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재발견] 빗물 모으고 하수 재활용하고

서울시 광진구 모 아파트단지의 빗물이용시설은 세계적 물 전문가 그룹이 발간하는 ‘Water21’ 12월호에 표지기사로 소개됐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1300여 가구의 아파트단지는 다른 아파트에 비해 수돗물 사용량이 20% 가량 적다. 중앙공원의 조경 용수, 분수 및 실개천과 공용화장실에 쓰는 물을 수돗물이 아닌 빗물을 받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단지의 바닥면 지하와 옥상에는 빗물을 모아 저장시설로 보내는 배관이 설치돼 있고, 지하에는 옥상빗물, 바닥면 빗물, 비상용수를 각각 저장하는 1000톤짜리 탱크 3개가 설치돼 있는 것이 주변 아파트와 다른 점이다. 이 같은 빗물이용 시설을 통해 연간 4만 톤의 빗물을 재활용하고 있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물을 재이용하는 사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 사용량은 늘어나지만 새롭게 개발할 수 있는 물자원은 점점 줄어들면서 물의 재이용이 수자원 확보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국민의 물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다. 지난 40여 년간의 물 이용량을 보면 1965년 51억㎥에서 2003년 337억㎥으로 약 6배 이상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빗물 그냥 버리지 말자’ 재이용 확산

현재 물을 재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빗물이용. 보통은 비가 오면 그대로 하수도를 통해 하천에 흘려보내지만, 이를 담아두었다가 나무에 물을 줄 때 건물 청소나 화장실 용수로 사용한다면 그만큼 물 자원을 아낄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일정규모 이상 종합운동장·실내체육관 등에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규정한 수도법에 따라 빗물이용시설이 설치된 데는 128곳. 의무화 대상은 아니지만 학교나 공공시설, 아파트단지 등이 자체적으로 설치, 빗물을 재이용하는 곳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서울 봉천동의 서울여상 교사 입구 화단에는 빗물저금통이 설치돼 있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상자텃밭을 나눠주고 빗물을 써서 작물을 키우고 화단을 꾸미도록 했다. 이 학교 외에도 일반주택이나 아파트, 어린이집, 공부방 등에도 빗물저금통이 설치돼 있다.

빗물저금통을 이용해 손을 씻고 있는 어린이들.

빗물저금통은 서울 관악구의 시민단체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시민모임’에서 설치해 준 것. 빗물재활용으로 관악구의 젖줄인 도림천의 건천화를 막고, 이를 매개로 신림동과 봉천동을 생태마을로 만든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시민모임 조홍연 사무국장은 “그동안 빗물은 버려지는 물로 인식돼 왔으나 ‘빗물저금통’을 통해 모아 두었다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물 값도 절약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서울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빗물 재활용시설 설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대 기숙사에는 5년째 ‘미니 댐’이라 이름 붙인 빗물이용시설이 가동되고 있다. 이 댐의 용량은 200톤으로 2000㎡의 지붕에서 빗물을 받아 매년 1600톤의 빗물을 화장실이나 조경 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짜로 9000톤의 물을 지붕에서 받아서 썼고, 앞으로도 쓰면 쓸수록 이익이 남는다.

서울대, 매년 1600톤 빗물 재이용

빗물 재이용을 도시계획으로 수립하거나 시설설치에 대해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지자체들도 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는 도시 전체의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재활용하는 ‘레인시티(Rain-City)’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서울 광진구는 관할 내 모 아파트단지가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할 경우 용적률을 넓혀주는 인센티브를 적용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환경부가 수도법에 규정돼 있는 빗물이용시설 설치 의무화 대상에 ‘국가나 지자체가 신축하는 공공청사’까지 확대하고, 빗물이용시설을 갖추는 경우 건물 용적률 확대, 상하수도 사용료 감면, 설치비용 보조 또는 융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빗물이용 이외 하수 재활용도 지자체나 대형사업장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물 재이용 사례에 속한다.

현대제철, 하수처리수를 공업용수로…연 36억원 절감

현대제철 인천공장은 인근 가좌 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끌어와 자체 설치한 정화설비를 통해 수질을 개선한 후 공업용수로 활용하고 있다. 이 공장은 연간 500만~6000만 톤의 물을 사용하는데, 매년 인상되는 상·하수도 요금이 원가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터에, 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재활용키로 한 것.

하수 재활용을 위해 든 비용은 75억 원. 회사측은 2007년 기준으로 상수도를 사용할 때 드는 비용 64억 원과 비교해 36억 원을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정화설비 가동비용을 감안하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국내 하수처리수 재이용률은 2001년 2.1%에서 2007년 9.9%로 65억 톤 중 6억 4000만 톤이 재이용되고 있어 매년 점진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 정복영 과장 “기존 수자원에 대한 의존을 줄여 물이용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등 물 부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체수원개발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난 3일 마련된 ‘가뭄종합대책’에 따라 하수처리수 재이용 민간투자사업과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물 재이용 활성화 대책은
가뭄 대응 위해 물 재이용 활성화 추진

환경부는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가 부족하고 앞으로도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이 빈발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물 재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는 하천 취수율이 36%로 물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은 국가에 속하며 가뭄시 물이용에 취약한 실정이다. 하천, 댐 등 기존 수원에서 취수를 줄여 물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가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빗물이용, 중수도, 하·폐수처리수 재이용 등 물의 재이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에 따라 환경부는 수도법, 하수도법, 수질 및 수생태계보전법 등 여러 법에 산재된 관련 규정을 통합한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체계적·종합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물의 순환적 이용을 촉진키로 했다.

법안에 따르면 환경부 장관은 물의 재이용 촉진 및 관리에 관한 종합적인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장과 군수는 관할지역 내의 물 재이용 관리 계획을 수립해 환경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물 재이용 및 관리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물 재이용 정책위원회’를 두기로 했으며,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공공청사 등을 신축할 때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해 운영토록 했다.

이 밖에 일정 규모 이상 숙박업소, 목욕업소, 공장 등을 신축하거나 산업단지, 택지개발사업 등을 할 때는 중수도 시설을 설치하고, 하·폐수처리시설을 설치·운영할 때는 이를 재이용해야 한다.

환경부는 이와 함께 하수처리수 재이용을 높이기 위해 공업용수로 재이용하는 경우 민간의 자본과 기술이 참여하는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TO)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2016년까지 1조 4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4억 4000만 톤(1일 122만 톤)의 공업용수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물 재이용 활성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한정된 수자원의 효율적 이용으로 지역 물 부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공업용수 재이용 목표량인 연간 4억 4000만 톤은 충남 보령댐 4곳 분량의 대체효과가 있다”면서 “이에 따라 상수도 생산비용이 연간 1352억원 절감되고, 물산업 육성으로 약 1만5000명의 고용유발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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