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론] 김경수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이 종전 후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 오바마 정부가 GDP대비 2%에 달하는 재정확대 패키지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부터 세계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금융보호주의 강화추세로 인해 서유럽 은행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지(deleverage)가 재개되고 이에 따라 금융자본이 취약한 몇몇 동유럽 국가들의 외환위기 가능성마저 고조되고 있다.

일부 해외언론의 한국경제 위기론

지난 해 리먼브라더즈 사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일부 해외언론은 한국경제에 대한 위기론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은행들을 중심으로 한 과다한 외화차입에 따른 외화유동성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반론을 조목조목 제기하였음에도 한국은행들이 부실대출이 현실화되고 자본확충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을 경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에다 보유외환의 가용성에 대해서까지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보자면 현 상황을 1997년 위기 당시와 유사하게 보고자 하는 기시(deja vu), 다른 곳에서 위기의 희생양을 찾고자 하는 때리기(bashing)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해외시각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위축되기 보다는 차분히 위험요인을 찾아 고치고 긴 호흡을 가지고 한국경제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우리의 강점을 살려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여 위기 후 세계 속에 한국경제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긴호흡으로 차분히 위험요인 살펴야

현재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경제가 어렵다. 최근 수개월 동안 금융불안이 실물경제로 빠르게 전이 확산되면서 소비, 투자, 수출 등 총수요 항목이 대부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조업과 서비스 생산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경기후행지표인 고용은 일 년 전에 비해 2개월 연속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1월은 무려 10만 명 이상이나 감소하였으며 임금상승률도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주택시장을 보면 지난 1월 중 주택가격이 직전 정점수준에 비해 26% 급락하였으며 내년 말까지 18~29%나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실업률은 8.1%로 4반세기 만에 최고를 기록하였으며 44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월별로 볼 때 지난 3개월 동안 고용감소 수는 종전(終戰) 후 각각 3, 4,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경기침체는 부동산시장과 금융산업을 넘어서 전업종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 결과 선진국들의 대표기업들의 주가는 대폭락하였다. 세계유수의 보험회사인 AIG를 비롯해 거대 금융기관들에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지원되고 있으나 모럴 해저드의 논란이 제기될 뿐 구조조정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세계경제 아우르는 거시적 조망 필요

미국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적어도 학계에서는 다수다. 배로 교수는 향후 미국경제가 일인당 GDP 또는 소비가 10% 이상 감소할 가능성을 25%로 예측하였다. 이러한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에다 디플레 발생가능성마저도 점증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기는 세계 최고의 제조업국가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엔고 등에 따른 수출부진으로 일본은 올해 적자국으로 전락할 전망이다. 대표산업인 자동차업계는 이미 정부에 자금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현 상황을 진단하고 위기이후까지 고려하여 올바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한국경제만을 들여다보는 미시적 관점보다는 다른 나라들을 함께 조망하는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생존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고통은 글로벌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우선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크게 반응했던 실물경제의 위축은 한편으로 글로벌 위기에 대한 탄력적 대응과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전자업종에 경쟁력이 있는 한국기업은 일본기업에 비해 재고조정기간이 1/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외부여건의 변화에 대한 우리 IT기업의 적응력이 높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화 전략추구로 재무구조개선, 기술력 향상 등 여러 측면에서 경쟁력을 제고해 왔다.

원화가치 하락, 경쟁력 확보 기회될 수 있어

한편 원화가치 하락은 내수위축이라는 부정적 영향도 있으나 수출기업들이 매우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갖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높은 가격경쟁력은 비록 글로벌 위기로 수출량은 줄어들었으나 시장점유율이 확대되는 순기능이 있다. 특히 제조업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한국으로서는 이번 글로벌 위기로 중국 제품에 대해서는 질적 경쟁력을, 일본 제품에 대해서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의미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환율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의 대두는 비록 실질환율이 그만큼 절상되어 가격경쟁력을 잠식하는 부작용이 있으나 디플레이션 압력에 빠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더 큰 경제 활력을 제공한다. 제로금리정책을 수행하는 선진국보다 명목금리가 높으나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는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경제의 높은 수출의존도는 글로벌 위기라는 외부충격에 한국경제를 매우 취약하게 하였으나 동시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 경제학자 슘페터가 불황기와 경기변동을 역전의 시기라고 강조했듯이 현재 한국경제의 깊은 골에 낙담만 할 것은 아니며 이번 위기를 앞으로 한국경제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속적 구조조정과 연구개발 필요

이를 위해선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더불어 기업의 연구개발 및 인적자본 육성에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통해 세계시장점유율을 확대하여 한국경제의 성장단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 더불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업에 대한 인프라 확충,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및 산업구조의 개편, 보호주의 확산, 과잉유동성 등에 대해서도 사전에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국정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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