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일리]많은 과학자들이 21세기의 최첨단 기술로 나노(10-9) 기술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노 기술이야말로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응용분야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나노 결정체 물질을 의미하는 나노 소재는 나노미터의 크기로 이루어진 분말, 복합체, 소결체(燒結體)를 통칭하는 말로 이들은 물리․화학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나타낸다. 나노 물질이 갖고 있는 높은 강도, 뛰어난 연성, 낮은 마모성, 낮은 부식성, 침식성 등을 각 분야에 적절하게 활용하면 우리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꾸어줄 수 있다.

나노 기술 중에서 인간에게 가장 친근하게 접목된 부분이 화장품이다. 화장품의 영어 표기인 코스메틱(Cosmetic)의 어원은 그리스어 코스메티코스(Cosmeticos)로 ‘잘 정리한다’, ‘잘 감싼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코스메티코스는 무질서와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Caos)의 반대 개념으로 ‘질서 있는 체계’, ‘조화’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화장품이 인간을 잘 감싸서 질서 있게 조화시키는 도구라는 것을 잘 표현해준다.

일반적으로 화장은 기원전 5,500년경 이집트에서 시작되었고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전성기인 제18왕조의 네페르티티(Nefertiti, 미인이 왔다는 뜻) 여왕이 그 동안 전해 내려온 이집트의 화장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설명한다. 18왕조 이그나톤(아멘호테프 4세, 재위 기원전 1353년〜1336년) 파라오의 왕비인 네페르티티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우선 그녀의 남편인 이그나톤은 이집트 역사 200여 명에 달하는 많은 파라오 중 가장 특이한 인물이다. 이집트인들은 자신이 직접 보고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을 신으로 인식하여 거의 700여 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그나톤은 700여명에 달하는 이집트 신들을 자신의 신인 유일신 ‘라(태양)’로 대체하였다.

성경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에게 유일신 개념을 심어준 것은 모세이다. 대체로 모세는 제19왕조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되며, 제18왕조에 살았던 이크나톤의 믿음을 알고 히브리인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유일신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그나톤의 왕비인 네페르티티는 이집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표현한 조각상 등을 책이나 언론매체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고대 이집트 ‘미의 화신’으로서 뿐 아니라 이집트 정부가 해외로 유출된 자국의 유물의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네페르티티 유물은 카이로 박물관, 베를린 알테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집트에서 이들을 되돌려받기 위해 활발한 운동을 벌리고 있는데 한국이 해외로 반출된 유산을 되돌려 받는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그녀가 이집트 역사에서 유별난 것은 남편인 이크나톤의 행적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나이 사망한 후 그녀의 의붓아들인 유명한 황금마스크의 주인공 투탕카멘이 파라오가 될 때까지 잠시 왕권(재위 기원전 1335년〜1333년으로 추정)을 쥐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당시 파라오의 역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단이 있는 여성으로 인식하는데 이집트에서는 남자만 파라오가 될 수 있었는데 세 명의 여자가 이집트에서 통치권을 가졌다. 나머지 두 명은 이그나톤보다 약간 선대인 하셉수트(재위 기원전 1479년〜1458년)와 이집트 최후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재위 기원전 51년〜기원전 30년)이다.

네페르티티의 초상을 보면 네페르티티가 화장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네페르티티 왕비’ 초상은 현대인들도 놀랄 정도로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눈, 코, 입 등 얼굴 표정은 실물처럼 안정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전혀 어색하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표현되었다. 학자들은 고운 점토 가루로 채색한 얼굴, 짙은 눈썹과 눈꺼풀은 오늘날의 화장법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당대에 남다른 화장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이후 화장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람세스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의 묘지(네페르티티로 불리기도 함)는 왕비의 계곡에서 발견되었는데 화려한 벽화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공해로 퇴화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장본인이다. 전세계의 학자들이 모여 벽화를 복원하였으며 방문객을 한정하여 공개하고 있는데 벽화속의 네페르타리는 청색 아이라인, 빨강색 매니큐어를 하고 있었다. 당시 매니큐어의 색깔은 일종의 계급 표시로 왕족은 진한 빨강, 신분이 내려갈수록 색깔이 엷어졌다.

프랑스 국립과학기술연구원(CNRS) 박물관보존연구센터의 필립 월터(Philippe Walter) 박사는 4,000년 전부터 이집트에서 사용된 머리 염색약 분석한 결과 나노테크놀로지를 이용한 화장품이라고 발표했다. 고대인들은 물, 여러 가지 크림, 오일로 된 천연재료를 혼합하여 화장품을 만들었으며 그리스로마시대에 사용된 머리염색약에는 헤나(Henna)라는 풀에서 얻은 액을 추출해서 사용했다고 알려졌는데 이집트의 화장품은 이보다 높은 기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화장품 제조기술자 소위 화학자들은 눈썹화장과 검은머리 염색에 PbS(방연광), 파운데이션으로는 탄산연과 같은 천연재료를 사용하여 화장품을 만들었다. 월터 박사가 분석한 이집트의 화장품은 흰머리와 갈색을 검은머리로 염색하는 용도이며 PbS를 주재료로 했는데 이 화장품들이 놀랍게도 나노의 크기를 갖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PbS의 성분 중 납은 머리칼에 작용하고 S는 머리두피에 있는 아미노산과 작용하여 염색효과를 높인다. 근래 각종 화장품 회사에서 나노과학을 이용한 최첨단 기술로 기능성 화장품을 만들었다고 대대적인 선전하고 있지만 이집트에서 4,000년 전부터 이미 나노기술을 사용했다는 설명을 들으면 다소 머쓱해질 것이다.

클레오파트라7세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화장품 자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클레오파트라7세 시대의 화장품 유물을 측정했더니 이 역시 나노 화장품이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도 이들 나노화장품을 사용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가 사용했을 화장품에 주목하는 것은 이집트인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나노화장품을 만들 수 있었느냐이다. 이집트인들이 나노화장품을 만들 때 사용한 방법만 알 수 있다면 저렴하고 효율이 좋은 나노 화장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세기의 미녀라 알려 진 클레오파트라가 사용하던 화장품을 값싸게 현대인들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신라시대에도 이집트와 유사한 질 좋은 화장품을 사용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일찍부터 고도의 문화를 창조한 한국인들은 남다른 미의식을 갖고 있었고 화장과 화장품의 수준이 뛰어났다. 북부지방에 살았던 읍루인들이 돼지기름(豚膏)으로 피부의 동상을 예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말갈인들은 오줌으로 세수했다고 한다. 돼지기름은 일소(一燒)와 설소(雪燒) 즉 피부의 부드러움과 동상예방효과가 높다. 기원 200년경 로마의 가렌이 제조한 콜드크림의 원형도 돼지기름을 가공한 것이다. 피부를 희게 가꾸기 위해 미백(美白) 효과가 큰 오줌으로 세안하는 미용법은 궁중의 비방이었으며 최근까지 산간지방에서 활용했다. 단군 이야기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받은 쑥과 마늘도 실은 화장품과 관련이 있다. 쑥과 마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용해 온 피부 미백제이기 때문이다.

신라에서 백분(白粉)의 사용이 대중화돼 있었다는 것은 신라의 화장품 기술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알려준다. 백분은 안면을 희게 보이게 하며 잔주름과 작은 홈을 위장시키는 장점도 있어 한국인들이 1960년대까지 가장 애용한 화장품이었다. 일본의 자료에 의하면 신라의 한 승려가 서기 692년에 일본에서 연분(鉛粉)을 만들자 후한 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당시 일본인들이 제조하지 못하는 연분을 신라에서는 692년 이전에 이미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의 백분은 글자(粉)가 의미하는 대로 쌀(米)로 만든 가루(分)로 서속(기장과 조)를 3:2의 비율로 섞어 사용했다. 또 분꽃 씨앗, 칡뿌리, 조개껍질을 태워 빻은 분말, 백토(白土), 활석의 분말 따위로 만들거나 여기에 동물의 뼛가루를 약간 혼합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백분은 부착력과 퍼짐성이 아주 약한 단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화장하기 전에 면도하거나 족집게로 얼굴에 난 솜털을 뽑은 후 백분을 물에 개어서 바르고 20〜30분간 잠을 잤다. 잠자는 동안에는 피하지방 분비가 왕성하므로 분이 잘 스며든다.

그럼에도 백분은 절차가 복잡하면서도 골고루 발라지지 않는 단점이 있는데 신라에서 백분을 납(鉛)으로 화학 처리 했다는 것이다. 납을 사용한 백분은 부착력이 좋아지고 쉽게 바를 수 있는데 적어도 신라에서 692년 이전에 연분을 사용했음을 알려준다. 앞에 설명한 이집트에 납을 사용한 나노 화장품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물론 납 성분이 궁극적으로 피부에 해독을 주는 것은 근래에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인들이 제조한 화장품 중에는 미묵(眉墨)이 있다. 미묵은 눈썹을 그리는 화장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눈썹의 모양을 중시했다. 눈썹의 숱이 지나치게 많거나 뻗친 모양이면 성질이 포악하든지 성욕이 과다하다고 믿어 기피하였다. 이른바 반달눈썹이 미의 기준이 되었는데 조선시대 여자들은 무려 열 가지나 되는 다양한 형태의 눈썹을 그렸다.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에는 원앙⋅소산⋅오악⋅삼봉⋅수주⋅월능⋅분초⋅함연⋅불운⋅도훈형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눈썹화장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남자들은 진하고 팔자(八字) 모양의 눈썹을 으뜸으로 쳤지만 여자의 눈썹이 진하고 숱이 많은 경우에는 족집게로 일부를 뽑거나 가다듬은 다음 화황(花黃)을 발라 부드러우면서도 엷은 색깔을 표현했다. 반대로 눈썹의 숱이 적고 흐린 경우에는 나뭇결이 단단한 굴참나무 또는 너도밤나무 목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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