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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차장의 폭탄 증언!6·15 남북 頂上회담과 관련 “김정일, 수금 다 안됐다고 김대중 방북 연기했다”
조갑제. 조갑제 닷컴대표  |  iwj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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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03  13: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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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이 중국은행내 김정일 비자금 계좌로 보낸 네 번째 돈(4500만 달러)이 기재 착오로
송금 차질을 빚다
⊙ “6월 10일 오전, 북측에서 보낸 방북거절 電文을 본 임동원 국정원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나도 전문을 읽었다”
⊙ ‘기술적 문제’로 연기되었다는 정부발표 뒤집는 증언
⊙ 김정일, ‘김일성 屍身 참배하지 않으려면 들어오지 말라’고도 협박
⊙ 김정일, 회담장에서 김대중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압박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2000년 6월 15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잔을 부딪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국가정보원 국내담당 차장이었던 김은성(金銀星)씨는 <조갑제닷컴>에 자주 안보 관련 글을 써 올린다. 작년 12월 30일 그는 독재자 김정일(金正日) 사망 후의 남북한 정세를 분석, ‘보수(保守)는 둥지에서 뛰쳐나와 핵(核)개발도 고려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필자가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퍼주기식 원조가 저들을 상전으로 만들었다. 북한은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방북(訪北) 하루 전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전문(電文)을 보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결국 경호와 통신기기 보완을 구실로 방북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모든 지원은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도록 해야 한다. 식량을 직접 북한 당국에 인도하면 주민통제를 위한 배급용으로 이용하거나 옥수수로 바꿔 주민들에게 나눠 준다. 배급제도를 해체시켜 시장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모든 물자에 대하여는 차관 형식을 밟아 지하자원 등의 현물(現物)상환이라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이래야만 그들에게 책임감을 주고 통일자금을 쌓아 나갈 수 있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하루 전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전문을 보냈다’는 문장이 나를 긴장시켰다. 정부 발표를 부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김 전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었다. 김씨는 이 문장의 엄청난 의미를 잘 모르는 듯 강조점 없이 평이하게 설명했다. 다음 날 그를 찾아가 만났다.


“돈 다 보낼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

“그날이 2000년 6월 10일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러 방북하기로 한 6월 12일(월) 전 토요일이었습니다. 6월 10일은 국정원 창설 기념일이고 직원들은 오전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였고, 저는 오후에 골프를 쳤으므로 기억이 또렷합니다.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던 운동장 스탠드엔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 권진호(權鎭鎬) 해외담당 차장, 그리고 국내담당 차장이던 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오전 10시30분쯤이었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김보현(金保鉉) 제5국장이 황급히 우리한테 왔어요. 그는 김대중-김정일 회담 준비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김 국장이 문서 한 장을 임 원장에게 건네면서 당황한 말투로 ‘정상회담 못하겠다고 합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원장도 문서를 읽더니 안색이 변해요. 일어서면서 ‘차장들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청 원장실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원장이 한 페이지짜리 문서를 회람시켰습니다. 북(北)에서 보낸 전문이었는데, 두 문장 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돈을 다 줄 때까지 회담을 연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컨대 수금(收金)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평양에 올 수 없다는 협박조 글이었습니다.

임동원 원장은 당황하기도 하고 화도 난 표정이었는데, 권 차장과 저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했습니다. 남북회담을 여러 차례 치르면서 경험한 전례(前例)가 있어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북측에서 경호와 통신문제로 회담연기를 요청해 왔다고 발표하면 안 될까요.’ 북한과 회담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게 경호와 통신이었거든요. 임 원장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요. 한 15분 요담한 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마 그날 우리가 북측과 급하게 협의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을 거예요.”


김대중 회고록도 정상회담 연기이유 제대로 안 밝혀


2000년 4월 27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김은성 국정원 2차장(오른쪽).
일요일이던 2000년 6월 11일 오전 청와대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이 6월 12~14일에서 13~15일로 하루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북한에서 준비가 덜됐다는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김정일은 그러나 방북 첫날인 6월 13일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머물던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외신(外信)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은성 전 차장의 증언은 정부 발표와 청와대 측의 설명을 뒤엎는 것이다. 김대중은 회고록에서 평양 방문이 하루 연기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돌연 북에서 평양 방문을 하루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10일 대남(對南)통신문을 보냈다. “기술적 준비관계로 불가피하게 하루 늦춰 13~15일 2박3일 일정으로 김 대통령님이 평양을 방문토록 변경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대공(對共)실장 김은성씨가 보았다는 전문 내용엔 물론 그런 내용이 없었다. ‘하루 연기’가 아니라 ‘나머지 돈을 다 보낼 때까지 연기한다’는 엄포였다고 한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핵심 사안에 대한 김대중의 증언은 그동안 너무나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평양회담 준비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다른 국정원 간부도 “연기 사유가 돈 문제였다”고 확인해 주었다.

10일 오전 ‘방북 불가’ 통보를 받은 국정원 측이 송금에 차질을 빚은 점에 대하여 북한측에 설명하고, ‘은행이 문을 여는 12일 중에 나머지를 송금할 것이니 하루만 연기하자’고 설득, 북측이 그날 오후에 다시 김대중 회고록에 나오는 그런 내용의 대남전문을 보냈을 가능성은 있다.

김대중 정부와 현대그룹이 평양회담 이전에 김정일에게 송금(送金)하기로 약속했던 4억5000만 달러를 다 받지 못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통보를 했다면, 떳떳하지 못한 비밀거래를 연상시킨다. 김은성씨 주장대로 수금 차질로 회담이 연기된 것이라면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본질적 성격은 ‘정상회담 구걸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국정원이 送金責

2003년 6월 23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북비밀송금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이○○씨는 현대그룹 정몽헌(鄭夢憲) 회장을 불러 송금 과정을 캐물었다.

<문(검사) : 북측에 4억5000만 불을 어떤 방법으로 지급하기로 하였는가요.

답(정몽헌) : 2000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부두기공식이 있어서 저와 김윤규 사장이 참석을 하였는데, 이때 아태(亞太)위원회 재정담당이라고 하는 사람이 저를 찾아와 부위원장의 심부름이라고 하면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봉투 안에 ‘돈자리(계좌번호)’라고 적힌 몇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5월 중순에 제가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정부가 부담하여야 할 1억 불을 현대가 대신 부담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아태 재정담당에게 우리가 4억5000만 불을 전부 송금하겠다는 말을 부위원장에게 전해 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북측으로부터 받아 온 서류 봉투를 보관하고 있다가 6월 1일 해외 출국을 하면서 김윤규 사장을 불러 각사(各社) 사장들에게 전해 줘서 송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여러 관련자들을 조사해 많이 알고 있는 이 검사는, 정몽헌씨에게 이렇게 정리해 준다.

<대북송금 과정을 보면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해외에서 자금을 북한측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확인되고, 현대상선만이 국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아 송금하였습니다.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불의 송금과정을 보면 국정원이 송금의 주체인 것으로 하면서 국정원 직원의 개인 실명(實名)을 이용하였으며, 미국 등 북한과 적대(敵對)관계에 있는 국가에 자금이동이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자금 흐름이 파악되지 않도록 하면서 6월 9일 중으로 송금되도록 국정원과 관계은행인 외환은행의 긴밀한 협조까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현대상선은 6월 7일 이미 4000억원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음으로써 송금 준비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9일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국정원에 돈을 건네주어 송금 절차를 밟도록 하여 결국 은행 마감시간이 임박하여 어렵게 송금이 완료되는 등 상당히 급하게 돌아갔던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측과의 합의는 6월 12일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4억5000만 불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이었으며, 2000년 6월 9일은 금요일로서 해외은행은 토요일 휴무인 관계로 당일 중으로 송금이 완료가 되어야 하고 그 기간 내에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을 경우 정상회담 개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송금이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 몰랐는가요?>

정 회장은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고서 저도 송금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해서 3개사 사장들에게 확인을 하니까, 모두 차질 없이 보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김정일 측 수취인 이름 잘못 써


2003년 2월 21일 개성공단 건설 협의차 북한으로 향하는 현대아산 정몽헌(사진 왼쪽) 이사회 회장과 김윤규 사장.
검사가 다시 “(북측의) 남북정상회담 연기 통보는 6월 10일 오후였고, 송금이 잘못된 사실이 확인된 것은 같은 날 오전으로서 이미 차질이 발생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말인가요”라고 캐묻는다. 정 회장은, “제가 분명히 상선, 건설, 전자 사장들에게 송금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을 때,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검사는 “당시 송금을 담당하였던 외환은행은 국정원 쪽으로부터 수취인이 잘못 기재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으며, 현대 김충식 사장도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송금이 잘못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이 건 송금결과에 대하여는 국정원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검사는 이어서 이렇게 묻는다.

“이 건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다는 부분에 대하여는 국정원이 내용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수습을 시도하였지만, 6월 10일이 토요일이었던 관계로 6월 12일 월요일에야 정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정상회담은 6월 12일보다 하루 늦은 13일에 개최되게 되고, 이는 이 건 송금지연에 따른 결과로 보여지는데요. 국정원 직원 명의로 B.O.C(Bank of China) 마카오 지점, 계좌주(主) DAESUNG BANK로 송금한 4500만 불이 실제 계좌주인 ‘DAESUNG BANK-2’와 일치하지 않아서 송금처리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이에 대한 보고가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정몽헌 회장은 “그런 보고는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검사는 다시 《내일신문》을 내놓고 묻는다.

“2003년 1월 30일자 《내일신문》에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북한 개발권 대가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싱가포르에 있는 북한 측 계좌로 5억 달러를 넣었다’라고 언급>하면서, 정 전 명예회장은 <남북정상회담이 당초 일정보다 늦어진 것도 ‘같은 해 6월 11일까지 5억 달러 중 4억 달러만 북측에 지급해, 북측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올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래서 다음날(6. 12)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긴급하게 북경으로 가서 사태를 해결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어떤가요.”

“정 명예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대북송금 관련 내용을 아시지도 못하셨을 뿐만 아니라, 저는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검사는 “2000년 6월 11일부터 12일까지 김윤규 당시 현대건설 사장 겸 현대아산(주) 사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던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요”라고 물었다.

정몽헌 회장은, “김윤규 사장이 무슨 일로 중국을 방문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랬을 수는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을 수행하여 평양에 가게 되었기 때문에 중국을 통하여 평양으로 들어올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피했으나 곧 검사의 공격이 들어왔다.

“그러나 6월 13일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때 김윤규 사장은 평양으로 가지 않고서 귀국하였던 것을 본다면 그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정몽헌 회장은 “그 부분은 김윤규 사장에게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피했다.


경호 위해 하루 연기?


2003년 6월 10일 김보현 전 국정원 3차장이 대북송금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 사무실로 출두하고 있다.
대북송금사건 특검은 평양회담 준비를 전담한 김보현 당시 국장(나중에 북한담당 차장으로 승진)을 불러 회담 연기 내막을 따졌다. 신문 기록에서 인용한다.

<문 : 진술인은 6. 10.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전문(電文)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6. 10. 오후 4시경 국정원 상황실을 통해서 전문을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문 : 위 전문을 받은 부서는 진술인이 국장으로 있던 대북(對北)전략국이 아닌가요.

답 : 5국이 중심이 된 별도의 상황실에서 전문을 받았습니다.

문 : 위 전문 내용에 회담이 연기된 사유에 대해서 기재가 되어 있었는가요.

답 : 기술적인 준비관계로 하루 연기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문 : 회담이 하루 연기된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2000. 6. 3. 임 원장과 제가 수행원(서○○ 당시 과장)을 대동하고 극비리에 판문점을 통하여 방북을 하여 그날 저녁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김 대통령의 신변안전을 확실히 해야 한다. 12일 방북을 하루 앞당기거나 하루 늦추는 방안도 생각해서 혼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에 임동원 특사가 일정을 (한 줄 보이지 않음) 고려할 때 하루를 앞당길 수는 없다고 답을 하였고 서로 결론을 내지는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6. 4. 귀국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6. 10. 연락을 받고 나서 직감적으로 ‘하루를 늦추는구나’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문 : 최근까지 이 부분은 알려지지 아니한 부분이지요.

답 : 임동원과 북측의 김용순 사이에 이 점은 극비에 부치기로 합의된 내용인데 최근 언론 보도로 곤혹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문 : 연기가 된 실질적인 이유는 송금된 4500만 불이 계좌번호를 잘못 기재하여 북한 측 계좌에 늦게 입금된 것 때문 아닌가요.

답 :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

김보현씨와 김은성씨의 말엔 차이가 있다. 김은성 전 차장은 북측의 회담 연기 통보를 접한 게 국정원 창설 기념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던 6월 10일 오전이라고 확신하는데 김보현씨는 그날 오후라고 주장한다. 김보현씨는 전문 내용도 ‘수금 차질’이 아니라 ‘기술적인 준비관계’였다고 했다.

김은성씨는 전문에 ‘하루만 연기한다’는 내용은 없었고, ‘수금이 완료될 때까지 무기 연기한다’는 취지였다고 기억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11일 오전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을 통하여 ‘하루 연기’를 발표하도록 했는데, 김은성 전 차장은 10일 중에 남북 당국자가 비밀접촉을 통하여 이 문제의 해결방안에 합의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검(特檢)도 김윤규 현대아산 회장의 긴급한 중국 방문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보고 추궁했다.

10일 중 국정원과 현대그룹이 급히 움직여 송금 차질에 대한 북측의 오해를 풀고 은행이 문을 여는 12일에 나머지 돈을 보내겠다고 약속, 그날 오후에 북측이 공식적으로 ‘하루 연기’를 요청하는 전문을 또 내려보냈고 김보현 국장은 검사에게 그것을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시각 2000년 6월 12일 오후 6시, 마카오 현지 시각 오후 5시. 우리 정부의 대북 감청기관은 마카오 주재 북한 조광무역 상사에서 평양 중앙당에 긴급 보고하는 국제 전화 내용을 포착했다. 보고자는 조광무역 상사 총지배인 박자병(朴紫炳). 그의 보고 내용은 간단했다.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송금 차질을 빚었던 4500만 달러가 입금되었다는 표현이었다. 다음 날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 감청 내용은 대북송금 사건이 폭로된 2002년 가을 한나라당에 유출되었고 《월간조선》이 입수, 보도했다.


김대중 측에 김일성 屍身 참배를 강요


2000년 4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는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송금 차질뿐 아니라 김일성 시신(屍身) 참배 문제로 북측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성사시킨 남측의 주역(主役)인 박지원 당시 문광부 장관은 2008년 6월 서울대학교에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상회담을 위한 방북 전에 마침내 문제가 터졌습니다. 북측에서는 금수산기념궁전(김일성 屍身 전시) 참배를 요구했고, 임동원 원장께서 특사로 평양을 다녀오는 등 노력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평양에서는 KBS 등 사전준비팀을 추방하느니 야단이 났습니다.

평양 방문 일자도 하루가 연기되었습니다. 특검에서도 밝혀졌지만 일자가 연기된 것은 송금 지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언론이 항공사진을 이용해 순안공항에서 평양까지의 이동경로를 예측 보도한 것 등의 보안문제와 순안공항의 수리 미비가 이유였습니다.

평양에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참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할 수 없고, 올 필요도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위기가 오면 더욱 강해지십니다. 저에게 꾸중 한마디 않으시고 6월 13일 우리의 평양 착륙을 거부하겠다는 북측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출발하자’고 결정하셨습니다.

서울공항에서 환송식이 열리고 공식 수행원들은 전용기 앞에서 대통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임 원장께서 황급히 서울공항 청사로 들어갔습니다. 대통령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임 원장의 미소가 보였습니다. 대통령께 뭐라고 귓속보고를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임 원장께서 저에게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문제는 평양에 와서 논의하자는 북측의 통보를 받았다’고 알려줬습니다. 우선은 안심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모두들 흥분했지만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저는 북한 상공에 있었지만 북한의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박지원 의원의 설명은 그 2년 뒤에 나온 김대중 회고록의 기술과 다르다. 회고록은 북측이 방북을 하루만 연기한다고 통보했다고 썼지, 송금 차질이나 김일성 시신 참배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지원씨 주장대로 북측이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면 이는 공갈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 갈 때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는 국민들을 속이고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물건까지 포함하면 5억 달러)를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로 보냈다는 부담감, 김일성 시신 참배 요구에 따른 부담감을 안고 갔던 것이다. 김정일은 6월 13일 오전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안내한 후 다시 이곳을 찾아 남측 대표단과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인민들한테는 그저께(11일) 밤에 김 대통령의 코스를 대줬습니다. 대통령이 오시면 어떤 코스를 거쳐 백화원 초대소까지 (가는지를) 알려줬습니다. 준비관계를 금방 알려줬기 때문에, 외신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서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인민들은 대단히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보고 알겠지만 부족한 게 뭐가 있습니까.”

그 이틀 전 김대중 정부가 북측이 기술적 문제를 들어 방북 연기를 요청했다고 발표한 것을 뒤집는 발언이었다. 김정일은 이 발언으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왜 하루가 늦었는지 알지?’ 하는 심리적 압박을 넣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김정일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외국 수반도 환영하는 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갖고 있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김 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서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 장관들도 김 대통령과 동참해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 민족입니다.”

두려운 길을 왔지만 안심하라고? 마피아 두목이 상대를 불러 놓고 을러대고, 갖고 놓는 듯한 말투이다.


김정일의 협박

다음 날인 14일 오후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대중-김정일 회담이 열렸다. 본격적인 회담이 시작되니 ‘갑자기 김 위원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김대중 회고록》).

김대중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이런 취지로 말했다.

“국정원이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사업을 주도하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그룹과 아태위(亞太委)가 민간경제 차원에서 잘하고 있어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국정원이 개입하고 임동원 원장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달라졌고 사람이 달라졌으니 한번 해 보자고 한 것이다.”

선심을 써서 만나 주는 것이란 투의 이야기를 한 뒤 김정일은 ‘어젯밤 텔레비전을 보고 기분이 상한 게 있다’고 했다. 그는 ‘흥분한 빛이 역력하였다’(《김대중 회고록》).

“남조선 대학가에 인공기가 나부낀 데 대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건 뭐, 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대단히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공항에서 봤는데 남측 비행기가 태극기를 달고 왔고, 남측 수행원들이 모두 태극기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우리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생각해 봤어요. 어제 김영남 위원장과 회담하고 만찬 대접도 했으니 헤어지면 되겠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주위에서 만류해서 오늘 제가 나온 것입니다.”

한 배석자에 따르면 김정일의 말은 김대중 회고록의 전언(傳言)보다 훨씬 직설적이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선 회담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환대를 받으신 걸로 만족하시고 푹 쉬신 뒤에 돌아가시지요. 대통령께서도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셨잖습니까”라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노골적인 협박은 마피아 세계에선 상례(常例)이겠으나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폭언이다. 한국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김일성대학에서 학생들이 태극기를 올려도 이를 벌주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엄포조로 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4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먹은 자가 연장자(年長者)에게 그런 말을 했다. 김정일은 협박조의 이야기를 30분간 늘어놓았다. 이런 오만방자한 자세는 김대중의 기를 꺾어 놓으려는 심리전(心理戰)이었을 것이다.


김정일 페이스로 진행된 회담

이 회담에 배석했던 황원탁(黃源卓)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그해 6월 30일 재향군인회 주최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측에서 “모든 문제는 두 분 정상(頂上) 간에 만나서 결정하도록 하자”고 해서 사전에 그런 문제들(세부적인 의제)에 대하여는 전혀 논의가 안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두 분이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보따리를 꺼내 놓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또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쪽(김정일 측)에서 처음 이야기가 “우리 정상이 55년 만에 처음 만났는데, 전(全)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7000만 민족의 염원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7000만 민족에게 뭔가 선물을 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선물을 큼직하게 내놓아야 되는데, 그 선물은 우리 7000만 민족이 원하는 염원이라는 것, 통일 아닙니까? 통일에 대한 방안을 내놓읍시다. 그 통일방안은 역시 고려연방제입니다” 하고 나왔습니다.>

김정일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김대중을 압박하였는데 그런 전술의 목적은 중대 문제를 두 사람 사이의 담판으로 몰고 가 결정적 양보를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북한이 수십 년간 되풀이해 온 이런 방식의 정치적, 총론적 대화를 가장 위험하게 본 것이 역대 한국 정부였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실천 가능한 것부터 논의한다는 실무적 입장을 견지했는데, 김대중-김정일 회담은 북한식으로 전개되었다. 김정일이 여러모로 김대중을 심리적으로 압박한 것도 이 목적 달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의 ‘주한미군 주둔 가능’에 얽힌 진실은

김정일이 평양회담에서 노린 것은, ‘주한미군의 무력화(無力化)’ ‘국가보안법의 사문화(死文化)’ ‘연방제(赤化)통일방안의 합법화’, 즉 대한민국의 총체적 적전(敵前) 무장해제였다.

2000년 6월 평양회담엔 두 가지 합의가 있었다. 하나는 6·15 선언이란 공식적인 합의이고, 다른 하나는 김대중과 김정일이 주한미군의 중립화 내지 무력화에 비공식으로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이 평양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자랑한 것이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은 통일 후까지 주둔해도 좋다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김정일이 실제로 한 말은 ‘지금의 주한미군이 북한에 적대적인 태도를 포기한다면(그리하여 평화유지군처럼 중립화된다면) 있어도 좋다’는 것인데 김대중은 전제조건을 빼 버리고 지금의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국민들을 속였다.

김정일이 김대중에게 인공기를 올린 대학생 수사를 문제 삼은 것은 국가보안법 사문화를 주문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정원과 검찰이 친북세력에 보안법을 적용할 때 핵심적인 포인트는 ‘반(反)국가단체 고무찬양’과 ‘연방제 통일 주장’의 범죄였다. 김대중은 (6·15 선언을 통하여) 반국가단체 수괴와 ‘우리민족끼리의 통일’ 원칙과 ‘연방제-연합제 혼합 방식’의 통일안에 합의함으로써 보안법 집행의 근거를 허물었다. 6·15 선언은 명백한 헌법 위반인데, 정치권이 이를 막지 못하니 위헌적인 6·15 선언이 헌법과 보안법 체제 위에 올라타는 형국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일은 많은 몫을 챙겼다.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뇌물로 받고, 남한의 사상적 적전 무장해제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며, 대북(對北) 퍼주기라는 빨대를 남한에 꽂아 핵무기 개발 자금도 빨아먹었다.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얻었다. 대한민국이 얻은 것은 종북(從北) 득세에 의한 내부 분열뿐이었다. 평양회담은 김대중,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희생시키고 각자 이득을 취한 장(場)이었다.


정상회담은 결국 흥정의 산물


2000년 6월 22일 국회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임동원 국정원장.
김대중-김정일 회담은 이른바 민족문제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처음부터 사욕이 개재된 것이었다. 정몽헌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뿐 아니라 국내에서 어려워지는 사업에서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현대그룹이 북한 측에 정상(頂上)회담 가능성을 타진하도록 한 창구는 한국계 일본인인 요시다 다케시였다. 요시다와 아버지는 일본에서 친북인사로 유명하여 공안기관에서 관찰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 정부는 요시다를 활용,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전말을 깊숙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요시다를 통하여 현대그룹에 회담 의사가 있다는 점을 전달했고, 정몽헌 회장은 박지원 문광부 장관에게, 박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 비밀접촉이 시작되었다. 김정일은 국정원의 전신(前身)인 정보부와 안기부를 두려워하여 비밀 회담에 국정원을 배제할 것을 조건으로 달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접촉을 시작하기 직전에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통보했다.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비밀 회담에 국정원은 종속적으로 참여하고 박지원과 현대그룹이 주역이 되는 희한한 구도가 형성되었다. 남북 비밀 접촉자들은 김대중-김정일 회담에서 무엇을 다룰 것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는 젖혀 두고(북측의 전략은 그런 문제는 김대중-김정일 회담으로 미루는 것) 회담의 대가로 얼마를 줄 것이냐를 놓고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북측은 15억 달러를 불렀고 결국 5억 달러로 낙착되었다. 대북송금 사건 수사기록을 읽으면 이 비밀접촉과 흥정 과정이 생생하게 재구성된다.

최초의 싱가포르 회담장엔 현대그룹 사람들뿐 아니라 일본인 요시다와 김대중 실세들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김영완씨까지 동행했다. 국정원에선 김보현 국장이 참여했다. 정상적인 남북 비밀접촉이라면 북을 가장 잘 아는 국정원 전문가가 회담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데, 이 자리에선 하수인 정도로 격하되었다. 북한 정권, 현대그룹, 김대중 정권은 저마다의 이권(利權)과 사욕(私慾)을 이 회담에 투영시켜 대한민국의 정체성, 헌법, 안보를 망가뜨리는 데 공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을 여러 번 속였다. 국회와 국민들의 허가도 없이 현대그룹을 앞세워 적장(敵將)에게 4억5000만 달러를 주었고, 김정일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기로 했다고 또 국민들을 호도했으며, 공통점이 없는 남북한의 통일방안이 공통점이 있다고 헌법과 역사를 속여 한국을 김정일이 판 함정으로 끌고가 빠뜨렸다(6·15 선언). 그는 또 북한정권을 돕는 대북퍼주기를 북한주민을 돕는 것이라 해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도왔다. 가장 비극적인 결과는 북한정권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국정원이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로 뇌물을 보내주는 송금책(送金責)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미국, 평양 상공에 첩보위성 배치

김대중 측은 평양에 가 있으면서도 김정일 측으로부터 김일성 시신 참배 요구를 받았다. 박지원 장관은 참배를 강청(强請)하는 송호경 특사에게 “좋다. 그러면 내가 참배하고 내일 대통령께 장관 사표를 제출하고 베이징을 경유, 귀국해서 구속당하겠다”고 했지만, 송은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박 장관은, “그러면 마지막 제안이다. 한광옥 비서실장과 나 둘이서 참배하고 돌아가서 구속당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요지부동이었단다. 그렇게 헤어진 뒤 송 특사로부터 다음 날 아침, 즉 6월 14일 오전 8시에 아침식사를 하자는 전갈이 와서 만났더니, 송 특사는 그에게 “상부에 보고한 박 장관 선생의 열정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참배는 안 하셔도 된다는 말씀이 계셨다”는 ‘낭보’를 전해 주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14일 오후 김정일과 대좌(對坐)했을 때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되었을까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최측근이 민족반역자이자 전쟁범죄자인 김일성의 시신 참배를 안 해도 좋다는 ‘대한항공 폭파 및 아웅산 테러 지령자’ 김정일의 지시를 ‘낭보’라고 감지덕지한 정도였으니!

이번 취재 중 필자는 재미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요청을 받고, 방북 며칠 전부터 첩보위성을 평양 상공에 띄워놓고 북측의 준비상황을 관찰, 한국 측에 생생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김대중 일행이 지나갈 거리를 단장한다고 시멘트를 발랐는데 이것이 충분히 마르지 않은 점까지 알아냈다고 한다. 첩보위성이, 같은 승용차에 탄 김정일과 김대중,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승용차가 어떤 경로를 거쳐 백화원 초대소에 도착했는지는 알아냈을 것이다. 이런저런 소문의 진상에 대해서도 미국측은 알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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