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경우 사용계획서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이른바 상표브로커로부터 선량한 상표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표브로커 피해신고사이트(www.kipo.go.kr)를 운영 중이며 상표브로커에 의한 출원이 의심되는 건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심사를 실시하고 있다.

특허청의 이러한 정책적 노력으로 상표브로커에 의한 출원은 2014년 6293건 대비 2016년 247건으로 96.1% 급감했으며 국민의 다양한 상표사용 기회 또한 확대됐다.

‘아빠분식’은 간판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빠분식’이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표를 등록하는 것이다. 아울러 ‘아빠분식’이 우리동네 맛집을 넘어서 성장하고자 한다면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적절한 시점의 상표등록이 필수적이다.

상표를 포함한 특허,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은 아직 대기업이나 전문가만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올 7월 현재 유효한 등록상표가 110만여 건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상표권는 이제 남이 가진 낯선 권리가 아니라, 내 권리 또는 우리 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는 일상 속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필자:박호형 특허청 상표디자인심사국 상표심사정책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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