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의 실질적인 재활을 돕는다”

실업자 120만 명 시대, 늘어나는 노숙인들의 수는 서울 사대문 안에서만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안정적인 생계유지가 힘든 일용직 근무자가 대부분이다. 아직 생계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 재활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노숙인들의 재활에 힘을 쏟는 교회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서울역에서 서부역으로 가는 육교 위 990㎡(300평), 찬양과 기도소리가 간절한 이곳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예배당이다. 강대상도, 피아노도, 영상장비도 없다. 하늘을 지붕 삼고 종이상자를 방석 삼아 500여 명의 노숙인들이 주일마다 예배를 드린다. 1000여 명이 모일 때도 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오히려 버릴 것이 없는 거리의 천사들, 이들에게 마지막 인생의 끈은 예수님이다. 평생 가진 것 없이 광야에서, 바닷가에서 복음을 전하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처럼 11년째 육교를 교회 삼아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서울역교회 이상복 목사를 만났다.

“예수님밖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직장과 가정을 잃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11년 전 이상복 목사가 자신의 모든 사비를 털어 시작한 서울역 노숙자 사역은 지금까지 단 한 주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 영과 육의 양식을 주일마다 공급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매번 기적적으로 채워졌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들은 굶어도 갈 곳이 없다는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김밥 1천원을 아끼기 위해 30리 길을 걸어 다니기도 했다. 노숙자들에겐 한 끼의 식사가 보약이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그는 거리의 목사가 됐을까? 원래 이 목사는 사업가였다.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됐다. 절박한 가운데 기도로 매달렸다.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서원기도가 나왔다고 한다. 그 기도 후 수억 원이 넘는 빚보증이 거짓말처럼 해결됐다.

세상으로 나온 이 목사는 사재를 다 털어 노숙인들 곁으로 갔다. 1999년 IMF 외환위기 직후였다. 그렇게 벌써 11번의 겨울을 보냈다.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이었지만 오래 전부터 계획한 목표가 하나둘 성취되면서 어느 때보다 보람 있는 해를 맞았다.

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해 3년 전 설립한 ‘가나안행복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한 이상복 목사의 목표는 일회성에 그치는 배식봉사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노숙인 자립을 돕는 것이다.

“무료급식만으로 안돼요.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줄 수 있지만 자활시킬 수는 없어요. 노숙인들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실패를 겪고 낙담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지렛대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인문 교양강좌를 열어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주고 재활을 위한 직업 교육을 시킨다. 소정의 과정을 거친 이들에겐 단계적으로 200만원을 지원하고 개인의 특성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도 알선해준다.

일례로 지난해 5월에는 노숙인 30명을 선정해 충북 음성청소년수련원과 포항해병대사령부에서 인성 교육 및 취업 교육, 해병대 훈련 등을 실시하고 교육을 받은 노숙인 전원이 각 구청에 취업함으로 노숙인 재활의 가능성을 보였다. 불우 청소년과 소녀소녀 가장들에겐 비전스쿨과 비전입양, 지속적인 교육으로 자아실현을 돕고 있다.

예수님을 모르던 노숙인들은 노숙의 아픔이 깊었던 만큼 이런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복음을 접하고, 앞으로의 인생은 뜻 깊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사업 실패로 지난 2004년부터 노숙생활을 한 임방택(66세) 씨의 경우, 지난해 7월 노숙인들을 위한 서울역교회의 거리예배에 참석해 예수님을 영접한 뒤 이 교회의 도움으로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살고 있다.

이상복 목사는 지난 해 9월부터 임씨에게 가나안행복재단 사무실에서 업무보조와 청소일 등을 맡기고 매달 60만원을 지급해 자립을 돕고 있다.

가나안행복재단의 재활 시스템은 도움을 요청한 개인에게 직업을 알선하고 매주 3만 5천 원의 회비를 2년 동안 받는다. 이때, 개인은 회비를 내는 것과 동시에 일정한 금액을 지원받는데, 이는 바로 이전의 구직자가 낸 회비에서 지원하며, 개인이 낸 회비 역시 다음 구직자를 위해 사용한다. 즉, 도움을 받는다는 고마움에, 회비는 내야 하는 의무, 기부를 한다는 의미가 합쳐져 재활에 성공한 사례가 이미 2천 4백여 건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2월 8일 가나안행복재단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노숙인들의 재활 지원금 마련과 불우청소년, 난치병 어린이 환자 후원을 위한 ‘사랑과 행복 나눔 콘서트’를 열었다.

(사)가나안행복재단(이사장 이상복 목사)과 (사)한국청소년정책개발원(총재 손충국)이 공동주최한 이날 음악회는 가수 주애리, 김다영, 모던 피아니스트 문효진, 소프라노 김수연, 테너 이성연, 바리톤 용정호, 임준식, CCM 가수 김수연, 신수영, 그림산 선교무용팀 등이 자원봉사로 출연해 다채롭고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잔뜩 흐리고 빗방울이 흩날리는 늦은 오후였지만 빈 좌석이 없었다. 김충환, 정의화 국회의원과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동명 멕시칸 도넛 회장, 병정주 고려대 유택연구교수, 정채동 서울시 교육위원, 시민단체 회원 등 500여 명이 함께했다.

지원금과 장학금을 전하는 ‘사랑의 전달식’에서는 노숙인 3명과 소년소녀가장 2명, 선천성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 2명에게 200만원씩을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기부증서를 전달했다.

앞으로 이 목사는 현재의 노숙자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노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공동체를 운영하려고 한다. 노숙자가 되기 전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또 노숙자들이 행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미소금융을 통해 100~200만원 정도의 소액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몸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의료공동체도 계획하고 있다.

삶의 무거움에 지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노숙인 사역에 기쁨과 보람을 함께하는 동역자들은 이 목사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다. 서울역교회의 20여 명의 봉사자들과 가나안행복재단의 2000여 명의 후원회원들이 이 목사와 뜻을 함께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신보다 더 헌신적으로 노숙자 사역에 동참해온 이 목사의 아내 양순자 사모는 가장 큰 힘이다. 노숙자들의 더러운 흔적들을 손으로 직접 치우고 이 목사의 내조도 하며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5년 전부터 함께 해온 박창근 장로 역시 둘도 없는 동역자이자 친구다. 연예인교회를 섬기다가 믿음의 공허감을 느끼던 중 이 목사의 사역에 도전을 받아 참여하게 됐다. 박 장로는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이 땅에 오시면 어디를 찾아가시겠냐”며 “실의에 빠진 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삶이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11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노숙인들을 섬기고 있는 이 목사는 무엇보다 변화되어가는 노숙인들의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쁘다. 소망도 희망도 없어보이던 노숙인들이 찬양을 부르며 춤을 추고 기뻐하는 모습, 술도 담배도 끊고 새 생활을 하며 없는 주머니를 털어 예배 때 헌금까지 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이 목사는 서울역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부쩍 ‘성도’들이 느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어서 빨리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오늘도 서울역 육교 위 노천예배당은 일용할 양식과 희망의 복음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자들이 있어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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