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일리]“전국~ 노래자랑…!”

특유의 유쾌함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대중들과 오랜시간 호흡해온 코미디언 송해(본명 송복희·88)씨. 송 씨는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대중문화계에 입문해 MBC ‘웃으면 복이 와요’ 등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구봉서, 배삼룡 씨 등과 함께 활동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88년부터 KBS 최장수 프로인 ‘전국노래자랑’에서 26년간 MC로 진행을 책임지고 있다.

34년 역사의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으며 국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송해 씨.
데뷔 이래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았다는 송해 씨.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이자 국내 최장수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대중문화예술 유공자로 선정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34년 역사의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으며 국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송해 씨는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며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소감을 물어보자 국민들에게 공을 돌리며 감사함을 전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번쩍이는 재치와 구수한 입담을 쏟아내는 그는 여전한 우리 시대의 최고의 진행자였다. 사단법인 대한민국 방송코미디언협회 총재이기도 한 송 씨를 서울 낙원동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국노래자랑, 내 인생의 대단한 인연”

송 씨의 고향은 황해도 재령이다. 그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와 육군본부 수신소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당시 정전(停戰) 소식을 가장 먼저 타전한 것이 바로 송해다.

그는 “6.25 휴전 전보를 직접 쳤다”며 “위에서 전보라 내려왔는데 군사기밀이라고 했다. 처음 접한 군사기밀에 암호로 돼 있어 당시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전보를 쳤는데 알고보니 그게 휴전전보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전보 내용은 ‘1953년 7월 27일 22시를 기하여 모든 전선에 전투를 중단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해  11월 17일 서울 대학로 홍대 아트센터에서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과 한류 확산에 기여한 자들에게 수여되는 ‘2014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코미디언 송해에게 은관 문화훈장을 수훈하고 있다.
‘눈물어린 툇마루에 손흔드는 어머니.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년~.’ 그는 지금도 고향이 그립다. 눈감으면 생각나는 그곳을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었다.

“어머니 그리워 하는 마음 구구절절 가사에 담았죠. 그게 마지막인줄 모르고 황해도 집 떠날 때 어머니가 배웅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어머니가 ‘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 라고 하시며 배웅한 게 영영 이별이 될 줄 몰랐어요.”

송 씨는 군 제대 후 악극단 활동을 해왔으며 동아방송 라디오 ‘스무고개’를 거쳐 1974년부터 17년 동안 KBS 라디오 교통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했다. 구봉서, 배삼룡과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코미디언으로 입지를 굳히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 둘 씩 프로그램을 하며 그의 내공이 쌓였다.

“전쟁이 끝난 후 악극단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또 라디오 진행 등 뭐든 열심히 했어요. 그때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기 위해 전국 방방곳곳 뛰어다녔어요. 그러고보면 지금 전국노래자랑을 하려고 그런 것 같아요.(웃음)”

26년간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이끌어온 진행자 송해 씨. 그의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낙원동은 그에게 ‘사랑방’같은 곳이다
MC로 장수비결, 출연진들과 함께 호흡한 덕분

그는 인생의 운명처럼 ‘전국노래자랑’을 만나게 된다. 지난 1988년부터 현재까지 26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이끌어왔다. 그가 이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시기는 1994년 5∼10월 단 5개월뿐이다.

‘전국노래자랑’의 터줏대감인 그에게 MC로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을 물어봤다.

“약방의 감초같은 역할이 우리 일이죠.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사하는 일. 유랑극단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살아왔죠. 극단에서 ‘18호 간판의 혈투’ ‘눈내리는 밤’ ‘봄밤에 온 나그네’ 등 오락물들을 많이 했어요. 이런경험들이 없었다면 긴 시간 전국노래자랑을 못 끌어나갔겠죠.”

그는 매주 일요일 정오 ‘딩동댕~전국노래자랑’이라는 귀에 익은 시그널과 함께 출연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노래를 이끌어내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특유의 입담과 친근함으로 ‘국민MC’로 자리잡으며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전국노래자랑은 제 무대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제 인생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 혼자 무대를 꾸민 것이 아니라 출연한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함께 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이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평생 관객과 함께 산 무대 인생

올해로 88세를 맞이한 송해 씨에게 ‘88’이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을 통해 생생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겐 특히 최연소 참여자의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안 돌아다녀본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기억에 남는 게 3살짜리 꼬마 아이가 엄마와 함께 출연했는데 외국에 유학간 아버지를 향해 ‘빨리 와라. 보고싶다. 아프지 말고.’라고 이야기 할 때 눈물을 한참 쏟았어요. 한창 부모밑에서 재롱부릴 어린아이가 뭘 알겠어요. 근데도 그렇게 어른처럼 말하더라니까. 관객들 모두 눈물을 훔쳤지요.”

전국노래자랑은 사연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전국노래자랑이 배출한 인물들도 많다. 국악 신동 송소희, 가수 박상철 씨 등 가수부터 MC, 개그맨까지 많은 연예인들이 이 무대에서 스타의 꿈을 키운 셈이다.

송해는 전국 팔도를 누비며 각 지역의 문화나 특색에 대해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진정한 문화융성은 지역의 알찬 축제들을 알려 나가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어요. ‘전국노래자랑’을 시작으로 이어지고 있는 문화행사도 많아요. 대표적인 행사가 함평 나비축제, 무주 반딧불 축제도 노래자랑에서 처음으로 시도됐던 행사죠. 이런 지역의 특색을 살린 체험형 축제들이 많이 늘어나야 해요. 그것이 문화융성이죠.”

365일 언제나 즐겁게 인생을 살아간다는 송해 씨.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여전한 청년이자 희극인이다.

무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는 송해 씨. 그의 무대인생은 앞으로도 진행형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2015년 새해 덕담을 부탁했다.

송해 씨는 “세상일에 너무 걱정하며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럼없이 넘기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며 “지나고 나면 다 한순간인데 매사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내가 뭘 바라고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며 “내 생각을 요구하는 것, 내 입장만 이야기하지말고 서로의 필요와 요구를 이해하고 들어줘야 진정한 소통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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