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애 위원.

[뉴스데일리]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늘고 있다. 국정원이 밝힌데 의하면, 해외주재관의 탈북은 2013년 8명에서 2014년 18명, 2015년에는 10월까지 20명으로 증가했다. 한편 북한에서 교원, 연구원, 의사 등 전문직 출신 탈북자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 거주 기간이 5∼10년인 탈북자 가운데에선 전문직이 2.5%였지만, 1∼3년인 탈북자 가운데에선 5%를 차지한다. 엘리트층의 탈북이 2배로 늘어났다는 의미다.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한국으로 망명해 큰 파장을 낳았다. 지난달 하순에는 중국 베이징 북한대표부에서 근무하던 북한 보건성 국장급 간부가 가족과 함께 탈북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중 국경 통제 강화 등으로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던 전체 탈북자 수도 올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수는 89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다. 최근에는 북한의 수해로 국경연선 통제가 약화되면서 탈북자가 늘어 중국공안에서는 조사도 하지 않고 북송하고 있다.

북한 엘리트층 탈북의 급속한 증가는 직접적으로는 김정은의 공포정치와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제재의 영향이다. 최근 입국하는 탈북 엘리트의 절대다수가 외화벌이와 연관된 해외주재관들이다. 과중한 외화벌이과제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조금만 잘못해도 가해지는 가혹한 처벌이 그들을 탈북으로 떠밀고 있다.

그러나 북한엘리트 탈북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있다. 북한 엘리트층의 가장 큰 고민은 자기 자식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오극렬(국방위원회부위원장)의 아들 오세현, 김원홍(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 강석주(노동당국제담당비서)의 아들 강태성, 김충일(김정일 서기실 전부부장)의 아들 김철훈, 김창섭(국가안전보위부 정치국장)의 아들 김창혁, 리수용(외무상)의 아들 리일혁 등이 외화벌이회사에 적을 두고 외화를 벌고 있다.

북한정권의 미래가 확고하다면 외화벌이가 아니라 자식들을 당과 국가의 요직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북한정권이 무너지는 경우에 처벌을 피할 수 있고 돈을 저축해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외화벌이가 좋은 직업이다. 그러나 이는 최고위층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세상물정을 아는 중상층 간부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살 수 있도록 자식들을 사전에 준비시키려 하고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 있는 먼 친척과 전화가 연결됐다. 그는 북한의 중견급 간부였다. 그런데 그가 하는 부탁이 너무 뜻밖이었다. “내가 우리 아들을 보낼 테니 공부 좀 시켜줄래?”

북한에서 자식을 유학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유학의 대안으로 자식을 남한으로 떠나보내고 있다. 태영호 공사의 탈북 이유의 하나도 자식의 장래였다. 북한에 돌아가면 영국에서 공중보건 경제학 학위를 받은 맏아들이 뜻을 펴볼 곳이 없고 명문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던 수재인 차남도 대학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최근 들어 시장에서 돈을 축적해서 먹고살 걱정이 없는 중산층도 자식을 위해 탈북하고 있다. 한 탈북자는 먼저 탈북한 언니가 돈을 보내줘서 괜찮게 살았다. 언니는 탈북은 위험하니 그냥 거기서 살라고 했다. 그런데 전화하면서 언니의 자녀들이 남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스튜어디스, 유명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자신의 자식들은 처지가 달랐다. 결국 그는 탈북을 선택했다.

현재 북한주민, 특히 탈북엘리트의 급속한 증가는 엘리트들 속에서 북한미래에 대한 불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로버트 치알디니 애리조나대학교 교수가 제창한 ‘사회적 증거의 법칙’에 따르면, 사람들은 무언가 믿거나 행동할 때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고 비슷한 예가 많으면 그대로 따라 한다.

 

이번 태영호 탈북에 이은 보건성 출산 간부의 탈북, 중국 식당에서 일하던 13명 종업원의 집단탈북에 이은 러시아 벌목공의 집단탈북이 보여주는 것처럼 탈북현상은 도미노처럼 연결되고 증폭된다. 김정은이 핵무력 우선 발전 전략을 견지하는 한 북한의 미래는 없을 것이며 북한엘리트의 탈북행렬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독일통일은 동독주민의 탈동독 행렬로부터 시작됐다. 물론 북한엘리트의 탈북 행렬은 독일에 비하면 아직은 매우 적다. 그러나 남북의 차이가 동서독에 비할 바 없이 크고, 북한이 동독과 대비조차 할 수 없는 폐쇄사회라는 것을 고려하면 탈북이 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당면해 정부와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탈북은 북한정부를 압박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되고 있다.

북한 엘리트가 탈북을 시도하다가 발각되면 정치범수용소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엘리트의 탈북을 자연발생성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적극 도와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단체의 적정한 역할분담을 통해 각국에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 해외노동자들이 많이 파견된 나라들부터 탈북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최근 중국 국경 일대에서 수해로 늘고 있는 탈북한 주민들의 북송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다음으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들의 정착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탈북민들의 성공적 정착은 북한주민들 속에서 남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북한주민의 탈북을 유인하는 요인으로 된다. 또한 일부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통일을 위해서는 탈북엘리트들이 전직에 상응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필자: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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