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강원도 춘천시 의암빙상장에서 평창패럴림픽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데일리]선수들은 의족을 벗고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빙상장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보조기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족과 휠체어 대신 양날이 달린 썰매에 앉아서 아이스하키 훈련을 시작한다. 장애를 벗어던지고 빙상장을 자유롭게 누비는 그들은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한민수(47) 선수는 두 살 때 관절염을 앓으면서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학창 시절 목발을 짚고도 친구들과 축구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골수암으로 전이돼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렇게 휠체어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그는 휠체어 농구를 시작으로 결국 하키스틱을 손에 쥐고 달리는 장애인 국가대표가 됐다. 그동안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실업팀에 입단하기 전에는 평일에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다. 일과 운동을 병행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꿈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한민수 선수는 “빙상장에서 하키스틱을 쥐는 순간,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고 말한다. 팀의 맏형 한민수 선수는 올해로 경력 18년 차 베테랑이다.

IPC 선정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 정승환

3월 14일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훈련 중인 강원도 춘천시 의암빙상장을 찾았다. 국가대표팀은 오는 4월 11일부터 20일까지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리는 ‘세계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훈련 중이었다. 썰매를 타는 데는 휠체어와 의족 모두 불필요한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빙상장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보조기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한민수 선수는 “보조기구를 벗고 썰매를 탈 때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훈련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건 썰매와 2개의 하키스틱뿐이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경기에서는 스케이트 대신 양날이 달린 썰매에 앉아서 스틱을 양손에 쥐고 퍽(puck)을 상대 골에 넣는다. 썰매의 특성상 다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대체 종목으로 성장했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패럴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현재 동계패럴림픽 경기에서 가장 격렬하면서도 인기 있는 종목이다. 경기 방식은 아이스하키와 똑같다. 한 팀은 골키퍼를 포함해 6명의 선수로 이뤄진다. 장애인 아이스하키를 하는 선수들의 장애 종류는 다양한 편이다. 뇌병변, 하반신 마비 등으로 최소한 발목 이상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팀의 간판 정승환(31) 선수는 이종경 선수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 둘은 평택의 한국복지대학교 동기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친해졌다. 먼저 아이스하키에 빠져 있던 이 선수가 정 선수에게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정 선수는 다섯 살 때 공사현장의 파이프에 깔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뒤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선수의 권유를 받았을때 정 선수는 이상하게 빙상장으로 이끌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선수 생활이 벌써 14년 됐다. 현재 그는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다.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이종경 선수가 평범한 학생이었던 정 선수를 발탁한 셈이다. 이 선수는 “처음에는 훈련을 많이 힘들어하던 정승환 선수가 이제는 세계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면서 “대학 동기이자 국가대표팀 동료로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선수 23명으로 확대 선발, 경쟁체제로 간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올해 3월에 열린 ‘2017 토리노 국제 아이스슬레지하키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다. 평창패럴림픽에서만큼은 금빛 승보를 올리기 위해 선수들은 현재 맹훈련 중이다. 서광석(40) 감독의 말이다.

“현재 국가대표팀은 17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를 23명으로 확대 선발해 선수들 사이에 선의의 경쟁을 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선수들은 비록 신체적인 장애를 가졌지만 정신력과 투지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칩니다. 평창패럴림픽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강훈련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김태호(34) 코치는 선수들의 훈련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평창패럴림픽 전까지 선수 개개인마다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공격과 수비 부문의 디테일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해나가려고 합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는 동계패럴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격렬한 운동이다. 선수들은 거친 몸싸움과 썰매의 날카로운 칼날 때문에 부상을 달고 산다. 실제 경기를 하다 보면 손가락 골절은 말할 것도 없고 칼날에 손을 베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없던 장애까지 생길 정도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부상은 이제 하나의 훈장이 돼버렸다. 선수들은 부상이 이 종목의 매력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만큼 여기 모인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동료애가 남다르다. 각자 다른 이유로 모였지만 결국 그들은 ‘아이스하키’라는 견고한 연결고리로 묶인 것이다.

장애는 순식간에 아이스하키의 퍽처럼 날아왔지만 선수들은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빙상장에서만큼은 장애를 잊고 자유롭게 활보하는 늠름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다. 서광석 감독은 “목표는 평창패럴림픽 금메달이지만 지금도 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모습은 충분히 금메달감이라고 생각한다”며 “금빛 사냥에 나서는 선수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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