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선거는 참으로 이상한 선거다. 링에 올라간 선수들이 포즈만 취할 뿐 서로 때리려고 하지 않는 경기다. 선거나 스포츠나 속성은 마찬가지다. 즉, 정해진 규칙에 따라 치고받고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다. 지금 미국의 선거가 그렇다. 그런데 특히 문재인 선수와 안철수 선수는 서로 때리는 일이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문재인 선수 진영에서는 안철수 선수를 보호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문재인 진영의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 안철수를 방어하겠다고 선언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니 박근혜 선수도 상대방에게 주춤하고 있다. 마치 성인군자들의 권투경기를 보는 것 같다.

 

한때 스케이트 쇼트트랙 경기에서 선수들의 담합행위가 말썽이 된 적이 있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미리 짜고 이번에는 내가 포기할 테니 네가 1등을 하고 다음에는 네가 포기하고 내가 1등 하는 식으로 경기 내용을 조율했다는 것이다. 쇼트트랙 경기의 단일화인 셈이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사이에 이런 담합까지야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지만 (혹시 지금쯤 양 진영 깊숙한 곳에서는 단일화를 위한 제반 준비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기에 따라서는 두 후보가 이런 것과 유사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두 후보 진영은 분명 단일화를 예상하고 서로 몸조심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역연하다. 캠프의 면면도 거의 다 어제의 동지들이다. 심지어 부부가 양쪽으로 나뉘어 중책을 맡은 경우도 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한 번도 상대방을 제대로 깐 적이 없다. 어차피 합쳐질 운명인데 그때를 생각해서 서로 얼굴 붉힐 일은 하지 말자는 심산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단일화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낀다. 계속 안개를 피우면서 갈 데까지 가본다는 식이다. 그러다가 가장 유리한 어느 순간에 둘이 합침으로써 드라마의 감동을 극대화한다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일개 스포츠 경기에서도 문제가 되는 이런 방식을 적절히 변형해서 국가 운명이 걸린 대통령 선거에 적용한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인가. 이번에는 당신이 대통령, 나는 총리 하는 식이나 이번에는 당신이 1등, 내가 2등, 그리고 그 다음 번에는 당신의 1등을 보장하겠소… 이런 식의 행위는 그것이 스포츠든 선거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도박이라 할지라도 이런 트릭은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이름으로 거부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가 이런 말을 들으면 사실이 아니라고,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펄쩍 뛸지 모르지만 아무도 봄바람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곰이 겨울잠을 끝내는 것은 달력을 보고 아는 것이 아니다. 날씨는 차갑지만 어딘지 모르게 훈풍이 느껴지고 봄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선거는 비교우위의 게임이다. 상대방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다, 상대방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시합이다. 이런 시합에 나온 후보들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을 정정당당한 경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선거게임은 일종의 트릭으로서 최대한의 경쟁을 해야 하는 민주주의 선거경기의 일반원칙에도 벗어나는 일이고 실제로 국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서로 때리지 않으려면 정책이라도 내놔야 하는데 지금 이들이 내놓은 정책이 무엇인지 그들은 잘 알지 모르지만 유권자들에게는 간에 기별도 안 오는 실정이다. 정치개혁을 하겠다는데 어떤 방식과 절차로 기존의 정치와는 다른 정치판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데 재벌개혁이나 경제개혁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개혁 내용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대로 실현할지는 또 별도의 문제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지식과 실천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 말은 정치학 교과서에 들어 있는 말이다. 우리 유권자들은 이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 후보들이 교수들을 대거 기용하여 공약을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되고 그런 세상이 온다? 이런 느낌을 주는 것도 선거 트릭의 하나로서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다.

 

사실은 흥미가 없어야 할 이번 선거를 우리 유권자들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도 신기한 현상인데 여기에는 온갖 신문 방송들의 북소리와 장구소리 효과, 그리고 기존 정치에 대한 지겨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다림에서, 학의 모가지가 되더라도 눈길을 뗄 수 없는 간절한 바람… 이런 것 때문일 것이다.

필자:언론인.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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