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을 말한다] 정래권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

경제·환경 동시에 잡기 위해선 ‘국민 이해와 지지’ 필수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녹색성장’을 제시했다. 녹색성장은 과연 무엇이며 향후 우리나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대한민국 정책포털 Korea.kr’은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녹색성장의 현재와 미래를 묻는 기획을 마련했다.

정래권 외교통상부 기후변화 대사는 ‘녹색성장’에 관한 정부내 최고 전문가 중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정 대사는 1992년 리우 환경회의 때부터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제협상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왔다. 특히 지난 2005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아태지역 환경개발장관회의 때에는 ‘녹색성장’이 공식의제로 채택되는 데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의 녹색성장 아이디어는 ‘타임’ 등 세계 언론에 의해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정 대사로부터 녹색성장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비전’이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떠올랐습니다. ‘녹색성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정부는 녹색성장을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좀더 쉽게 설명해보죠. 한 사람이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을 뜻하는 ‘생태용량’(ecological capacity)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 1인당 생태용량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편에 속합니다. 이는 우리가 최대한 자원을 절약해서 써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이나 공기, 땅이 그만큼 적다는 얘기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경제성장을 하되 생산과 소비를 가장 생태적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녹색성장이 나온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 ‘녹색성장’ 이니셔티브 갖고 있어

- 생태환경이 문제가 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인데요. 녹색성장이 지금 이 시점에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녹색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개념이 아닙니다. 사실 녹색성장의 발상지는 한국입니다. 2005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아태지역 환경개발장관회의에서 처음으로 녹색성장에 대한 각료선언이 나왔습니다. 그때 이미 우리 정부의 준비와 아이디어로 최초로 녹색성장론이 나온 것이지요. 말하자면 한국이 녹색성장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 하지만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으로 녹색성장이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요?

아마도 전 세계에서 처음일 것입니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의 해결은 전세계의 공통과제입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모색단계죠.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의 녹색성장 선언은 글로벌하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학문적 차원에서만 말해왔지 국가경영의 측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지요.

녹색성장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

- 아직 외국에서는 녹색성장과 같은 비전을 마련하지 못하는 있는 셈이군요.

미국도 아직 그런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이미 산업구조가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재편돼 있습니다. 제조업이 모두 외국으로 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탄소배출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소비단계에 있습니다. 제조업 단계의 국가가 녹색성장을 통해 탄소배출을 낮추려는 시도는 어느 나라도 해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을 따라 잡으면서 발전해 왔는데, 녹색성장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야하는 과제입니다.

- 제조업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 중에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국가가 있습니까?

여러 개발도상국 중에서 녹색성장의 모델을 만들 역량을 갖춘 나라는 우리가 유일한지도 모릅니다. 기술도 있고, 재원과 역량도 있습니다. 거기다 아직 우리는 제조업 단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과 인도 같은 나라가 우리를 따라올 것입니다. 녹색성장은 한국이 가진 역사적 사명이자 그를 통해 글로벌한 리더십과 국가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비전인 것입니다.

- 최근 세계적인 언론인인 토마스 프리드먼의 신작 <뜨겁고 평평한 그리고 붐비는>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녹색기술이 미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미국도 이제 녹색성장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9월 26일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비전을 미국의 의원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대통령은 기후변화가 산업의 부담이 되는 게 아니라 경제에 대한 새로운 기회로 본다고 말했더니 “당신들을 따라 가고 싶다”(we wish to follow you)라고 말하더군요. 미국의 의원들도 우리 대통령에 공감한다는 말이죠. 우리가 상당히 앞서고 있다는 얘기이고.

미국 의원들 “당신들을 따라가고 싶다”

- 녹색성장에 대해 ‘경제와 환경’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회용 배터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충전용 배터리가 있지만 시장에서는 1회용 배터리가 더 많이 팔리는 게 현실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계속 만들어서 팔수 있는 1회용이 더 이익이 날 겁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1회용 배터리의 사용을 제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기업은 더 비싼 값에 팔리는 충전 배터리를 개발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려고 할 겁니다. 1회용 사용으로 인한 낭비와 오염을 줄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요즘 비싸게 팔리는 하이브리드카도 마찬가집니다. 보다 친환경적인 자동차를 개발해서 더 비싼 값에 팔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전남 순천만의 갈대숲에 다녀왔습니다. 갈대숲에 나무로 산책로를 만들어놨더니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 오더군요. 생태를 보전하면서 관광수입을 통해 성장을 하는 사례는 이외에도 많습니다. 환경적 시각으로 보면 새로운 성장의 길이 열립니다.

- 일자리 창출의 측면은 어떤가요?

덴마크 정부는 오래 전부터 풍력발전에 상당한 지원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부 지원을 통해 발전된 풍력발전 기술을 민간기업이 이양받아 전세계 풍력발전설비 시장의 30~40%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상당량의 전기를 자급하고 있죠. 이런 시각에서 투자를 하면 새로운 산업이 생기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겁니다. 이때의 일자리는 제조업보다 양질의 일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에너지 위기시대에는 절전형 제품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절전형 기술 같은 것으로 인해 우리 기업이 전세계 가전시장을 석권하는 것이죠. 미리 준비하고 기술을 개발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궁무진한 세계시장이 열립니다. 이 대통령이 바로 그런 시각으로 녹색성장을 제시한 겁니다.

녹색성장 위해선 국민의 이해와 참여가 필수적

- 녹색성장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 녹색성장을 위한 정치적 의지, 곧 리더십과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건 대통령의 녹색성장 비전선포로 이미 확보된 것이죠.
두 번째는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입니다. 이제는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안됩니다. 이것은 국민들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감당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지금과 같은 과소비의 삶을 살면서 녹색성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녹색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입니다.
또한 환경부문의 세제개편, 교통체계와 같은 사회 인프라, 도시와 건물의 디자인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 사회의 인프라 전체가 ‘녹색’을 중심으로 재편돼야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우리는 일산과 분당같은 신도시를 만들 때 넓은 도로와 주차장을 같이 만들었습니다. 인천공항이나 과천 서울랜드, 용인 에버랜드도 드넓은 도로와 어마어마한 넓이의 주차장을 설계했지요. 철도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이 아니라 자가용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과소비형 구조를 만든 겁니다. 이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미국식 시스템입니다. 노르웨이는 교외에 대형 쇼핑몰 만드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한 도심에 만들라는 것이죠. 앞으로는 우리 사회의 인프라를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맑은 물·맑은 공기는 공짜라는 생각 버려야

-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일 것 같습니다.

철도가 발달된 일본은 좁은 국토를 가장 생태적으로 이용하는 국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게 편의 중심이지요. 프랑스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교육을 받더니 걸어서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군요. 학교까지 40분이 걸리는데 아들이 먼저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녹색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시민의식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했다고 전부 이 차를 타고 도심으로 나오면 이산화탄소가 줄어들겠습니까.
시민단체들도 적극 참여했으면 합니다. 정부와 긴밀한 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녹색 라이프스타일을 널리 전파시키고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맑은 물, 맑은 공기는 공짜라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 정래권 기후변화 대사는?
1991년 외무부 환경과학과장을 시작으로 외교부 국제경제국장,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 환경및지속가능발전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포스트 2012’, 곧 교토의정서 이후(2013년~) 새로 출범하는 기후변화체제에 대한 국제협상 대표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