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디 짧은 순간들에 대항하며, 인생을 사는 것처럼, 한마디의 시간 안에 당신의 삶을 담아내다!

올해 총 24개국 137작품을 선보일 2009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가 5월 13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20개국 656편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본선 경쟁부문의 90편 외에 아시아, 유럽, 미주, 부산경상지역 초청작 47편이 관객을 기다린다.

아시아초청작‘더블 비스타(Double vista)'

아직도 단편영화가 장편영화를 모방하는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을 위해 미주초청작에선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단편영화들을 소개한다. 프랑스 파리의 초단편영화제(Très courts)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다큐멘터리 ‘핀쿠스(Pinkus)’ 와 극영화 ‘더 잡(The job)’은 길이와 상관없이 영화적 상상력만으로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더 잡(The job)’은 최근의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예고한 듯한 내용으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력시장에서 하루일자리를 얻기 위해 애쓰는 화이트칼라의 모습이 지금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유럽 초청작품들은 2분에서 3분 정도의 길이로 감독의 아이디어를 완결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휴대폰 영화제인 프랑스의 '포켓 필름 페스티발‘에서 초청된 6작품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통신매체인 휴대폰이 단순히 일상의 문자나 이미지를 전달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돈 속에 방황하는 청소년기의 한 단면을 감싸 안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두 마리의 새(2birds)’는 전 세계 12개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시계에 대항하여(against the watch)’는 우리가 거의 지각하지 못할 만큼 짧은 10초라는 시간에도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각화하고 있다.

미주초청작'핀쿠스(Pinkus)’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는 2010년 영화제 30주년을 앞두고 휴대폰 영화에 관련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중국 모바일 필름 페스티벌(CMFF-China Mobile Film Festival)’에서 제안한 글로벌 파트너쉽과 올해 작품을 초청한 ‘프랑스 포켓필름 페스티벌’등과의 제휴를 통해 휴대폰영화부문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바스크특별전 '아사마라(Asamara)'

디지털 장비의 보급으로 영화 제작의 기회가 많은 이들에게 확대되면서,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세계 영화계의 변방에 위치해 있었던 필리핀 단편영화의 활약을 아시아초청작에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아시아 초청작은 최근 몇 년 동안 필리핀의 독립영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시네말라야 영화제‘에서 상영된 재기발랄하고 실험정신 넘치는 4편의 작품으로 필리핀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텔레비전을 갖고 싶은 빈민가 꼬마 안동의 이야기를 그려낸 ‘꼬마안동(Andong)’, 가난한 부부가 새로운 생활 속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맨션(The Mansyon)’, 아이를 위해 힘든 선택을 해야 했던 엄마의 이야기 ‘신만이 아신다(God only knows)’는 지역을 넘어 모두에게 공통되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더블 비스타(Double vista)’는 현실과 환상, 재현이 교묘하게 얽혀지는 이야기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궁금하게 여기는 관객에게 짓궂은 농담을 건넨다. 실험적인 구성과 재기 발랄한 편집, 남자의 독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유럽초청작'시계에 대항하여(Against the watch)'

바스크특별전을 통해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든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7작품들도 관객들을 기다린다.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피레네 산맥 서부에 있으며 프랑스와 맞닿아 있다. 1876년 카롤리스타 전쟁 이후 주권이 크게 침해되었으나 자립성이 강하여 현재도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는 곳이다. 이번 특별전은 바스크 자치정부 문화부의 ‘키무악(KIMUAK) 2008 프로젝트’ 결과물 중에서 엄선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지역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바스크 초청작들은 지엽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세계를 아우르는 시선을 보여준다. '아사마라(ASÄMARA)‘라는 작품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이들이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생존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린 상황을 보여준다. '자화상(Self portrait)', '코튼캔디(Cotton candy)' 등 많은 작품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자신의 내면을 향한 독특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 감독들의 역량을 재고하기 위해 마련된 부산경상특별부문 12작품은 우리네 일상의 친숙한 소재를 스크린에 그려냈다. ‘황혼의 질주’는 농촌에서 경운기를 통해 벌어지는 유쾌한 에피소드로 농기구에 불과한 경운기가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된다. ‘전염’은 골목길에서 사람과의 갑작스런 키스가 화두가 된다. 남자주인공은 왜 여자주인공에게 키스를 하였으며, 키스를 통해 전염된 ‘그 무엇’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도록 한다. ‘어서오세요 순자씨’와 ‘겨울, 잠’은 작품은 자신과 분리해 볼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가족이라는 소재를 신선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냈다.

오는 5월 13일 영화제 시작과 함께 영화제 기간 동안 ‘해외 영화제 수상 한국영화자료전’을 경성대학교 제 2미술관에서 진행한다. 한국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1961년 수상한 강대진 감독의 ‘마부’를 시작으로 칸, 베니스는 물론 몬트리올, 모스크바, 낭트 등 지구촌 곳곳에서 수상의 성과를 거둔 우리 영화를 다시 살펴본다. 1998년 단편영화 ‘열일곱‘으로 이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올해 본선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을 비롯한 4명의 배출감독 포스터도 전시된다. 주최 측에서는 “총 64작품의 자료가 전시될 이번 전시회가 한국영화의 새로운 중흥을 다시 생각하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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