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결혼 파탄의 주된 책임이 외국인 배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체류자격을 연장해 줘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인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불법체류자가 될 것을 우려해 헤어지지 못하는 사례를 막을 수 있는 판결이라는 평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베트남 국적 여성인 N(23)씨가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체류 기간 연장 불허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대법원은 “일방 배우자의 전적인 책임으로 혼인이 파탄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오로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 사유로 이혼한 경우에만 체류 자격을 연장해 준다면 외국인 배우자로서는 혼인 관계를 적법하게 해소할 권리를 행사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한국인 배우자가 이를 악용해 외국인 배우자를 부당하게 대우할 가능성도 생긴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외국인 배우자가 체류 자격을 갖췄다고 증명할 책임도 외국인 배우자가 아니라 이를 부정하는 행정청에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행정청이 불이익한 처분을 하게 되는 경우 그 원인의 존재를 원칙적으로 행정청이 입증하도록 돼 있는 일반적인 법리가 이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5년 12월 한국인 남성 정모(40)씨와 혼인한 N씨는 유산과 고부갈등 등으로 남편과 별거한 뒤 2016년 7월 이혼소송을 내 2017년 1월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기록을 살펴보면 N씨는 임신 중에도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편의점에서 일해야 했고, 그로 인해 유산하는 등 결혼 내내 시달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혼 이후 N씨는 2017년 5월 결혼이민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출입국 사무당국은 ‘배우자의 전적인 귀책 사유로 이혼한 것이 아니다’며 연장을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는 결혼이민 체류자격으로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해 국내에 체류하던 중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그 밖의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법무부장관이 인정한 경우를 들고 있다.

1·2심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를 좁게 해석해 “남편 정씨에게 혼인 파탄에 관한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N씨에게도 혼인 파탄에 관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며 체류 자격이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외국인 배우자의 체류자격을 연장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그간의 행정관행이 통째로 바뀔 수 밖에 없게 됐다. 아울러 출입국관리법 시행령도 상당부분 수정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결혼 이주 외국인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속아서 결혼하거나, 한국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이혼한 경우, 현재는 강제추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 상황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권단체들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로 이혼한 외국인 배우자의 경우 이혼 후 방문동거 체류자격으로 전환되는 관행과 관련해 “방문동거 체류자격을 보유한 외국인은 국내에서 취업 활동 등이 불가능해 사실상 출국을 강요하는 것”며 이 부분에 대한 개선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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