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다른 집으로 이사한 임차인이 이사 후 12년만에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주택 소유자에게 소송을 냈다가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임차인 A씨가 12년 전 돌려받지 못한 주택임대차 보증금을 돌려달라며 주택 소유자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나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며 A씨 패소 취지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02년 8월 주택 소유자 B씨에게 보증금 1800만원을 내고 2004년까지 2년간 주택을 임대했다. A씨는 2004년 8월 임대기간이 만료되자 B씨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B씨는 당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 A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지만 끝내 보증금을 못받고 2005년 6월 해당 주택에 대한 주택임차권 등기를 마쳤다.

그 사이 B씨가 사망해 주택의 소유권은 B씨의 자녀 등에게 넘어갔다. A씨는 2016년 3월 B씨의 자녀 등을 상대로 12년전 돌려받지 못한 1800만원의 보증금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B씨의 자녀 등은 "A씨가 이사가면서 주택에 대한 점유를 상실했다. 그 후 10년간 임대차 보증금 반환채권을 행사하지 않아 시효가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2016년까지 자신의 누나와 지인이 간접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다"며 "반환채권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1심에서는 A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1심 재판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 기간이 끝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임대차 관계가 존속하는 것으로 본다"며 "이는 임차인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규정이다. 이 사건의 경우 임대차 관계가 존속하고 보증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도 진행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판단이 바뀌었다. A씨가 임차권 등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해당 주택에 거주하지 않았던 만큼 보증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도 당초 A씨가 이사한 2004년에 개시돼 2014년에 이미 시효가 완성됐다는 것이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이사한 지 6년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A씨의 지인이 해당 주택에 전입신고를 마친 점, A씨와 그 지인 사이에 간접점유를 인정할 만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A씨가 사실상 주택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의 반환채권은 이미 시효가 완성돼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상고심에서는 A씨가 2005년에 마친 임차권 등기가 보증금 반환채권 소멸시효를 멈추게 할 효력이 있는지 등이 쟁점이 됐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도 "임차권등기에는 민법이 정하는 소멸시효 중단 사유인 압류, 가압류, 가처분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임차권등기를 이유로 보증금 반환채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대법원은 "임차권등기는 특정 목적물에 대한 구체적 집행행위나 보전처분의 실행을 내용으로 하는 압류, 가압류, 가처분과 달리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취득·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며 "임차권등기가 채무자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보전하기 위한 처분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원심은 A씨가 해당 주택에 대한 사실상 지배를 계속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보고 임차권등기가 소멸시효의 진행에 아무 영향이 없다는 점을 전제로 A씨 패소 판결을 했다"며 "원심 판단에는 소멸시효 진행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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