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에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강국일까? 우리나라가 내년에 G20 회의의 의장국이 되므로 우리나라가 세계 20대 강국에 속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규모의 세계 순위가 점차 하락하고 있어서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서고 있다.

최근 세계은행은 2008년 주요국의 경제규모 순위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7년에 비해 한 계단 더 떨어진 세계 15위 국가가 됐다. 2002년에만 하더라도 세계 11위 국가이었으나 참여정부 기간 중 우리나라가 세계 평균수준의 성장을 하는 동안 BRICS가 높은 성장을 지속함으로써 2007년에는 14위 국가로 밀리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가 우리나라를 앞서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높여서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 국가로 만들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2008년 중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원자재 강국인 호주에 밀려 다시 한 계단 하락하고 말았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경제규모, 5년새 네 계단 하락

이러다가 우리나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20위권 밖으로 밀리는 것은 아닐까? 답부터 말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와 순위를 다투는 국가들의 경제규모를 볼 때 최악의 경우 네덜란드나 터키에 또다시 밀려 세계 17위 국가로 추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이하로 추락하기는 어렵다. 그 다음 순위 국가인 스웨덴, 벨기에, 인도네시아 등은 현재 GDP 규모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므로 상당한 격차가 있다.

작가 이문열은 젊은 남녀의 파멸을 향한 사랑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제목의 소설로 리얼하게 그린 바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추락한다는 것은 날았기 때문이라는 뜻이리라. 우리가 2008년에 세계 15위 국가로 추락했다고 걱정하고 실망하는 것은 2002년 세계 11위 국가로 날았기 때문이다. 날개가 있는데도 날지 못하고 추락하는 모습을 안타까워 한 나머지, 추락을 멈추고 다시 세계 11위 국가가 되거나 세계 10위권 국가에 진입하겠다는 꿈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물론 세계 속의 GDP 순위를 높여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고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므로 고도와 속도를 조절하게 된다. 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 수 있다. 1등 하면 거액의 상금을 주거나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다면 순위를 올리려고 필사의 노력을 할 만하다. 그러나 세계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국가 간에 경제규모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면 세계 20대 강국에 드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제 ‘순위’ 아닌 ‘성장률’ 변화

사실 세계는 GDP 순위 경쟁을 하고 있지 않다. 각국의 경제성장률이 높고 낮음에 따라 각국의 GDP 순위가 결정될 뿐 GDP 순위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이 점에서 국가 간 성적표는 기업의 성적표와 다르다. 기업의 경우 상위 그룹에 들지 못하면 바로 도태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국가의 경우 개도국들이라고 해서 바로 도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빈국에서 세계 20대 강국으로 도약한 대표적 사례이며,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를 추월한 브라질, 인도, 러시아도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또한 각국의 GDP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인당 국민소득이다. 중국이 세계 3위의 국가인 것은 중국 사람들이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면에서는 세계 15위 국가이지만 일인당 국민소득 면에서는 세계 50위 수준이다.

세계 속 GDP 순위는 환율에 의하여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어느 해 그 나라 통화가 크게 절상되었다면 그 나라의 GDP 순위가 올라가며, 반대로 크게 절하되었다면 GDP 순위가 하락한다. 2008년 우리나라의 GDP 순위가 한 계단 하락한 것은 2008년 중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GDP 순위보다 더 의미가 큰 지표는 경제성장률 순위지표라고 하겠다. 어느 나라가 높게 성장하면 경제규모도 커지고, 일인당 국민소득도 높아지므로 경제성장률 순위를 살펴보는 것이 낫다. 한국은행의 추계에 의하면 2007년 중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경제규모 상위 50위권 국가 중 중간수준인 24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날개’ 펴고 다시 날아야

중요한 것은 경제규모이든, 경제성장률이든 세계 순위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크게 변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위기가 닥치면 거의 모든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밑으로 추락하게 되는데, 이후 잠재성장률로의 회복여부는 국가에 따라서 크게 차이가 난다. 어느 나라는 위기 이전보다 높은 잠재성장률을 달성한 반면, 어느 나라는 위기 이전의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도는 성장세를 보였다.

예를 들면, 스웨덴과 아르헨티나는 각각 1990년대 초와 2000년대 초에 위기를 맞았으나 위기 이후 잠재성장률은 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높아진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의 외환위기를 맞아 잠재성장률이 대폭 하락했다.

그렇다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잠재성장률이 또다시 낮아질 것인가? 이번 위기로 세계 무역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수출에 의존하는 동아시아 경제성장률이 이미 대폭 하락했으므로 세계경제여건이 호전되지 않는 한 위기 이전의 잠재성장률 달성이 쉽지 않다.

따라서 위기 이전의 잠재성장률 4% 달성 여부가 최대 관심사항이라고 하겠는데,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우리나라가 2011~2017년 기간 중 평균 4.9% 성장함으로써 위기 이전 잠재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한편 IMF(국제통화기금)는 수출에 의존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위기 이후 예전의 잠재성장률을 회복하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추락을 멈추려면 다시 날개를 펼 수밖에 없다. 수출 성장동력의 약화를 보충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거나 우리 경제의 선진화, 유연화, 시장경쟁을 통해서 경제효율성을 전반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4%대 잠재성장률 회복이 어렵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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