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개최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산부인과 분만 관련 수가 인상안이 안건으로 상정되어 논의된 끝에 차기 회의로 결정이 미루어졌다. 분만관련 수가의 상대가치점수를 무려 50% 높이는 안을 복지부가 들고 나온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가입자측 위원들은 물론, 일부 공급자측 위원들이 반대의사를 밝혀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건정심 위원장인 유영학 보건복지부 차관은 차기 회의에 자료를 보완하여 다시 안건으로 상정하여 통과시키겠다고 공공연히 언급했다.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의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들의 기본 입장

우리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들도 현재 상황이 임신 및 출산과 관련하여 국민의 기본적 의료보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가 과연 “건강보험 수가 인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선,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출산률 자체가 낮은데 과연 분만실이나 산부인과 병의원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다. 건강보험 수가를 올린다고 과연 출산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시골지역에 산부인과 병의원이 세워지고 유지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분만 관련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하는 것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건강보험 지출만 낭비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작년 7월에는 외과가 어렵다고 해서 관련 항목과 관련한 상대가치점수를 100%나 인상해주었다. 그런데 올해는 또 산부인과 관련 상대가치점수를 50% 올려주자고 한다. 이런 분위기대로라면 다른 진료과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상대가치를 활용한 건강보험 수가체계의 왜곡과 진료과목 간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산부인과 관련 상대가치점수의 인상을 쉽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밝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적 수단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들은 건강보험 수가 인상만이 능사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적인 정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제의 핵심은 출산건수가 적은 지역에 대한 대책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산부인과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의 심각한 ‘저출산’ 현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복지부가 5월 7일 건정심 회의 자료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분만실이 없거나 산부인과가 전혀 없는 지역이 발생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은 ‘건강보험 수가 인상’이라는 단순한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며, 분만실과 산부인과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출산 건수를 맞출 수 없는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출산건수가 적은 지역의 경우 ‘규모의 경제’에 맞지 않는다고 산부인과나 분만실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이용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산부인과 없는 농촌 늘어나고, 도시지역 산부인과 수입만 늘어날 것

만일 지금의 상황에서 다른 정책적 지원 없이 분만 관련 수가를 인상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만관련 수가를 50% 인상하더라도 출산건수가 적은 지역에 산부인과가 생길 리가 만무하다. 분만관련 수가가 인상되더라도 출산건이 있어야 건강보험 수가가 인상된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출산건수가 적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도시지역의 산부인과는 수입이 늘어날 것이다. 도시지역은 기본적인 출산건수가 농촌지역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농촌지역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도시로 옮기려는 경제적 동기가 더 크게 작동하게 된다. 그러면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결국 산부인과나 분만실이 없는 농촌지역을 더 확장시키는 꼴이 되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도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른척 하는 것인가?

외과 관련 상대가치 수가 인상후 1년, ‘기대효과’는 없었다

작년 7월, 건정심은 외과관련 항목의 상대가치점수를 100% 올려주었다. 당시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다소 과장된 내용을 전제로 수가인상이 이루어졌다.

사실 우리나라는 흉부외과 수술의 수요에 비해 흉부외과 전문의는 부족하지 않다.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과 새로운 시술법의 개발로 인해 흉부외과 수술건수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오히려 병원 밖으로 나와 감기환자 진료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병원측은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하다고 국민의 판단을 흐리는 정보를 퍼뜨렸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병원은 ‘흉부외과 전문의’ 보다 값싼 인력인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 수련의)’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대졸업생들은 이미 수요량(흉부외과 수술건수)이 줄어든데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과잉인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흉부외과 전공의를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복지부는 병원들의 엉터리 논리를 받아주었고, 그 결과는 외과 관한 수가와 환자 부담금의 대폭 인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늘어났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을 꺼렸고, 병원들은 감기환자를 보고 있는 흉부외과 전문의를 채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외과 관련 상대가치 수가 인상은 흉부외과 수술건을 그나마 가지고 있는 일부 대형병원들의 수입만 불려준 꼴이 되었을 뿐,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엉망으로 만들 것인가?

건정심이 작년 7월 외과 관련 항목의 상대가치점수를 올려주면서 함께 결정한 사항이 있었다. 외과 이외의 다른 항목에 대하여 특별히 상대가치점수를 올려주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부대결의로 한 것이다. 상대가치점수는 5년마다 바뀌도록 제도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의 안건으로 특별히 어떤 항목에 점수를 올려주는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 제도적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복지부는 이런 결정을 스스로 먼저 어겨가며 분만관련 상대가치점수의 특별인상을 건정심의 안건으로 상정한 것이다. 제도적 취지에 맞게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는 복지부가 ‘건강보험 상대가치제도’를 엉망으로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는 꼴이다.

뿐만 아니다. 이처럼 특별한 항목에 대해 상대가치점수를 인상하는 것은 복지부가 건강보험 수가 협상체계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 것과 같다. 매년 10~11월에 건강보험 수가 협상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수가협상은 상대가치점수가 고정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상대가치점수와 곱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이른바 ‘환산지수’를 놓고 수가계약을 한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 여름에 복지부는 상대가치점수를 또 높이고 있다. 겨울에는 ‘환산지수’로 수가를 높이고, 여름에는 ‘상대가치점수’를 또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 반복되는 것은 그야말로 건강보험 수가 협상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우리 가입자단체들은 환산지수 계약후 임의로 상대가치를 올리는 식의 편법적 수가인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으며, 만일 복지부가 이를 강행한다면 법적 대응을 추진할 것임을 밝힌다.

건강보험 가입자측이 제시하는 대안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들은 ‘산부인과 분만 관련 상대가치점수 인상’을 찬성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정책수단이라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입자단체들은 다음과 같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먼저, 전국적으로 분만실이 필요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분만건수가 적어서 분만실이 운영되지 못해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지역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

2)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 복지부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정기적으로 의료 현황을 분석하여 일반, 분만 등의 의료취약지역을 고시하고, 거점의료기관을 지정·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정책이 분만관련 수가 인상보다 훨씬 좋은 정책이라고 본다.

3) 분만건수가 부족하여 수입의 문제로 분만실의 운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경우, 우선 지자체와 건강보험공단이 검토하여 지역에 산부인과병의원을 지정(유치)하고, 이에 대하여 건강보험 수가와 관련한 요양기관 가산율을 조정하여 분만비 수입으로 부족한 부분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복지부는 수가인상 정책을 거두고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라

산부인과가 어렵다고 해서 무턱대고 건강보험 수가 인상부터 들고 나오는 것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의 지출만 증가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이는 올해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걱정을 더욱 크게 만드는 일이 되고 만다.

건강보험 정책은 수요에 공급을 맞추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자를 살려주기 위해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 기본적인 조건으로 출산율이 낮은데 산부인과 의사들이 먹고 살아야 한다며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고 잘못된 방향이다.

지금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산부인과나 분만실이 없는 지역의 주민을 위한 정책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수가 인상’이란 카드는 너무나 부적절할 뿐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복지부는 문제의 본질을 다시 확인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내세워야 한다. 현재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산전관리를 개선하여 산전관리에서 분만까지 포함하는 “임산부 전담관리 의사” 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임신이 인지된 시점에 인신부가 특정 산부인과의사를 전담의사로 선임하여 산전관리와 분만을 모두 의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상은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 등을 구분하여 포괄수가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산전관리와 안전분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정부는 산부인과 관련 분만 상대가치점수 인상안을 건정심에서 통과시켜려는 뜻을 당장 포기하고 실효성있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가입자단체들은 복지부가 과연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국민들과 함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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