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득환 주필

오랫동안 내 생각을 지배하고, 의당히 내 행동까지 지배했던 편견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장례예식장과 시신(屍身, 주검)에 관한 것이다. 평시 나의 이러한 편견은 장례예식장 방문을 꺼리게 했고, 설령 조문을 가더라도 장례예식장에서는 나로 하여금 아예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다.

사실 전시와 같은 아주 특수한 시기 혹은 아주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가 아닌 경우 즉 보통사람은 시신 자체를 볼 기회조차 그리 흔치않다. 설령 시신을 본다 하더라도 교통사고를 우연히 목격하는 경우라든가 혹은 화재를 비롯한 각종 사고 현장 등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를 아주 우연히 목격하는 것이 전부다.

물론 우리가 평시 보게되는 주검들은 우리들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자연히 평범한 사람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신을 직접 보게 되는 예는 거의 없다. 다만 우리들은 사고 수습과정에 시신을 운구하는 모습만을 (영상으로) 간혹 보는 것이 전부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시신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시신을 볼 기회가 없어서 실제 시신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 지 그 진실을 우리 모두 알지 못한다.

이로 인해 우리들 생각에 시신이 검은 색을 띨 것이라든지 아니면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이라든지 하는 통념들을 생성시킨다. 이 통념이 시간이 지나면서 편견으로 배태되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통념은 실제 시신을 보게 되면 그 때 비로소 깨어진다.

통상 가족 중 누군가가 병사하거나 기타 사망했을 때 그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비로소 시신을 보게 된다.
물론 오래된 시신은 부패하기 마련이어서 검은 빛을 띠게 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사망할 경우 우리는 통상 3일장을 치른다.  이 때 보는 시신은 평상시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통상 시신은 핏기가 사라져 창백하며, 비록 피부가 탄성을 잃었지만 상온에서 보관한 경우 굳지도 않는다. 자연히 시신, 특히 얼굴에 약간의 화장기만 있어도 시신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띤다.

엊그제 나는 빙모 상을 치렀다. 내가 올해 쉰하나이니까 무려 50여년 만에 비로소 시신을 직접 보게 되었다. ‘염’을 하는 과정에 본 장모님의 주검은 짧은 투병생활을 한 탓이라 평상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평상시 보다 더 아름다우셨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어찌 돌아가신 장모님 모습이 살아생전 모습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염을 하는 동안 내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혹시 현세에 미련을 둘까봐 내 속내를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장모님 부디 잊고, 버리고, 끊고 마음 편히 아름다운 저세상으로 나아가시라”고 기도했다. 물론 앞서 말한 내 속내는 ‘돌아가신 장모님 모습이 너무 아르다우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문상을 온 서초구청에 근무하는 손 모씨에게 말했다. 어찌 내 장모님 모습은 살아생전보다 지금(돌아가신) 모습이 더 아름답지요? 했다. 그랬더니 손 모씨가 이르기를 “다들 보지 못해서 그렇지 누구의 시신할 것없이 모든 시신이 본래 아름답다”는 것이다. 앞서 모두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 시신의 경우 모세혈관의 핏기가 사라져 피부가 본래 동양인의 피부색인 하얀색을 띠게 되고 그기에 약간의 화장만 해도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내 장모님 시신을 보지 않은 채 앞서 한 이 말을 들었다면 거짓말 하지 말라고 그에게 포악이라도 떨었을 터이다. 하지만 비록 주검으로 누워계셨지만 내 장모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더군다나 염을 끝낸 모습까지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우셨다.

이렇게 하여 장모님은 내게 영원히 지속될지도 몰랐을, 그리고 내가 더 많은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막아온 즉 장례예식장 방문에 대한 편견과 시신에 대한 편견을 모두 걷어주고 장도에 오르셨다.

2009.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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