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30을 넘은 남자들에게 화천은 향수가 서린 곳이다. 고개 너머 굽이굽이 찾아 들어가 군에 근무하는 친구나 아들을 면회하러 간 곳. 호수도 좋고 산세도 수려하건만, 그리 마음 편하게 찾아가는 곳만은 아닌 그런 곳이 화천이었다. 그렇지만 보면 좋았고 또 제대하는 그날 기쁨을 누렸던 곳도 화천이었다. 그렇게 화천은 군과 떨어질 수 없는 곳이었다. 화천의 지역경제를 말할 때도 군부대란 이미지는 실재했다. 화천의 식당, 가게, 주택 등은 거의 대부분 군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주말이면 휴가와 면회 나온 장병들이 빽빽이 식당과 여관을 메우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던 곳이다. 그래서 이야기꽃이 피는 냇가의 花川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화천이 완전히 변했다. 화천은 이제 산천어의 고장이다. 군부대이미지는 사라지고 산천어라는 청정이미지로 바뀌었다. 지역경제도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초토화된 지역경제는 산천어라는 새로운 소재로 지역경제의 부활을 알린다. 산천어축제 7년째. 매년 한 겨울 산천어축제 때만 되면 화천에 들어가려는 관광객들로 화천 진입로가 수 킬로미터나 막힌다. 관광객은 짜증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겐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인구 2만 4천명의 작은 마을도시 화천을 이렇게 갑자기 변화시켰을까.

사실 그건 갑자기가 아니다. 외지인들이 어느날 보니 이미지가 변해있어서 ‘갑자기’였을 뿐이지 차근차근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많은 요소들이 어울려 그 성공을 이루어냈겠지만, 가장 크게 눈에 띠는 것은 역시 지역민들의 의지와 파트너쉽이었다. 한번 해보자는 의지로 똘똘 뭉친 공공부문의 리더들과 지역발전의 의지에 찬 선각자 그룹들이 그들이다. 사실 화천은 자원이 없어 헝그리정신 때문에 성공했다고 우스게로 말하는 이도 있으나 지역 끼리끼리라는 폐쇄적인 태도 없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과도, 누구와도 함께 한다는 관용정신도 한몫했다. 사실 이런 태도는 지역발전에 아주 중요하다. 지역의 대부분은 정체하거나 위기가 닥치면서 지역발전의 요구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하면 결국 그 덫에 자신이 걸리고 만다.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이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지의 재(在)와 부재(不在) 사이에서 경쟁력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산천어는 화천 것이 아니다. 나비도 함평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민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이제 산천어는 화천 것, 나비는 함평 것이 되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성공요소가 또 있다. 성공하는 축제가 오래가다 보면 자연히 분란도 생긴다. 큰 이권이 생기면 갈등의 요소도 높아지고 그러다보면 초심도 무너지고 동력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모든 세상일에 ‘반짝 성공’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화천은 자기유지장치(self-sustaining system)를 잘 만들었다. 겨울에만 열려 부담되는 축제를 사계절로 바꾸기 위해 여름날 화천의 ‘쭉쭉빵빵한 호수’에서 쪽배축제도 기획하고, 공공근로의 노인분들도 풀뽑기에서 쪽등을 만드는 선수들도 탈바꿈시켰다. 쪽등 만드는 기술을 익힌 지역의 실버계층은 이제 새로운 공예기술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 최고의 등공예 기술을 배우자고 의기투합하는 노인분들도 있다. 더 이상 풀뽑기에 지쳐 그늘에서 한숨 쉬는 공공근로자들이 아니다.

화천은 자원이 없는 지역의 재생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교과서같다. 소수의 창의적 리더들과 그들의 관용정신 그리고 지역주민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기술들. 물론 지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하다. 많은 지역들이 반짝하다가 엎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천 사람들은 초심을 잃지 말자고 서로 반성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런 격려들이 시스템으로 잘 만들어져 지역발전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면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한국의 미래상도 기대할만하다. 작은 지역들이 하나하나 발전에 성공하면 결국 그것이 한국 전체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올 여름 8월 밤에 벌어지는 화천의 쪽배축제가 장관일 거라고 한다. 물론 화천까지는 휴가철이라 막히고 짜증도 날 것이다. 그렇지만 별이 쏟아지는 화천의 밤하늘 아래 가족과 함께 쪽배에 꿈을 띠워 보내면, 한편의 멋진 풍경이자 추억에 남는 휴가에 덧붙여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휴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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