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일리]대법원이 지난 1960년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 목적으로 농지를 강제로 빼앗긴 농민들에 대해 재차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아울러 정부 측의 '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가의 중대한 인권 침해 등 과거사 사건에 대해 일반적인 소멸시효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박모씨 등 17명이 "불법 행위로 말미암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660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14일 확정했다.

구로동 분배농지 사건은 지난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정부가 구로공단을 조성한다면서 농민들이 경작하던 서울 구로구 구로동 일대 농지를 강제로 수용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농민들은 1967년 정부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냈고, 이 과정에서 민사소송 중 일부가 정부 패소 판결로 확정됐다. 이에 당시 수사기관은 1968년 "농지 분배 서류 조작 사실을 인지했다"며 민사소송에서 증언한 공무원들과 농민들을 상대로 수사에 나섰다.

수사기관은 공무원과 농민 등을 불법 체포하거나 감금했고, 소 취하 또는 권리 포기 등을 강요하면서 폭행 및 가혹행위를 했다. 이후 사기미수 등 혐의로 농민 등을 무더기 기소했고 대부분 유죄판결이 선고돼 확정됐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8년 7월 이 사건을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 의혹 사건'으로 명명하고 국가가 행정 목적을 달성하고자 민사소송에 개입해서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건으로 결론짓고,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이후 농민 또는 유족 등은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이 확정됐고, 민사 소송도 재심을 청구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받았다. 원심은 "정부 측은 일련의 불법 행위로 인해 박씨 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66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지난해 4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정부 측의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서는 "박씨 등은 재재심판결 일부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손해배상 청구를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 사유가 있었다"며 "정부 측 주장은 권리 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다만 정부 측의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서는 지난해 8월 과거사 사건에 대해 일반적인 소멸시효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적용했다.

대법원은 "박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는 과거사정리법에서 말한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 집행으로 인해 입은 재산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에 해당된다"며 "헌재의 위헌 결정 효력에 따라 박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민법에 따른 장기소멸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은 정부 측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 남용에 해당돼 허용될 수 없다고 했으나 이는 헌재 위헌 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다"면서도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박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 장기소멸 시효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정부 측 주장을 배척한 원심은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2017년 피해 농민 유족 등 330여명이 낸 소송 상고심에서 1165억원대 정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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