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일리]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현직 법관이 재판부의 ‘합의’에 대한 내용은 증언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법원에 냈다.

합의는 재판부를 구성하는 3명의 판사들이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논의하는 과정을 말한다. 하지만 ‘합의 비공개’를 명목으로 위법적인 재판 개입에 대한 증언도 거부한다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에 오는 7월 증인으로 출석하게 돼 있는 임모 판사는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에 증언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임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1심 재판부 주심판사였다. 임 전 차장은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를 통해 재판장이던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판결에서 기사의 허위성을 분명히 밝혀달라고 요구한 혐의(직권남용)를 받는다.

검찰은 ‘판결 이유’의 세부적인 문구까지 법원행정처 입장에 맞춰 조율된 것으로 보고 임 판사가 증인으로 나오면 구체적인 경위를 묻고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임 판사는 의견서에 이 같은 증인신문이 재판부의 합의에 대한 사항이라 증언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를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법원조직법 제65조가 근거였다.

임 판사는 또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알게 된 사실을 신고한 때는 소속 기관의 승인 없이는 증인으로 신문하지 못한다는 형사소송법 제147조 1항도 언급했다. 지난 23일 재판에서 윤종섭 재판장은 검찰과 임 전 차장 측에 임 판사 주장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전·현직 법관 중 이 같은 주장을 편 것은 임 판사가 처음이다.

법조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에서 재판부 합의를 비공개하도록 정한 이유는 판사들 사이의 논의 과정이 공개될 경우 당사자들이 판결에 불복하는 등 신뢰 저하를 막기 위한 취지이지, 위법행위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도 임 판사 주장이 부당하다고 본다. 검찰 관계자는 “법리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각자 의견을 밝히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합의라고 볼 수 있지만, 부당한 지시를 받아 재판에 반영한 것은 합의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 혐의 중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한 사례는 통합진보당 지방의원의 지위확인 소송 등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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