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뉴스데일리]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국가들(30-50클럽)은 고작 7개국(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이태리·대한민국)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자부심을 가질만한 대단한 성취이다.

2017년 현재 일본과 영국의 국민소득이 3만 9000달러이고 독일의 국민소득이 4만 5000달러이니,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수치는 명백히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수치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지금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체감하지 못한다. 3만 달러 시대를 축하하는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상황이 너무도 엄중하다. 최근 OECD가 38개국을 조사해 내놓은 ‘삶의 질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삶의 질 순위는 2012년 24위이던 것이 29위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다른 OECD 국가들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과 삶의 질이 정비례하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함에도 국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인식이 계속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항간에서 이야기하듯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이 문제의 원인인가.

주거비용의 폭등

국민소득이 증가함에도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폭등하는 주거비용이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주택가격에 따르면 2018년 10월 현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위가격은 8억 3000만원이다.

중위가격이 8억 3000만원이니 서울지역의 웬만한 집들은 10억원 이상이라는 말이다. 10억원은 현재 평균적 가구소득의 20년 치에 해당하는 액수이고, 2017년 상위 10% 근로소득자의 평균연봉인 1억 1000만원을 10년간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집은 마음이 머무르는 곳(Home is where the heart is)이라는데 이제 서울의 집값은 듣기만 해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곳이 되어버렸다. 현재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소득이 아주 높은 초고소득층을 제외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높아진 집값의 벽 앞에서 좌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려면 무엇보다 부동산자산과 다른 자산의 세후 수익율을 비슷하게 맞춤으로서 부동산 쪽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시세차익에 대한 공정과세를 통해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차익과세를 강화하고, 시중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이를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정책조합일 것이다.   

양극화된 소득성장패턴과 심화하는 소득불평등

국민소득이 증가함에도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두 번째 중요한 원인은 양극화된 소득성장패턴과 심화하는 소득불평등이다.

1990년대 중반이후 한국의 성장패턴은 양극화된 성장(polarized growth) 패턴을 보이고 있다. 실질소득의 성장을 10개 분위로 나누어 살펴 볼 때 최상위 30%의 소득은 매우 빠르게 증가하여 왔지만 하위 70%의 소득은 정체하거나 미미한 증가를 보였던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성장의 과실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지는 성장패턴을 보였는데 1990년대 중반이후에는 그러한 낙수효과가 사라졌다.

국민소득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으로 나누어지는데, 노동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고 반면 자본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다른 지표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포용적 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1세기에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처우를 보장하는 것과 사회적 위험과 빈곤층에 대한 보호 장치의 강화,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규제와 시정, 최고한계세율의 인상을 포함한 소득세 인상이 필요하다.

높은 사망률과 높은 자살률

국민소득이 증가함에도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세 번째 원인은 인간 존엄성의 심각한 훼손이다. 이는 높은 사망률과 자살율로 표현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자 1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OECD 회원국 중 최상위로 회원국 평균의 5배에 가깝다. 매년 20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근무 중 사고로 사망하고 이런 일은 대부분 100인 미만의 중소사업체, 그리고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최근 김용균씨의 사망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생산현장에서는 위험의 외주화가 보편화되어 있고 이는 불공정한 시장질서, 재벌중심의 산업생태계, 관료집단의 감독부실 등이 결합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나라는 자살률도 매우 높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자살률)는 25.6명이고 이는 하루 평균 36명, 40분마다 1명이 자살한 셈이다. 이런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 자살률(12.1명)의 2.4배로 단연 1위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추계에 의하면 자살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최소한으로 추계하더라도 연간 6조 5000억원이나 된다.

사망률과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수단이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막는 노동규제와 소외된 노인들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사회정책이 시급하다.

과도한 성장지상주의와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경계

문재인 정부가 사람중심경제를 표방하고 포용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방향이라고 보여진다.

전통적으로 시장근본주의자들은 평등주의적 정책은 경제의 효율을 떨어트린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최신 경제학의 성과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불평등은 경제 전반에 걸쳐 성장의 낙수효과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도 떨어뜨림을 가르쳐 주고 있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인적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고 기회 불평등을 증가시키며, 사회적 연대감을 약화시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결을 유발한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대결은 다시 투자 의욕과 협동 의지를 감소시킨다.

시장근본주의자인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루카스 교수는 “건전한 경제학을 하는데 해로운 여러 가지 경향들 중 가장 위험한 것은 분배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성장은 분배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다”라고 한 바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교조적인 성장지상주의가 아닐까.(필자:이우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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