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일리]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어 연합군의 포로들이 석방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란 것은 비만 즉 살찐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반 사병들이야 열악한 환경에서 공급되는 식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체격이 건장했던 일부 장군들의 경우 제공된 음식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학자들은 포로수용소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이 제공되더라도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하여 살이 찔 수 없다고 단언한다. 역으로 생각하여 비만인 사람이 포로수용소와 같은 생활을 한다면 공포의 살이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포로수용소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정 없어 포로수용소와 같은 열악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즉 먹고 싶을 때 마음껏 먹으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방법을 기대한다. 먹고 싶을 때 마음껏 먹으면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이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은 덤으로 성인병까지 예방해준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만능 기능성 음식에 거는 기대는 생각보다 높다.

인간이 워낙 오묘한 동물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만병 기능성 음식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말 이제마(李濟馬, 1838〜1900)는 인간의 선천적인 체질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 그 체질에 따라 병의 증세를 살피고 동일한 질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사상의학을 개척했다. 소위 인간의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의 길을 열어놓았는데 이제마의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하다. 각자에 알맞은 식생활 유지가 질병 치료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뚱뚱하고 어떤 사람은 가냘프며 어떤 이는 위장이 튼튼하여 무엇이나 소화를 잘 시키지만 또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당연히 암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확률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치료하는 방법도 서로 달라야 더 효과적이란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막상 인간의 체질을 어떻게 분류하느냐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 문제를 나름대로 정립하여 동양의학에서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도출한 사람이 이제마로 소위 인간의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제마는 인간의 선천적인 체질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 그 체질에 따라 병의 증세를 살피고 동일한 질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사상의학을 개척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체질에는 태양인(太陽人), 태음인(太陰人), 소양인(少陽人), 소음인(少陰人) 네 가지가 있다. 인간의 체질을 음과 양의 둘로 우선 나누고 이를 다시 크고 작은 것으로 나눈 것이다.

이제마가 인간의 체질을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눈 근거는 인체의 내장이 가진 특징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는 허파가 크고 간이 작은 사람은 태양인, 거꾸로 간이 크고 허파가 작으면 태음인으로 분류했다. 또 소양인은 지라가 크고 콩팥이 작지만 소음인은 정반대다. 여기에 등장하는 허파(肺), 간(肝), 지라(脾), 콩팥(腎)은 동양의 전통적인 ‘오장(五臟)’ 가운데 넷을 가리키며 나머지는 심장(心)이다. 이제마는 이 가운데 심장을 태극(太極)에 해당하므로 제외하고 나머지 넷을 가지고 체질을 분류한 것이다.

이는 정확히 『주역』의 사상과 태극을 의학 이론으로 접목시킨 것이다. 이제마가 이와 같이 사상인(四象人)을 착안한 것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의 문제에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과 관련하여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喜怒哀樂)을 느낀다. 바로 이 감정이 어느 기관의 크기를 경정해 주어 사상인의 구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마는 한 개 군(郡)의 인구를 1만 명이라 한다면 그 가운데 태양인은 3〜4명에서 10여 명, 태음인은 5천 명, 소양인은 3천 명, 소음인이 2천 명 정도라고 했다. 이 통계의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태양인이 극소수이므로 인간을 세 체질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를 기본으로 이제마는 체질이 서로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기질도 서로 다르고 잘 걸리는 병의 종류도 다르며 잘 걸리는 병의 종류도 다르므로 치료의 방법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태음인은 기관지염, 폐염, 결핵, 천식 등의 호흡기 질환이 많고 소음인에게는 위장에 관한 질환이 많다고 한다. 사상인에게 각기 알맞은 약품도 서로 달라 녹용은 태음인, 인삼은 소음인에게 가장 효험이 좋다고 한다. 각자에 맞는 음식물도 서로 다른데 대체로 태양인에게는 포도, 앵두같은 과일과 조개 등이 좋고 소양인에게는 돼지고기, 해삼, 참외 등이 좋다. 태음인에게는 쇠고기, 무, 콩 등이 좋으며 소음인에게는 개고기, 닭고기, 당근 등이 좋다고 한다.

이제마의 사상 의학은 질병과 치료에 관한 좁은 의미에서의 의학이 아니라 넓은 뜻에서 인간의 건강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는 전통 사상의 독특한 관점을 피력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그의 이론이 현대 의학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근래 의학계에서 매우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인간의 몸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 체질을 3종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는 인간의 침․피부․대변 등의 표본을 채취해 박테리아의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몸 안에서 지배적으로 발견되는 박테리아의 종류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 프레보텔라(Prevotella), 루미노코쿠스(Ruminococcus) 등 3종류라고 밝혔다.

몸 속에 1,500여 개가 넘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이 있다고 알려지는데 이들이 3가지 유형의 ‘지배적 박테리아’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나이, 성별은 물론 인종적으로도 차이가 없다. 체내 박테리아들의 생태계는 마치 숲의 조성 과정과 유사하다. 숲에는 여러 종의 생물이 모여 살지만, 툰드라․열대우림․사바나처럼 이들의 차이를 확실하게 분류할 수 있는 명확한 생태계 구성 방식이 존재한다. 인간의 몸 안에 지배적 박테리아 즉 3개의 주력부대를 중심으로 그 밖의 박테리아가 모여 사는, 박테리아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페어 보르크 박사는 지배적 박테리아를 기준으로 한 체질 분류에 ‘장유형(腸類型, Enterotypes)’이란 이름을 붙였다. 장유형이란 사람의 소화기 내에서 세균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 유기체의 분류를 뜻한다. 한 사람의 장 속엔 인간의 세포 수와 거의 비슷한 약 100조 개(인간의 세포수를 60조로 추정하기도 함)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이 중 99%는 장에 거주하면서 대부분이 좋은 역할을 한다. 식물의 섬유소를 분해해 인체가 흡수할 수 있는 탄수화물로 전환하며, 다양한 비타민을 생산하고,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한다. 또한 박테리아마다 다른 효소를 지니고 있으므로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 역할도 다르다.

예를 들어 ‘박테로이데스’ 유형에선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능력이 좋아 비만이 별로 없으며 ‘비오틴’이라 불리는 비타민B7이 많이 만들어진다. 비오틴은 피부나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가꿔주는 미(美)의 비타민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레보텔라’ 박테리아는 배앓이를 많이 하는 대신에 ‘티아민(비타민B1)'을 특히 많이 생성하는데 티아민은 피로회복비타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 피곤함이나 집중력 저하 등을 막아주는 비타민이다. 이들이 부족할 경우 신경염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루미노코쿠스는 포도당을 잘 흡수하므로 살이 찔 확률이 높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루미노코쿠스가 많은 체질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마가 사상의학을 도출할 때 박테리아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통찰력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연구 결과가 중요한 것은 산업적으로 매우 큰 시장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사상의학 또는 장 속의 박테리아 네트워크 유형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것은 앞으로 이들의 연구를 통해 수많은 관련 의학 및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길이 됨은 물론이다.

100여 년 전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가 인간의 체질을 혈액형 중심으로 나눈 것처럼 이제부터 ‘체내 박테리아’라는 새 분류 기준으로 사람의 체질을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이의 파급효과는 상상할 수 없이 매우 크다. 한마디로 혈액형의 발견으로 수혈과 장기이식 분야에서 결정적인 진전을 가져온 것과 마찬가지로 박테리아의 성질을 이용한 체질 분류로 맞춤형 약물․신종 항생제 연구 등 의학계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의사들은 어떤 질병에 대항하는 특효약으로 알려진 약을 투여할 때 대략 50〜60%의 환자들이 반응한다는 대략적 통계를 근거로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약효의 성능을 알려준다. 투여되는 약의 효능이 100퍼센트 효과를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를 역으로 말한다면 특정 약에 반응하지 않는 40〜50퍼센트는 약에 따른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이유가 장형 박테리아일지 모른다는 뜻과도 같다. 한마디로 박테리아 체질을 완전하게 분석한다면 그동안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항생제의 남용 등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이 이와 같이 장밋빛 예상을 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혈액형과 달리, 박테리아 유형이 후천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직후 장을 지배하는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 장내 생태계가 3가지 유형 중 하나로 발전해간다는 뜻으로 이는 학자들에게 큰 기대감을 주었다. 후천적으로 인위적 조절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설명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장기이식을 하거나 수혈을 하기 전에 혈액형을 체크하듯, 각종 질병을 치료하기에 앞서 ‘박테리아 형(形)’부터 검사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약물을 투여할 수 있다. 앞으로 자신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알아두는 것이 필수인 것처럼 박테리아 형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질병에 따라 의사들은 적절한 음식과 기피해야 할 음식을 추천한다. 그러나 앞으로 질병에 따라 음식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박테리아에 따라 선택적으로 음식을 추천해야 할지도 모른다. 비만도 질병의 일종으로 본다면 각자에 맞는 선택적 비만 치료 즉 다이어트도 가능할 것임이 틀림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치료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항생제나 치료약은 기본적으로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균을 죽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체질을 박테리아로 구분할 수 있다면 병원균이 발붙이지 못할 박테리아 생태계를 조성하여 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박테리아 형에 따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인간을 괴롭힌 대부분의 질병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질병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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