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스데일리]전직 사법부 수장이 헌정사상 처음 구속 갈림길에 놓였다. 검찰은 사법농단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하급자 보고를 받고 승인한 수준을 넘어 여러 사건의 시발점이자 최초 지시자로 보고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20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구속기소) 공소장과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4년 오스트리아 방문 때 송영완 당시 주오스트리아 대사에게 대사관에 법관 신규 직무파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은 이듬해 조태영 당시 외교부 2차관 등을 만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논의하면서 법관 재외공관 파견 확대를 요청했다.

이후 임 전 차장 지시를 받은 김모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국제심의관은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 추진 검토’ 문건을 작성했고,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다. 문건의 ‘추진방안’에는 ‘외교부 추가 설득방안 - 신일본제철 사건 : 외교부 측 입장을 절차적으로 최대한 반영’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조직 이익을 도모하려고 강제징용 사건을 활용했다고 검찰은 판단한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4년 8월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변호사대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변협은 대법관 증원 요구 결의문을 채택하고, 양 전 대법원장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 반대 의견을 밝혔다.

격분한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에게 변협에 대한 압박 수단 마련을 지시했고, 이후 법률구조재단 공탁지원금 축소, 변협신문 광고 중단 등 방안이 실행됐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계기로 헌법재판소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며 대법원 위상 약화가 우려되자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재 내부 동향을 빼낸 것도 양 전 대법원장 지시에서 시작됐다고 검찰은 본다.

양 전 대법원장은 ‘블랙리스트’ 실행도 지시했다. 2015~2016년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사모’가 상고법원 도입 등에 반대하자 박병대(62)·고영한(64) 전 대법관과 임 전 차장에게 단체 제재·와해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했다.

긴급조치 배상사건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이 나오자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이후 법원행정처에서 해당 판사에 대한 직무감독권 행사 검토가 이뤄졌다.

이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67)과의 면담에서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든 것이다.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에 양 전 대법원장이 인사 조치와 관련해 직접 ‘V’ 표시를 하거나 결재한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다수 혐의의 출발점이라 책임이 무겁다고 본다. 구속영장 발부도 기대한다. ‘중간 경유자’인 박·고 전 대법관과도 혐의 무게가 다르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검찰 조사에서 자신은 범행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며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법관의 진술은 양 전 대법원장의 책임을 부각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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