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가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와 악몽만 남는다. 교과부의 교육정책 발표 뒤엔 공교육의 황폐와 사교육비 증가의 악몽만 남을 것 같다. 5월 26일 교과부의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및 교육과정개정 방향’에 대한 발표 후 사교육 업체의 환호와 교육계의 우려가 대비되는 것이 증거다.

MB정부 들어 3년 3개월 동안 3번의 교육정책 변화가 있었고 이번이 4번째다. 1년에 한번 바꾸는 보도블럭보다 자주 바뀌고 있다. 그 결과 학교 교육에서는 영어교과만 비대해지고 영어 사교육 시장은 여전히 확장 중이다.

교과부의 이번 발표를 보면 의아함을 지울 수 없다. 교과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그에 맞춰 평가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교과부는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에 맞춰서 영어교과교육과정을 개발한다고 한다. 2009개정교육과정(총론)에 따른 영어교과교육과정 개발이 목적인가?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개발이 목적인가? 교육과정 개정이 새로 만드는 영어시험을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이래서야 정상적인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초등학교는 일제고사에 나오는 것만 가르치는 문제풀이 수업으로 전락하고, 중고등학교는 국가영어능력평가를 준비하는 데 몰입하라는 말인가?

[국가영어능력평가]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수능 대체여부와 효과에 관한 것이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만들어 내고 1년만에 사라진 2007년 수능 등급제를 기억해 보자. 학벌체제와 대학 서열화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입시제도의 변화만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선발효과에만 기대고 있는 대학들이 4등급만 나타내주는 이 시험의 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학은 변별력이 없다며 보완책을 요구할 것이고 자체적으로 선발을 위한 대책을 진행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중 삼중으로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학교 교육과정은 파행을 겪을 것이며 사교육비를 증가시킬 것이다. 교과부조차도 수능대체 여부를 확언하지 못하고 미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수능 영어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국가영어능력평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교과부는 사교육 시장의 홍보대사를 자처하지 말고 국가영어평가시험 계획을 폐기해야 한다.

현재 한자교육이 정식교과가 아닌데도 사교육시장의 선전과 2009개정교육과정 때문에 주말이면 유치원부터 급수시험을 보느라 바쁘다. 국가영어능력평가가 생기면 초등부터 준비시키려는 학부모들로 사교육시장은 더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 영어시간외에 영어를 전혀 접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언어환경에서 실용영어를 강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영어교육 전문가에 의하면 우리나라 같은 언어환경에서 공교육에서 배우는 실용영어 수준은 외국 여행가서 공항에만 가도 습득하는 수준이라고 단언하였다. 나아가 공교육만으로 영어를 완성한다는 것은 대국민사기극이라고 하였다. (전교조 2008년 6월 15일 초등영어정책토론회) 그런데도 여전히 교과부는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영어교육과정]을 학년군으로 개발하고, 방과후교육에서도 1학년부터 학년군 영어교육교재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초등학교 영어수업시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간 교육과정에서 영어는 외국어중의 하나로 취급받았는데 이제 세계어라고 바꾼다는 것인가? 지금도 다른 제2외국어는 고사되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인데 국가교육과정에서 영어를 세계어로 격상시겠다는 발상의 근거가 무엇인가? 교과부는 사대주의적 영어관에서 부터 벗어나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학년군 설정은 결국 영어 읽기 쓰기 교육을 3학년으로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간 연계성 강화를 명목으로 제시한 방안 역시 초등에서의 (영어) 문자 교육을 강화시키고, 사교육비 경감은커녕 영어 교육의 지역 격차와 계층 격차를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초등 공교육은 한글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교과서는 어려워 낱말 뜻도 이해 못하는데, 1학년부터 창의적체험활동에 한문교육, 방과후 영어교육으로 학습부담을 대폭 늘려주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유치원은 바로 영어광풍에 쓸려가고 온국민이 영어노출증에 시달리게 된다.

기본 어휘 수준과 내용 조정 문제(신구 비교안을 보면 초등의 어휘 제시 방법, 파생어나 외래어를 기본 어휘 수에서 제외시켰던 기존의 방침을 수정할 것처럼 보임)는 외국어로 영어를 처음 배우는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발달 수준에 맞게 체계적으로 연구되어야 하나 5개월 만에(11년 3월 개발, 7월 시안 공청회, 8월 초 고시) 제대로 이루어질지 미지수이다. 교과부 장관은 영어로 1,2....5,...11,... 100, 1984... 이렇게 세는 방법을 언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기본 어휘선정에서 기수법과 서수법은 제외되고 있으니 초등3~6학년은 어디에서도 기수법과 서수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고, 영어 사교육 못받은 아이는 4년 내내 숫자 세는 방법도 못배우고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의사소통 기능을 분류 세분화 재조정하고 상황과 학생들의 수준, 요구에 맞는 다양한 예시문을 제시한다고 했으나 언어는 창의적이며 상황맥락적이다. 이를 포괄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예시’이라는 명목으로 제시하는 것은 언어를 고정화시킬 뿐이다. 우리 나라 상황에 맞는 영어 교육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방과후 학습, 가정에서 온라인 학습을 해야 할 정도로 교육과정을 비체계적이며 어렵게 만들지 말고,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기초 연구부터 충실히 해라. 결국 방과후 학교를 통해서 영어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바우처 쥐어주며 방과후에 사교육을 받게 하려는 처사일 뿐이다. 과열된 영어 교육에 기름을 붓는 건 둘째치고,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 학습 의지에 관련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방과후 영어교육, 영어 교육의 기회 확대라는 명목으로 영어교육을 더 확대시키고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며, 1~2학년 영어교육을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다.

EBSe 방송 자료 활용 수업은 결국 큰 소득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 생활에 맞는 바로 그 날의 현장이 모든 교육의 재료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유의미한 맥락 속에서 학습이 이루어질 텐데, 전국을 표준화해서 강사 몇 명으로 진행하는 방송은 결국 폐기 처분될 것이다. 영어 능력이 훨씬 뛰어난 강사가 방송으로 100시간 수업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상황, 사정, 정서적 특성을 알고 접근하는 그 아이들만의 교사가 훨씬 유의미한 학습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이 강화되고 시간이 늘어날수록 영어교육효과는 미미하지만, 사교육시장에서는 영어중요도가 높아져 국민들의 사교육비부담만 더 커지게 된다. 2010년 8월 14일자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교육비는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하고 정규 교육비가 1.8% 증가한 반면 학원과 보습 교육비가 0.3% 감소하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교육비가 감소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방과 후 학교를 학원화하고, 실적을 내기 위해 학생들을 반 강제적으로 수강하게 한 결과, 사교육비는 줄였다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교육비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의 이번 발표는 외국어라서 일찍 접할수록 실력이 좋아진다는 학부모들의 막연한 기대와 영어가 우리 사회에서 내는 수문장 효과(영어랑 연관이 없는 직종도 영어관련 자격증이나 실력이 있어야 진입할 수 있는)와 어우러져 그렇지 않아도 과열된 영어 사교육시장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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