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일리]뺑소니 사고를 낸 뒤 경찰서에 견인돼 온 차라도 운전자의 동의나 영장 없이 블랙박스를 빼냈다면 수사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이형주 부장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범인도피교사, 모욕 혐의로 기소된 한모(38)씨에 대해 경찰관을 모욕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한씨는 지난해 2월 술을 마신 채 차를 몰다가 오전 4시 20분께 서울 성동구의 한 도로에 주차된 오토바이를 쓰러뜨렸다.

한씨는 사고 후 10분 가까이 차를 더 몰았고, 인근 도로 충격흡수대에 부딪치고 나서야 멈췄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한씨는 차에 함께 탄 언니와 자리를 바꿔 조수석에 앉았고, 경찰이 오자 한씨의 언니는 자신이 운전했다고 진술했다.

순식간에 저지른 여러 건의 범죄는 한씨 차에 있던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뺑소니 및 한씨 스스로의 범행을 숨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블랙박스가 영장 없이 경찰에 제출돼 증거로 쓰였기 때문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사고 당일 한씨의 차는 견인돼 경찰서로 옮겨졌고, 도착 후 견인차 기사는 경찰에 한씨의 블랙박스를 임의제출했다.

재판부는 "운반 업무와 전혀 무관하게 블랙박스 등 차량 내부의 물건을 임의로 처리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위법한 행위"라며 "영장 없이 압수하였으므로 위법수집증거"라고 판단했다.

또 나머지 검찰 증거는 블랙박스 동영상으로 범죄를 인지하고, 수집한 증거들이기 때문에 이 역시 모두 위법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소유자·소지자·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하거나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가 가능하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근거로 "보관자인 견인차 기사가 임의로 제출한 것이므로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견인차 기사가 경찰관의 지시 등에 따라 승용차를 운반한 것은 2차 사고 발생 방지 등을 위한 현장수습"이라며 "운반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사실상 보관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더라도 이는 오로지 운반 업무를 수행하는 목적에 필요한 한도로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한씨가 사고 현장에서 경찰관 3명에게 욕설을 해 모욕한 혐의에 대해서는 "경위와 범죄의 형태가 모두 불량하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사고 당일 한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48%로 당시 처벌 기준에 미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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