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묘하다. 생각을 더하면 기묘하기까지 하다.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 다른가? 그 동안 우리(민족)는 이 땅에서 반만년을 넘게 함께 살아왔다.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춤과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해 왔다. 그런데 함께한 그 기나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너무 다르다. 생활방식을 비롯한 언어습관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앞으로는 보다 더 빠르게 변해갈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리적 경계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키고 있다.

자연히 앞으로는 ‘우리’라는 말의 의미까지 변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우리’하면 ‘우리민족’, ‘우리국가’, ‘우리가족’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하면 지구촌을 연상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 시집 온 동남아 여인들의 경우 ‘우리’하면 바로 한국과 함께 동남아 지역을 함께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처럼 이제 ‘우리’의 범주가 활짝 열리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하여, 언어가 다르다고 하여, 급기야 노래와 춤, 그리고 먹는 것까지 다르더라도, 곧 전 세계인이 ‘우리’의 범주에 들게 된다.

■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최북단까지 차로 오고가는데, 휴전선만 열린다면, 한나절이만 족하다. 이처럼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어서 우리는 저 북녘 땅까지 오를 수조차 없다. 그 땅도 분명 우리네 땅인데도 말이다. 북녘 땅 역시, 지금은 갈수 없어서 서러운 땅이지만, 하루빨리 우리가 가서 다 함께 다시 딛고서야 할 우리네 삶의 터전이다.

하기야 남북이 갈라선지 어느 덧 반세기, 남과 북은 어느새 말과 글, 생활습성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도대체 이념이 짓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무서울까? 우리가 흔히 쓰는 ‘우리끼리’라는 말조차 저들이 쓸 때와 우리가 쓸 때, 그 의미조차 달라진다.
우리가 쓰는 ‘우리끼리’는 함께한다는 좋은 의미다. 그러나 저들이 쓰는 ‘우리끼리’는 적화통일에 대한 야욕이 담겨있어서 우리에게는 애초 그 말이 본디 뜻과 다르게 들린다. 도대체 ‘우리끼리’라는 말의 의미가 같아지는 날은 오는가?

그 점을 생각하면 무위(無爲)와 함께 낙담부터 먼저 하게 된다. 이제는 좀 나아지려니 하다가도 저들이 내 뱉는 말을 들으면 이내 그런 생각마저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지금 북은 미국에게 양자대화, 곧 담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북한의 주장을 어제 오늘 미국이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배척해오더니,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에게 위협이기는 한 모양이다. 아무튼 만남이 이루저지더라도 무슨 성과를 기대하기는 것은 섣부른 일일게다. 아무튼 미국의 모든 북한 전문가는 현재 미/북 관계 개선의 길을 탐색했고, 앞서 말한 대로 최근 성과를 낸 모양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통 큰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미/북 간에 물밑 접촉이 진행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제발 어느 신문의 보도처럼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실현될 개연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물론 상황을 급반전 시킬 헤게모니가 미국의 손 혹은 북한의 손에 들려있다면 또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그것을 어렵게 한다.

어쩌면 미국에게도 이번이 미/북 관계개선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현재 대로라면 머지않아 중국의 GDP 규모가 미국과 대등해지고, 군사적으로도 대등해져 세계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간다면, 그 때 미국은 낙동강 오리알로 남게 된다. 미국도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미중 사이에 끼인 한반도, 남과 북 이로 인해 남북문제에 있어서조차 우리는 항시 무위(無爲)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앞서 말한 대로, 지금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 쪽의 독이 완전히 깨어져 쓸모가 없어지지 않는 한 현재의 대결은 쭉 지속될 전망이다.

■ 자구책인 핵무기를 북한이 어이 폐기할까? 이 사실을 안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과의 대화 역시 의미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그저 시간을 끌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일만을 한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 성능을 더 강화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슈퍼노트(위조 달러)를 만드는 데 열중한다. 그리고 노력동원이라 하여 공공근로에 인민을 동원하고,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교육을 경쟁적으로 시킨다. 북한 인민은 오로지 김정일 위원장과 공산당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 북한 인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물며 개인의 기본권인 인권과 자유조차도 북한 인민들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우리’라는 낱말을 세계인과는 함께 쓸 수 있더라도 북한과는 함께 쓸 수 없는 말이 아닌가한다. 남과 북이 이 지경임에야 어이 우리가 무위와 낙담의 세월을 보내지 않으랴.

이미 다른 글을 통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한 바 있지만, 나는 다시 한번 큰 소리로 고한다. 더 큰마음으로 남북이 함께 갈 수 있는 새 길을 열라고. 우리는 기어코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지난 역사의 고비마다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걷어낼 수 있는 길이다. 무위(無爲)와 낙담으로 세월을 지세는 사이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눈물이며, 서러움이다.

이제 북한도 남한도 ‘이념’을 버려야 한다. 그런 가운데 접점을 찾아야 한다. 사실 앞서 말한 ‘접점’이라는 것 역시 별다른 것이 아니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끼리’라는 말의 뜻이 같아지도록 남북이 함께 나서서 생각과 행동을 통일하면 된다.

너무나도 쉬울 것 같은 이 일이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이냐? 그 기에는 바로 남과 북이 각기 ‘정권’을 유지해야 하는 어리석음이 개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래서 나는 제안한다. 남북이 각기 정권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면, 정권을 그대로 둔 채 판문점에 ‘공동시장’만이라도 열자. 그리고 그 시장에서 남과 북의 물건이 서로 만나게 하자. 단 이 시장에서 지폐의 사용만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시장의 범주를 물물교환의 범위로 한정하자. 이 시장이 서로의 정치체제에 문제가 되지 않을 때, 이 시장에서 지폐의 사용을 허가하고, 더 큰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시장의 범주를 확장하자.

초기시장은 농산품에 한정하고, 2차 시장이 확대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공산품의 거래까지 허용하는 안이다. 당연히 초기시장은 각 당국에 의해 엄격히 통제(출입자, 상품 등)되어야 한다. 그러나 2차 시장이 열릴 때에는 그것을 한 단계 완화하면 된다. 그리고 최종 단계에는 누구나 참가하는 세계시장으로 개방하자.

아니면 애초 세계인이 참여할 수 있는 거점 시장을 판문점 인근에 개설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곧 판문점 일대를 바티칸과 같은 제 3의 ‘도시 국가’를 만들어 남북이 함께 관장하는 방법을 강구해도 좋다.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끼리’라는 말의 의미를 본래 뜻대로 조기에 회복하고, 접점이 찾아지면, 곧 남북의 이해가 같아질 때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통일의 날을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도 최상의 대안이 될 것이다.

2009.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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