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나누기의 허와 실

(이 글은 KBS 대구방송 장 작가가 보내온 질문지에 답한 것이며, 이후 진행된 인터뷰의 질문자는 동 방송국의 정 피디 였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아울러 질문 및 답변의 내용 또한 이와는 달라졌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KBS 장은영 작가와의 인터뷰

장 작가) ‘일자리 나누기와 임금삭감, 그 허와 실’이라는 연구 내용을 토대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정 소장) 예
장 작가) 현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가 경제 회복에 미칠 영향은?
정 소장) 해당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세계경제와 함께 한국경제의 실상을 잠깐 짚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지난 해 9월을 기점으로 본격화 된 국제 금융위기의 본질은 지난 30년 간 누적된 과잉통화, 즉 국제무역거래의 기준이 되는(기축통화인) 미 달러화의 과잉공급이 부른 이상 경제현상입니다.  사실 현재의 위기는 90년 대 말 아시아권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가 그 전조였으며, 이 때 중국이라는 거대한 저 임금 체계의 생산조직이 세계경제에 등장함으로서 단지 그 시기를 연장시켰을 뿐입니다. 하지만 중국경제의 생산 기술수준의 급격한 향상과 중국노동자의 임금체계가 2000년 대 중반 이후 급격히 개선되면서 이후 세계경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변경되었습니다. 이 같은 중국경제의 세계경제에 대한 역할 변화는 곧 세계시장에 저가의 상품 공급 체계가 무너진 것이지요. 특히 중국의 세계적 위상을 변화시킨 베이징올림픽이 그 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세계사의 이데올로기 변화 및 그 속도를 크게 앞당긴 신기술, 즉 소위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통신 부문의 기술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세계인에게 자유 및 자본주의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군사기술이었던 인터넷 관련 기술이 산업기술로 전환되면서 정보통신 혁명이 초래되었고, 급기야 정보통신 혁명은 기존의 산업생산방식에 다가 부가적으로 새로운 생산방식의 접목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새로운 생산방식을 등장시켰고, 새로운 생산방식 즉 지식기반 경제는 급기야 사회구조 및 세계인의 생활양식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지금 세계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 현상이 바로 모든 시장상황에 대한 경제주체들, 특히 투자자들의 불신, 불안심리입니다.

물론 이러한 불안 심리는 앞서 말한 요인에 의해 시장 자체가 불확실한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에 넘쳐나던 과잉 통화가 신기술과 결합된 제조업 투자로 유입되지 못하고 투기성(부동) 자금이 되어 이 시장 저 시장으로 옮겨 다니며 쏠림현상을 연출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자본의 쏠림현상은 시장을 더욱더 불안하게 내몰았습니다. 이 결과 나타난 것이 유가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락 현상이었습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 소위 미국계 거대 투자금융사의 파산입니다.

물론 그 직접적 단초는 부동산인 주택을 미 정부가 유동화 시킨 결과이며, 이는 은행대출을 비우량주택에까지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 정부의 저 소득자를 위한 주택정책이며, 이 같은 정부 정책은 앞서 말한 소위 자산유동화 증권(ABS제도)의 발행과 같은 새로운 금융기법의 도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진행형인 국제금융위기의 본질은 아니며, 단지 하나의 현상인 것이지요.

결국 현재 진행형인 국제금융위기는 어디까지나 국제금융시장에 넘쳐나던 과잉 통화의 조정과정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 조정 과정이 마치 낙하하는 물체처럼 즉 단 2-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걸쳐 너무 급격히 이루어 진 것이지요.

물론 그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로 인해 나타난 것이 자산가치의 하락이며 앞서 말한 대로 불과 2-3개월 만에 세계의 자산 가격이 무려 50%가까이 하락했습니다.

그 예로 적시할 수 있는 것이 세계총생산이며, 2007년 말 기준으로 약 48조 달러에 달하던 세계총생산이 2008년 9월 이후 28조 달러대로 겁락했다는 것이 파이낸셜 타임즈의 분석입니다.

현재는 그것의 추가적인 하락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진행형인 금융위기의 끝은 앞서 말한 자산가격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하한선에 도달한 때입니다. 물론 이 하한선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입니다.

사실 약간의 무리가 따르는 표현입니다만 앞서 한 말 즉 자산가치 하락이라는 말을 달리 하면 2009년 9월을 기점으로 통화의 가치가 엄청난 변동 즉 단기간에 두 배 이상 폭등한 것입니다. 과잉 통화가 일거에 해소됨으로서 통화가치가 급등한 것이지요(자산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은 곧 통화 가치가 급격히 올랐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따라서 현제 세계경제위기를 즉각 해소하자면 화폐량을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증가시켜야만 합니다. 세계 주요국들이 재정지출 확대는 물론이고, 급기야 통화의 양적 확대에까지 나서겠다고 호언하지만 세계경제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초래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세계경제의 변동성에 견주면 한국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즉 한국경제가 여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주가하락률이 낮은 것도, 기타 대기업들이 부도위기에 내몰리지 않는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경제도 이미 심각한 위기 국면에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그 진행 속도 면에서 여타 국가들에 비해서 약간 느릴 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을 위시해 현재 세계 주요 20개국이 제시하고 있는 재정지출 확대 규모는 너무나 작고 미흡한 것이지요.

그러나 세계는 지금 또 다시 통화를 급격히 팽창시켰을 때 초래될 인플레이션 위험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초래할 고통 또한 엄청난 것일 테니까요.

물론 이 전에 우리는 또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즉 전례 없던 일이 왜 세계경제에 발생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로 금융규제의 문제입니다. 보다 적절한 금융규제가 이루어졌다면 현실의 경제사정은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 세계든 한국이든 경기부양을 위한 그 모든 대책들이 즉각 큰 효과를 나타내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대책으로 일관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어떤 식이 되었던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단지 현재의 경제위기가 초래하는 고통의 시간을 단축시키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자니 나누기 역시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립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위기로 이행했고, 이 결과 세계는 지금 산업생산 위축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자리 감소와 함께 실업대란이라는 국민적 고통의 시기가 우리의 목을 옥죄기 시작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장 작가) 일자리 나누기가 긍정적 효과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 소장) 앞의 설명에서 이미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자리 나누기가 경제대책이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오산입니다. 우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소득이 재분배 되고, 분배된 소득이 실질적 소비확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개별경제 주체, 특히 대부분의 가계는 최소 생계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부채상환에 투입하더라도 모자랄 판입니다. 더군다나 앞서 말했듯이 현재 화폐가치는 크게 오른 데에 비해 소득은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굳이 우리 가계의 구채규모가 국내총생산의 7-80%에 해당됩니다. 가계부채의 규모가 이정도면 어느 가계든 간에 향후 발생되는 모든 소득을 부채상환에 투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현재 정부가 실행했거나 향후 추경 편성 등을 통해서 실행할 경기대책 대부분이 소비수요로 이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자연히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대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됩니다. 물론 일자리를 늘리자면 기업이 투자확대에 나서야 하지만 기업 역시 경영악화로 생존의 위기에 내 몰리고 있는 판입니다.

장 작가) 현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사업이 초래할 사회 이데올로기적 변화는 무엇인가?(경제적 문제 포함)

정 소장) 앞의 사실들을 고려할 때, 현재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들이 호응할 것으로 판단되는 일자리 나누기는 현실의 경제위기가 초래하는 사회적 고통을 분담하자는 차원의 것이지 경기부양책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윤증현 기획재정경제부 장관께서도 지난 달 26일 매경 미디어 센터가 주관한 이코노미스트 초청 강연에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가 “(우리)사회의 도덕률이나 시대정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사회안전망이 완전하지 않을 때 일자리 나누기(잡 쉐어링)이 더 빛이 난다”며 ‘이를 외환위기시 금 모으기 운동처럼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해 세계를 놀라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윤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일자리 나누기가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위기로 인해 전개될 사회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뜻일 겁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어찌되었든 현재의 일자리 나누기는 노사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우리에게서 잊혀 가던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는 등 사회통합에는 분명히 기여할 것입니다.

장 작가) 정부의 잘못은?

정 소장) 비록 일자리 나누기가 단기적으로 경제 회복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인한 사회위기를 해소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다만 이 운동이 사회 내부의 자발적 운동이 되어야만 그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운동이 지난 달 15일, 청와대 제 2차 비상경제대책회의 중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제기되었고, 이를 받아 노동부 및 전경련이 먼저 나섬으로서, 이것에 앞서 있었던 ‘노사민정 대타협’에 오히려 손상을 가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 노동계가 이에 대해 (특히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반발하고 있습니다.

장 작가) 일자리 나누기의 원래 취지는?
(일본과 네덜란드 등 해외 사례와 비교해서 말씀해주세요)

정 소장) 사실 일자리 나누기는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유럽에서 80년 대 경제 불황기를 맞아 개별 회사의 경영위기의 해법으로 등장했으며, 개별회사들은 이 방법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임금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후 네들란드, 프랑스,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자국에 합당한 방법을 적용해 운용했습니다.

물론 네들란드의 경우 임금 7.8% 삭감, 5섯 시간의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해 당시 20% 대의 실업률을 5%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 노동법 개정을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을 채택했으며, 일본의 경우 90년 대 말 일본경영자단체 총연맹에서 정부기관인 노동문제연구위원회에 이 문제를 보고하면서, 중고령자 고용 및 개별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 나누기 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후 이 방법이 특정성과를 내자 전체 사회로 확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이 경제성장률 제고에 기여했다는 분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 방식이 고용의 유지 및 일자리 늘기에는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고용을 창출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실 고용이 창출되었다면, 국민총소득 역시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다만 각 나라마다 산업구조를 포함한 경제사정이 다른 점을 우리는 꼭 감안해야 합니다. 한국경제도 이 제도가 시행되면 고용의 유지 및 일자리 늘리기에는 일정부분 기여하겠지만 일자리 창출에까지 기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점과 함께 부가적으로 한 말씀 더 드리면 자칫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임금삭감 혹은 노동시간 단축 등에 나설 경우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해소하거나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아웃 소싱이나 비정규직제도의 도입으로 경제 불황기에 입지가 가뜩이나 약화된 노동자들의 입지가 더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 일각에서는 이 운동을 소위 이명박 대통령께서 평소 강조하는 친 기업정책의 일환이 아닌가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시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는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한시적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비록 한시적이지만 노동계는 노동계 스스로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하며, 사측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해고나 감원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정부 역시 법인세를 감면하는 등 이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사회적 대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종래 일자리 나누기는 국가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종래 수출증가와 함께 산업생산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고, 이 경우 경제위기 극복에 일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끝-

20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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