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원(영상학 박사, 자아초월 상담학 빅시과정, 미래영상연구소 소장)

자기를 인식하는 단어는 살고 있는 지역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학교’란 말을 직역해서 표현하면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진다. 그들에게는 ‘나의 학교’, ‘나의 아빠’, ‘나의 학교’로 세계의 단위가 ‘나’에서 출발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호칭 또한 자기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이다. 한국인은 친한 동년배 외에는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역할과 위치를 표시하는 ‘언니, 오빠, 형님, 선배님, 삼촌, 이모, 고모, 당고모... **엄마, **아빠...’ 등 호칭으로 부른다. 이렇게 발달한 호칭을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서양은 어느 정도 알면 바로 이름으로 부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리를 둔다고 생각하여 섭섭해 한다.

존재에 깊이 각인 박힌 ‘나’에 대한 인식방법은 지구가 하나의 촌락이 되어버린 지구촌 시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혼란을 주기도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옛날에 사용하던 ‘당고모, 고종 사촌, 육촌...’ 등의 단어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어(死語)에 속한다. 그들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대신 스스로 지은 아이디(ID)를 사용하고, 맘에 안들면 바꾸기도 한다.

필자가 속한 단체에서는 이름 대신 아이디로 불러서 이름이 생각 안나는 경우가 많다. 2002년 월드컵 때 이 단체의 총무가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린 적이 있었다.

모두 광화문 음식점에서 대형 프로젝터로 월드컵 경기를 보기로 되어있었다. 당연히 총무에게 이런 일 저런 일로 전화가 폭주했다.

그 날 마음씨 착한 기사님께서는 ‘미래영상, 따오기, 롸키, 싸이지기, 피티오, 우먼, 맑은 내일 등’ 다양한 이름의 악동 어른들 전화에 답하느라 고생하셨다.

나중에는 무엇이라고 불리는 이름으로 전화가 올지 호기심이 나서 핸드폰을 좀 늦게 찾아가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아이디는 한국인들에게 관계의 그물망에서 자유로운 ‘인간’인 ‘person'으로서의 ’나‘를 경험하게 하였다.

나이, 사회적 위치, 가족 내 관계, 남녀 등 사회적인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는 두뇌가 가벼워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반응을 느끼지는 않는다.

까마득하게 나이가 많은 사람도 스스럼없이 ‘하이 근원’ 하면서 서로를 부르는 서양에서 공부를 오랫동안 하고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알튀세르는 가정, 학교, 종교, 대중매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개인의 신념체계를 만드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한다. 즉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의심의 여지도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가치관이 모두 이들 사회적 조직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서양은 서로를 인간으로 보는 ‘person'이란 개념에 기초해 있다. 한국은 이와 달리 관계의 그물망 속의 나로 ’우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

이 두 개의 극단적인 인식 구조가 한국에서 만나 어떤 새로운 발달을 하게 될지 필자는 대단히 궁금하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통합의 시대로 간다고 예견한다. 이분법적인 사고 패턴이 이 둘을 종합하면서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서양을 잘 소화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문화형태가 많이 남아있다.

한류가 외국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도 한국인 특유의 복잡한 가족 간의 인간관계를 통해 사람 냄새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와있다.

‘우리’라는 관계 속의 ‘나’는 유교가 바람직한 이상세계를 세우는데 ‘관계’라는 외적 씨스템을 통해 건설할 수 있다는 사상에 기초를 두고있다. 한국인의 복잡한 호칭 체계는 유교를 가장 잘 소화한 예를 보여준다.

이와 반대 극에 도교와 선(禪 )불교의 무와 공(空) 사상 또한 한국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다.

한국의 선비들은 낮에는 관아에 나가 유교에 입각한 정치를 펼쳤다면 사저에서는 서예와 다도를 즐기면서 도가의 비움을 실천하려고 했었다.

이조시대에 유교가 지배했던 사회에서 이들은 극과 극으로 다른 두 가지 철학을 어떤 식으로 조화하고 통합했는지 연구하는 것이 21세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장 크게 분출하는 국가로 여기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많다.

지난 100년 동안 식민지 시대와 독립,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치열한 전쟁, 독재와 민주화, 최빈곤국에서 경제 대국으로의 성장, 종교적 자유의 실천, 동서양 문명의 대립과 소화 등 한국만큼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한 나라는 없다.

한국의 이러한 역사는 극단의 통합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인식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조건일 것이다. ‘person'과 ‘우리’가 조화된 세상을 만드는 숙제는 한국인 고유의 숙제일 뿐만이 아니라 지구촌의 중요한 숙제가 될 수 있다.

먼저 필자는 ‘아줌마’로 불리는 한국의 여성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 엄마’로 사석에서 불리는 한국의 아줌마들에게 멋진 호칭으로 무슨 단어가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올 초에 국민 드라마로 불린 ‘추노’에서 형제지간을 전혀 낯선 말이었던 ‘언니’란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어느덧 자연스럽게 다가섰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력:
서강대학교 문과대학 신문방송학과(학사)
서강대학교 문과대학원 신문방송학과(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제1대학 환경과 커뮤니케이션학과(초급박사, 박사)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사목상담연수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자아초월상담학 박사과정
미래영상연구소 소장
한세대학교, 조선대학교 겸임교수
서강대학교 외 출강
대전 엑스포 바티칸관 영상분과위원장
월드컵 공원 자문위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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