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허와 실'

                          중국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인 '초선'
[뉴스데일리]역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history’가 ‘그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가진 것은 시대를 움직인 역사 속의 인물 대부분이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여성들이 가끔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당대의 최고의 미인 즉 아름다운 미모로 권력자를 좌지우지 하면서 역사적인 사건을 만든 사람이며 둘째는 남다른 잔혹성으로 한 시대를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은 사람이다.

중국은 역사의 한 축을 장식한 사람으로 4대미인을 꼽는다.

첫째로 꼽는 미인이 서시인데 그녀는 춘추전국시대 말, 월나라 출신으로 오나라를 멸망케 한 장본인이다. 둘째는 화친을 위해 북쪽 흉노왕에게 보내진 왕소군, 셋째는 ‘자질풍염’의 미인으로 당나라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인 양귀비이다. 양귀비가 정말 미인이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녀에 의해 당나라가 온통 혼동의 시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볼 때 양귀비가 남다른 미인의 자태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마지막 4대 미인 중에 포함되는 사람은 한나라 말기 쟁패를 벌이던 동탁과 여포의 갈등을 조장하여 여포가 동탁을 살해하게 만든 초선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에서 왕윤과 수양딸인 초선이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는데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 왕윤은 이에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수 없구나. 달이 미모에 부끄러워 구름뒤에 숨었다’라 말하여 그후 폐월(闭月 bìyuè) 초선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초선의 아름다음은 달이 얼굴을 가린 것에 그치지 않고 꽃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할 정도로 수려하여 꽃망울이 감히 피우지도 못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데 초선은 4대 미인 중 유일한 가상인물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비중있는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초선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데 다소 황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가상인물 초선이 등장하는 연유를 이해하려면 중국이 삼국시대로 분리되기 전의 정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국 시대 초반을 장식하는 사람은 농서 출신의 동탁(董卓)이다. 동탁의 이력서는 다음과 같다.

‘자는 중영(仲潁)으로 용맹하고 꾀가 있어 오랑캐로 불리는 강인(羌人)과 호족(胡族) 수령들과 사귀었고 167년 군에서의 공적으로 낭중에 올랐고 후에 병주자사,. 하동태수를 역임했다. 184년 중랑장(中郞將)이 되었고 십상시(十常侍) 즉 환관들의 난을 평정한 후 실권을 잡자 한나라 소제(少帝) 유변(劉辨)을 폐하고 헌제(獻帝) 유협(劉協, 진류왕)를 옹립한 후 낙양성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한다.’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황제로 등극시킬 때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는데 형주자사이자 낙양의 헌병대사령관이라 볼 수 있는 정원(丁原)이 극구 반대했다. 동탁으로 보아 방자한 행동을 하는 정원이지만 그를 함부로 제거할 수 없었던 것은 정원에게 천하무적인 여포(呂布, ?~199)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탁에게 꾀가 있다는 말처럼 그의 기지는 이때 발휘된다. 정치적인 술수를 발휘하여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천리마를 아낌없이 여포에게 주자 여포는 정원을 살해하고 동탁에게 귀의한다. 동탁이 여포를 양아들로 삼자 천하에 동탁을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왕윤은 초선을 여포가 동탁을 살해하도록 미인계를 꾸민다. 우선 동탁에게 초선(貂蟮)을 첩으로 준 후 여포와 이간질시켜 결국 여포가 동탁을 살해하도록 사주하는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선악의 대비가 매우 분명한데 그중 동탁을 가장 질이 좋지 않은 악당 중 한명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반적으로 양아들이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면 패륜아 중 패륜아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나관중은 동탁에 관한 한 이중잣대를 적용한다. 한마디로 당대에 가장 비난받아야 할 여포를 그다지 비난하지 않았다. 그것은 동탁이 여포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동탁을 어찌나 나쁘게 보았던지 『삼국지연의』에 적혀 있는 동탁의 등장 장면을 보자.

‘그는 서량(西涼, 섬서성 서부) 땅에 있는데 황건적 난 때 아무 공도 세우지 못했다. 이에 죄를 물으려 할 때 약삭빠르게 환관들인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쳐 겨우 무사했다.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그들과 늘 내통해 지내면서 세운 공도 없이 여러 차례 영전을 거듭하다가 벼슬이 서량자사(西涼刺史)에 이르렀다. 또한 대군 20만 명을 통솔했다.’

나관중의 글을 역으로 생각하면 그가 왜 당대의 패자였는지를 알 수 있다. 당대에 서량은 중국 중원과는 다른 소위 유목민 즉 기마무사의 본거지이며 진시황제도 이곳을 근거지로 중국을 통일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군기가 잘 잡히지 않는 유목민으로 구성된 20만 명의 부대를 거느린다는 것은 그 능력이 대단했음을 의미한다.

여하튼 동탁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진수의 『삼국지』 <동탁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가 처음 낙양에 들어갔을 때 휘하의 군대는 고작 3,000명뿐이었다. 이 병력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으므로 동탁은 3천 명의 군사들을 매일 밤 평복으로 성을 나가게 했다가 이튿날 다시 대대적으로 행진하면서 들어오게 했다. 군사들의 행진이 4~5일 동안 계속되자 사람들은 그가 천군만마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나관중이 고의적으로 동탁을 폄훼한 것은 나관중 스스로 북방의 기마민족을 중원의 중국인과는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사실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인데 나관중은 중국인들이 북방의 야만적인 기마민족과는 같이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당시 20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실력자 동탁이 중원의 중국인에게 패배했음을 나관중은 매우 만족해하면서 동탁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문명민족인 중국이 오랑캐인 북방기마민족에게 점령될 없다는 것이 나관중의 시각이다.

『삼국지연의』의 초반에 큰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동탁, 여포, 왕윤, 초선인데 왕윤은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수양딸인 초선을 미인계로 활용하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왕윤이 초선을 동탁의 첩으로 준 후 여포에게 접근하여 초선이 여포에 마음이 있으나 동탁이 힘으로 그녀를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결론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여포가 자신의 양아버지인 동탁을 살해한다. 초선은 여포가 동탁을 살해함으로써 임무를 완성하는데 『삼국지연의』는 초선이 조조에 의해 사로잡혀 허도로 간다고 적혀있을 뿐 그 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초선은 현 감숙성의 성도인 란주(蘭州)와 무위(武威)시 인근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다. 이들 지역은 북방기마민족 흉노의 근거지로 흉노란 당대에 중국보다 3배나 거대한 제국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초선의 유적지를 찾기 위해 이들 지역을 방문하였으나 만나는 사람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초선에 대한 전설은 알고 있지만 막상 그녀의 출생지 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선은 다른 3명의 중국 미인과는 달리 나관중이 만들어 낸 가공인물이기 때문이다. 초선을 제외한 3명의 출생과 사망은 분명하다. 서시는 항주의 서호(西湖) 인근에서 태어났고 왕소군은 하북성의 흥산(興山)에서 태어나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가서 사망했으며 당나라 현종의 애첩이었던 양귀비는 안록산의 반란을 촉발시킨 원흉으로 지목되어 살해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나관중이 초선과 여포, 동탁의 삼각관계를 전혀 근거 없이 적은 것은 아니라고 추정한다. 당대 『개원점경』에는 ‘조조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동탁에게 조선(刁蟮)을 보내어 유혹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조선은 실제 인물로 조조가 보낸 여스파이였다. 또한 진수의 『삼국지』 <여포전>과 『후한서』 <여포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사통하였는데 이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 마음은 절로 불안했다.’

그러나 초선이라는 이름이 역사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와는 한참 후대인 원나라의 잡극과 소설에서이다. 『금운당 미녀연환계』에서 초선이 임양의 딸로 한나라 영제 때 궁녀로 뽑혔다가 후에 여포의 부인이 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삼국지연의』의 모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삼국지평화』에서는 초선이 ‘소첩은 성이 임이고 자는 초선이며 여포를 모시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관중은 이들 내용을 보다 화려하게 각색하여 초선과 동탁, 여포의 삼각관계를 그렸고 후대의 사람들은 이들 이야기를 사실로 여겨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간주한 것이다.

초선은 정사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전승된 인물 임에도 나관중의 붓에 의해 실존인물로 인정된다는 것은 『삼국지연의』의 위용이 얼마나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관중이 가공인물인데도 실존한 인물처럼 적나라하게 묘사한 실력이야말로 역사조차 바꿀 수 있음을 십분 증명한 것이다. 나관중 만세라 아니할 수 없다.


 

저작권자 © 뉴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