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
[뉴스데일리]김석철(72) 국가건축정책위원장(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은 세계 문화예술의 치열한 경합장이 될 ‘2015 밀라노엑스포’의 한국 국가관(이하 한국관) 설계를 맡은 도시건축가다. 한국관 건립을 통해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세계 각국에 선보일 김 위원장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관 설계와 밀라노엑스포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1966년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고(故) 김중업 선생과 고 김수근 선생을 사사했다. 1970년 서울대 응용과학연구소를 창설하고 같은 해 월간 <현대건축>을 창간하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그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강 마스터플랜과 여의도 개발계획을 성공시켰고, 쿠웨이트 자라 신도시, 중국 충칭(重慶)의 문화관광도시 취푸(曲阜) 등을 디자인해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국내에선 서울 ‘예술의전당’, ‘한샘 시화공장’ 등이 그가 설계한 대표적 건축물이다. 현재 명지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으며, 2013년 12월 대통령 소속 제3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밀라노엑스포의 한국관 설계를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엑스포와는 인연이 많습니다. 1964년 미국 뉴욕 엑스포 때 한국관 설계를 했었는데, 그게 벌써 51년 전이네요. 당시 김중업건축연구소에서 일했는데, 제 작업물을 보고 김중업 선생이 크게 칭찬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지금의 아내와 가까워져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1970년엔 일본 오사카엑스포가 열렸는데, 한창 수출경제를 일궈나가던 시절이라 엑스포 참여를 국가적으로 추진 중이었습니다. 당시 한국관 설계를 김수근건축연구소에서 맡았는데, 저도 거기로 옮긴 터라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젊고 능력 있는 건축가들이 모두 달라붙었죠. 하지만 김수근 선생은 제게 ‘여의도 도시계획을 맡아라. 두고두고 기억될 업적이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설득돼 여의도 도시계획을 했습니다. 45년이 지나 다시 우리나라가 엑스포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개인적으론 그동안 달라진 게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한국관은 ‘달 항아리’ 콘셉트로 지어지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엑스포엔 세계인이 찾아옵니다. 한국관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역량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식이 주제인 만큼 음식과의 연관성도 고려해 음식 용기로 쓰인 달 항아리를 형상화해 설계했어요. 여기에 이탈리아 건축의 고전적 요소인 볼트와 로톤다*를 한국 전통 공간인 처마와 마당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볼트, 로톤다를 처마와 마당으로 재해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볼트, 로톤다는 판테온 신전처럼 고대 건축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에도 많이 적용됐죠. 그만큼 세계인 모두가 쉽게 알아볼 수 있고, 또 인정할 수 있는 건축구조입니다.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세계인에게 친숙한 형태로 전달해야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볼트(Vault)’는 건물에서 아치 구조를 여럿 조합해 만든 구조물이다. 천장이나 지붕을 만들 때 이용된다. ‘로톤다(Rotonda)’는 고전 건축에서 원형 또는 타원형 평면 위에 돔 지붕을 얹은 건물 혹은 그 내부 공간을 가리킨다.

한국관의 디자인이 엑스포 주제인 음식, 에너지와 연관성이 깊어 보입니다.

“음식은 인체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에서 M(질량)을 F(음식: food)로 바꿔본다면 소우주로서의 인체, 에너지로서의 음식이 확 드러나게 됩니다. 우주가 에너지에 의해 돌아가듯, 인체는 음식의 에너지로 유지됩니다. 그릇은 그러한 에너지를 담아 보존하는 기능을 하죠. 한국관을 달 항아리로 형상화한 것도 엑스포 주제인 음식과 에너지를 담아내는 공간이자 한식을 세계인 앞에 내어놓는 그릇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양적 곡선미에 대한 좋은 평가도 있습니다. 곡선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가장 우리다운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조상들이 남긴 그릇들은 현실세계를 위한 것도 있지만 사후세계를 위한 것이 더 많습니다. 부장품이 그것이죠. 옛 백제인들은 독무덤을 만들었습니다. 항아리 2개를 이어 만든 관에 사자(死者)를 넣고 흙에 묻었어요. 흙에서 태어난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데, 흙을 빚어 만든 항아리 품에 안겨 떠나갑니다. 자연의 섭리를 자연스럽고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다움이라 생각했고, 동양적 곡선미로 그러한 우리다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촉박한 일정이라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1월 28일 현상설계 공고가 났어요. 재작년 10월 엑스포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시작해 준비 작업을 했습니다. 디자인과 콘셉트를 최종 확정해 지난해 3월 초 마감에 맞춰 제출했는데, 사실 다른 젊은 건축가들에게 기회가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과 발표가 나고 4, 5개월 본격적으로 설계에 착수했습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작업이었어요. 일정이 촉박해 집엔 못 들어가고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합숙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김 대표한테 밀라노엑스포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한국관을 통해 한국의 건축·도시설계 역량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관람객들이 한국관만 딱 보고도 ‘코리아, 그레이트!(Korea, Great!)’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선배 세대로서 대한민국 이미지를 높여 다음 세대인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 도시건축을 세계에 전하는 웅대한 꿈을 꿀 수 있게 일조하고 싶은 바람도 있고요. 엑스포는 더 이상 발명품을 파는 산업 행사장이 아닙니다. 디자인과 문화적 역량을 겨루는 세계적인 각축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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