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는 향후 세계경제 환경을 크게 변화 시킬 것이다. 우선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 달러화가 세계기축 통화(브레튼 우드 체제)’로 자리매김하면서 미국은 자국 화폐인 달러를 토대로 제국을 완성했다. 여기에 기대어 미국경제는 그 동안 세계의 총수요를 견인하면서 세계경제의 성장 또한 선도해왔다.

그러나 70년대 초 발생한 오일 쇼크는 미 달러화의 국제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등 달러화 위기를 불렀고, 8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경제는 산업생산 기술의 주도적 위치를 일본과 독일 등지에 내어주면서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누적되는 경상수지적자와 각종 사회보장 제도 강화에 따른 재정적자의 누적적 확대는 미국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여기에다가 세계에너지(석유)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국제유가까지 급등하자 미국경제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는다.

이때 미국이 꺼낸 든 카드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 즉 세계화 전략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85년 9월 미국 워싱턴 플라자 호텔에서 선진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모여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을 조정한다(플라자 합의).

이 합의로 미국은 경상수직 적자를 크게 수 있었겠지만,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복합불황에 빠지고 만다. 플라자 합의가 있은 후 1년여 만에 엔화가치는 거의 50%가까이 절상된다. 이 같은 엔화가치의 급등은 일본 내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현지생산전략을 수립한다. 이와 함께 일본정부는 제정정책과 함께 정책금리를 크게 낮추는 등 금융정책을 동원한다.

이 결과 80년 대 말, 일본은 심각한 수준의 국내 산업공동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시중의 늘어난 통화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이상경기현상 속에 빠진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현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즉 90년대 초 일본경제는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함께 금융기관 부실화가 가속화되면서 심각한 경기침체기를 맞는다. 90년 대 10년, 그리고 이후 일본 경제는 정부의 재정금융정책에 힘입어 경기가 초단기간 반짝 반등하는 시기를 제외하면 제로금리 시대 곧 긴 침체의 터널에서 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채택한 환율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일무역적자 폭을 줄이는 역할을 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함께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

90년 대 말 야기된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게서 발생한 외환위기는 이 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 동안 아시아 지역에서 직접투자를 늘려가던 일본이 국내경제사정으로 오히려 기존에 투자되어 있던 자금까지 회수하면서 아시아 주요국들은 경기급락과 함께 외환부족 사태를 맞았던 것이다.

이들 국가 중 특히 한국은 이를 계기로 자본시장의 전면개방과 함께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금융 산업 및 산업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이와 함께 그 초기에는 국제통화기금의 권고를 받아들여 고금리 정책을 펼쳤고, 이로써 한 때 시중의 실세금리가 연 30%대에까지 육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금리체계 하에서는 국내 어느 기업도 과도한 금융비용으로 인해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결국 정부는 99년 하반기 정책금리를 크게 낮추는 새로운 금융정책을 도입했고, 이 정책은 주효했다. 이와 함께,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 시기 환율 또한 급등함으로서 우리기업의 국제경쟁력 또한 크게 제고된다.

이 결과 수출이 급증해 경상수지의 적자구조가 흑자구조로 적극개선 된다. 이로써 한국은 외환위기 발생 3년 만에 위기를 조기 극복하는 새로운 사례를 만든 국가로 세계경제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아무튼 지난 60년 한국경제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통해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경제도 수출에만 의존하는 성장모델로서는 더 이상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 환경의 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2008년 하반기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두에서 말한 것처럼 세계 경제 환경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한편 이 변화의 핵심은 경제이론이 무용하다할 정도로 경기가 급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60년 동안 세계경제는 그나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선진 7개국이 세계경제의 경기 동향을 주도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들 국가의 세계 경제적 지위를 크게 약화시켰다. 특히 미국은 지금 진행 중인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으로서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한편 미국 스스로도 톡톡히 대가를 치루고 있고,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의 국제적 지위마저 크게 손상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미 달러화가 조기에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 역설적이게도 세계 투자가들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에 힘입어 오히려 미 달러화가 강세를 지속했다. 미 달러화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같은 추세는 곧 반전되리라고 본다. 미 연준(FRB)이 이미 선언했듯이 현재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연준(FRB)는 달러를 무제한으로 공급한다는 입장이다. 미 연준(FRB)의 이 같은 통화정책기조는 이후 미 달러화의 기치를 하락시킬 게 뻔하다.

미 달러화 가치의 이런 변화는 한국의 수출여건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로 인해 산업생산이 크게 위축되는 가운데에서도 한국의 수출은 크게 둔화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비해 수입은 산업생산이 위축되는 만큼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상수지는 이후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이로 인해 추후 야기될 문제들이다. 즉 미국은 향후 지속적으로 달러의 공급을 크게 늘릴 것이 확실하고, 이로 인해 달러가치의 약세가 점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경우 국제원자재 시장 즉 국제상품시장에서의 각종 원자재 가격은 달러가 늘어난 양 만큼 다시 급등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거듭 말하지만 세계경제 회복의 신호탄이 올려지는 순간 세계경제는 일순간 인플레이션에 직면한다. 이 때를 생각하면 한국경제는 분명 수출만이 능사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세계경제에서 소비비중이 매우 큰 선진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수출길이 막힐 것을 우려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중심축이 수출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우리는 수출의존 형 경제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우려야하고, 이 부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내수시장 육성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상식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본질적으로 한국의 내수시장 규모가 매우 작다는 태생적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출발한다. 만일 한국의 내수시장이 충분히 크다면 우리가 굳이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펼치는 등 대외의존 형 경제성장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경제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수출은 그 어떤 경우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아주 특수한 경우, 즉 현재와 같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부른 매우 특수한 경제상황과 이후 이로 인해 전개될 추후 세계경제의 동향을 고려할 때, 수출만이 능사가 아닌 특정 시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앞서 설명한 대로 현재로부터 세계경제가 본격 회복되는 시기까지는 적어도 수출만이 능사가 아니며,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경제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바로 우리는 가까운 장래에 미 달러화 가치가 붕괴하는 순간을 맞을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위기의 순간을 겪고 난 후 미 달러화는 여전히 한 동안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의 선택을 더욱더 어렵게 한다.

2009.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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